박훈정 감독, ‘귀공자’와 김선호를 말하다 [쿠키인터뷰]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영화. 박훈정 감독은 얼마 전 선뵌 신작 ‘귀공자’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에게 영감을 준 건 코피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코피노들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낀 그는 ‘귀공자’의 주요 토대를 막힘없이 써내려갔다. 지난달 30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감독은 “전부터 꼭 만들고 싶던 이야기”라며 “더 잘 만들고 싶던 욕심이 컸다”고 돌아봤다.
‘귀공자’에는 의외의 조합이 가득하다. 감독이 김선호와 고아라를 캐스팅하자 그의 지인들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네 영화와 안 어울린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감독은 그 말에 오히려 확신을 얻었다. “배우들에게 이 인물과 어울리겠다는 확신을 느꼈어요. 다만 다른 분들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죠. 내가 먼저 선점하겠다는 생각으로 냉큼 캐스팅했습니다. 역시나 잘 봤다 싶어요.” 말을 이어가는 감독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신인배우 강태주를 발탁한 것 역시 그의 자신감으로 가능했다. 앞서 ‘마녀’ 시리즈로 김다미, 신시아 등 신예를 발굴한 감독은 강태주에게서도 뚜렷한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힘줘 말했다.
“똑똑한 친구예요. 독학으로만 영어랑 일본어를 깨우쳤을 정도예요. 그런 똘똘함이 연기할 때도 정말 필요하거든요. 어떤 걸 요구해도 금방 이해하니까요. 오디션 때부터 눈빛이 남달랐던 게 기억나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도 안 되면 연기를 그만하려 했다더라고요. 그런 데서 오는 절실함이 보였어요. 신인이니까 서툰 건 당연히 있어요. 그걸 끌어내는 게 제 역할인 거죠. 누구에게든 눈에 띄었을 친구예요. 단지 제가 일찍 찾아냈을 뿐이에요.”
주인공 김선호 역시 실험적인 캐스팅으로 꼽힌다. 일면식도 없던 김선호를 기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울리겠다는 판단이 서서다. 감독은 김선호의 전작을 보고 그의 기본기를 높이 평했다. “누아르 장르, 이른바 ‘제 영화’에 어울릴까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필모그래피를 보니 여러 가지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보면서 귀공자 역과 딱 맞겠다 싶었어요. 현장에서도 대사 사이 빈 공간을 잘 채우는 걸 보니 흡족했어요.” 김선호가 사생활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도 감독은 그를 고집했다. 준비만 돼 있다면 어떻게든 같이 해보자는 감독 말에 김선호 역시 용기를 냈다. 그렇게 지금의 ‘귀공자’가 탄생했다.
액션은 그가 공 들인 부분 중 하나다. 아스팔트 깔린 도로 위부터 산속과 좁은 골목 사이를 오가는 추격 장면은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액션을 향한 그의 노력은 후반부에서 빛을 발한다. 수술방에서 벌어지는 집단 혈투는 공개 이후 호평을 얻었다. “대역을 최소화한 덕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싸움을 벌이다 보니 ‘신세계’ 엘리베이터 장면이 떠오른다는 반응도 있었다. 감독은 “배우가 직접 연기한 덕에 카메라 각도를 자유롭게 잡을 수 있었다”면서 “쉽진 않았지만 박진감 넘치게 연출할 수 있어 좋았다”며 만족해했다.
‘귀공자’는 감독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밝은 분위기가 눈에 띈다. 제목이 ‘슬픈 열대’였던 제작 초반에는 음울하고 냉정한 느낌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촬영을 진행할수록 분위기가 점차 밝아지자 감독은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제목을 바꾸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때부터다. ‘귀공자’가 결말에서 여지를 열어두며 속편을 향한 기대감도 나왔으나 아직은 정해진 게 없다. 감독은 “캐릭터들이 아깝긴 하지만 뒷이야기를 생각하진 않았다”면서 “일단은 밀린 숙제부터 해야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신세계’, ‘마녀’ 등 전작들의 후속을 염원하는 목소리를 의식한 듯했다. 작품마다 팬덤을 두텁게 형성한 덕이다. 박 감독은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 많아 든든하면서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고민이 크다”면서 “다음 영화는 좀 더 잘 만들고 싶다. 점저 욕심이 커진다”며 미소 지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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