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했어도 훈장? 전무후무한 역사 뒤집기 나선 보훈부
[방학진 기자]
▲ 박민식 장관, 유엔군초전기념 및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 참석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5일 경기도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열린 유엔군초전기념 및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에 참석하여 주요 내빈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 국가보훈부 |
국가보훈부가 지난 2일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기준을 새로 세우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한 이후 연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SNS와 인터뷰를 통해 "항일운동을 했다고 무조건 OK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설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을 만드는 데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일 대한민국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최정식 국가보훈부 소통총괄팀장은 "많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이 자유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독립운동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공산주의 국가 건국을 위한 독립운동이었는지" 따져보겠다고도 했다. 또한 백선엽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활동 이력은 그럼 왜 기록하지 않나. 범죄 행위 자체에 형평성이 맞느냐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같은 박민식 장관 등의 인식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일제의 인식과 너무도 닮았다. 일제는 1925년 '국체(천황제)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를 처벌할 목적으로 <치안유지법>을 제정했다.
여기서 '사유재산제도 부인'은 다름아닌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뜻한다. 이후 <치안유지법> 탄압 대상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그치지 않고 무정부주의 나아가 일체의 민족운동으로 확대되었고,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공포하여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사상범'으로 낙인찍어 감옥 밖에서까지 감시하였다.
박민식 장관과 국가보훈부의 논리대로라면 이종찬 현 광복회장의 조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하지 않고 공동생산·공동소유의 이상촌을 지향했던 무정부주의자였고 2000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혁명열사증명서(革命烈士證明書)를 수여받은 우당 이회영 선생도 서훈 재심사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다. 혹시 박민식 장관과 보훈부 관계자들은 1925년 조선공산당과 1945년 북한의 조선노동당을 같은 조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여하튼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기준을 새로 세우겠다'는 국가보훈부의 진짜 속내는 친일행적이 인정돼 서훈이 박탈된 김성수와 장지연 등에 대한 재서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보훈부는 보도자료에는 언급돼 있지 않았지만 보훈부 관계자가 언론에 흘린 이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훈부는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인정돼 서훈이 박탈된 인촌 김성수(1891∼1955),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하나 서훈이 취소된 언론인 장지연(1864∼1921)에 대해서도 공과(功過)를 가려 재서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역사학자 외에 정치·사회·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분과위원회를 신설하여 검토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친일로 서훈이 박탈된 인사들을 장관이 지명한 외부 인사-주로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들일 가능성이 높다-들이 주도하는 특별분과위원회를 통해 재서훈을 시도하겠다는 의도이다.
여기서 친일행적을 이유로 서훈이 박탈되거나 기념물이 제거된 연혁을 살펴보자.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3년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친일행적 재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독립기념관은 기념관 내에 전시되어 있던 홍난파의 유품을 철거했으며 1995년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친일로 변절한 박희도, 정춘수, 최린 등에 대해 그들의 친일행적을 전시물에 기록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친일 행적이 확인된 서춘, 김희선, 박연서, 장응진, 정광조 등 5명에 대한 서훈을 박탈했다. 친일을 이유로 서훈이 박탈된 첫 번째 사례이다. 특히 서춘의 경우 대전현충원 측이 서훈 박탈 이후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묘를 이장하도록 유족에게 요구했지만 거부하여 2004년 서춘의 묘비를 제거했고 결국 유족을 스스로 이장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독립운동가 서훈에 있어서 '선(先) 항일, 후(後) 친일' 행위자의 서훈 제외 원칙이 확고해 졌다.
"사후 친일행적 밝혀지면, 서훈 취소되는 것이 마땅"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친일인명사전>(2009년)에 등재된 독립운동가 19명의 서훈을 취소했다. 당시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독립유공자 가운데 사후에 친일행적이 밝혀져 영예가 수여됐던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지 논의가 있었는데 보류됐었다"면서 "사후에 친일행적이 밝혀진 경우라면 전체적인,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서 서훈이 취소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서훈이 취소된 19명은 장지연, 김응순, 윤치영, 강영석, 김우현, 김홍량, 남천우, 박성행, 박영희, 유재기, 윤익선, 이동락, 이종욱, 이항발, 임용길, 차상명, 최준모, 최지화, 허영호 등이다. 당시 김황식 총리는 "친일 행적과 별도로 독립 운동을 위한 공도 인정되는 만큼 그 부분을 별도로 생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서훈이 취소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관련 단체와 가족들에게 이런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결정에 일부 유족들이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훈 취소 결정은 뒤집히지 않았다. 참고로 당시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했던 박승춘이었다.
한편 인촌 김성수의 경우도 2011년 당시 서훈 취소 대상이었으나 후손(김재호 당시 동아일보 사장)과 (재)인촌기념회가 서훈 박탈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2017년 4월 대법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로 확정돼 2018년 2월 국무회의 의결로 건국훈장 서훈이 취소됐다.
이처럼 '선 항일, 후 친일' 행위자의 서훈 제외 원칙은 보수·진보정권을 막론하고 독립운동가 서훈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국가보훈부는 '친일을 했어도 공과를 따져 다시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주겠다'는 전무후무한 역사 뒤집기 시도에 착수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대거 차관에 임명하면서 자신이 아닌 "헌법에 충성해달라"고 당부했다. 옳은 말이다. 제발 윤석열 대통령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친일정신이 아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즉 독립정신에 충성을 다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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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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