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사진의 바깥에 무엇이 있었을까?

허영한 2023. 7. 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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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으로 들어온 AI에 대한 단상

전 세계 사진가와 애호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진 프로그램인 어도비(Adobe)사의 포토샵에 생성형 AI 기능이 들어가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향이 일고 있다. 아직 베타(v24.7.0) 버전이긴 하지만, 포토샵에 AI 기능이 들어가는 건 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진가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사진의 일부를 선택(select)해서 그 속에 뭔가를 끼워 넣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됐다. 그냥 포토샵 안에서 말이다. 필요한 무엇이든 여기에 넣어 달라고(아직은 영어로만) 입력하면 된다. 생성형 이미지 기술도 지난해 말 챗GPT와 미드저니 발표 이후로 쏟아져 나온 기술과 용례로 더 이상 놀라울 게 없는 분야이긴 하다.

이 포토샵의 새로운 기능 중 내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바로 ‘빈칸’이다. 명령어 입력 창에 아무 단어도 넣지 않고 내리는 ‘생성(generate) 명령’ 말이다. 이 말없는 명령에 포토샵은 주변과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채워준다. 결과물이 때로는 어색하지만 어떤 경우는 사실처럼 절묘하다. 오래전 찍어두었던 사진에 포토샵으로 캔버스 사이즈를 늘여 상하좌우에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을 선택해서 포토샵의 ‘생성형 채우기’를 실행했다. 주문 내용은 ‘빈칸’이었다. 결과는 사진으로 보는 바와 같다.

Torino, Italy, 2006 ⓒ허영한
위 사진을 포토샵 캔버스 크기 기능으로 여백을 만들고 '생성형 채우기' 기능으로 여백을 채웠다. 쉽게 중형 카메라로 찍은 듯한 느낌의 사진이 됐다. '언크롭(uncrop)'도 '줌아웃(zoom out)'도 아니다.

생성형 AI 이미지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 5.2 버전에는 ‘줌아웃(zoom out)' 기능이 새로 들어갔다. 카메라로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할 때 흔히 쓰는 기능이 줌 렌즈로 당겨서 찍은 이미지를 점점 화각을 넓혀 멀고 넓게 찍는 기법을 말한다. 이름만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렌즈로 촬영된 바깥 부분으로 화각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사진 혹은 이미지에 없던 이미지를 바깥에 채워서 ‘원래 있었지만 찍히지 않은 부분’인양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 기술의 흉내를 낸 신기술에 기존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만큼 자신 있다는 태도일 것이다. 물론 포토샵과 달리 원 이미지 자체도 만들어진 가상이다. 사진(처럼 만들어진 이미지)의 바깥에도 없었던 가상의 이미지를 마치 잘린 것을 되돌리듯 착시를 유발하는 것이다.

미드저니의 '줌아웃'이 적용된 이미지(이미지 출처=Petapixel.com)

또 하나의 생성형 이미지 기술 프로그램인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에서는 이와 비슷한 기능을 ‘언크롭(uncrop)'이라 부른다. 사진의 주변부를 잘라내는 크롭(crop)의 반대 행위로 잘라내기를 취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도 잘라낸 적 없는 주변을 확장해 만들어주는 기능이다. 렌즈의 화각을 넓혀서 찍은 사진을 잘라내서 주 피사체를 부각하는 ’크롭‘의 반대 행위라는 의미로 가상의 주변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을 흡사 광각 렌즈로 찍은 것처럼 주변부를 만들어 준다. 사진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줌 아웃과 언크롭 기능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자신감을 말해준다. 아직 그 결과물들이 어색해서 조소를 자아낼 때도 있지만 그런 한계는 순식간에 극복될 것이다. 사진이 사실성의 신뢰를 위협받게 되었음과 동시에 외형의 한계를 무너뜨린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얻었다고 해야 하나? 글쎄, 그것을 표현이라고 불러도 될지도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포토샵의 '생성형 채우기' 기능으로 사진의 주변부를 채웠다. 없던 길을 만들어 주었고, 새로 만들어진 오른쪽 해바라기들은 사실적으로 천연덕스럽다. 원래 사진은 아래에 있다.
서울, 2013년 ⓒ허영한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사진의 바깥을 잃게 됐는지 모른다. 무슨 엉뚱한 소린가 하겠다.

사진의 바깥은 시간적 바깥이기도 하고 외형적 네모 공간의 바깥이기도 하다. 그 바깥에 사진가의 진심과 눈 밝은 관객의 발견의 장이 숨어 있었다. 사진가들은 때로 사진의 바깥에 이야기를 숨기고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막 어떤 일이 벌어지려는 순간 혹은 바람이 지나가고 난 무(無)의 시간 같은 곳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직접 말하지 않고 숨긴다. 예술가들은 직설하지 않고 은근한 숨김으로 관객에게 기회를 준다. 눈 밝은 관객은 사진의 내부를 지나서 그 바깥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비로소 사진가의 의도를 알아채기도 한다. 이제 그 바깥도 AI가 결정하게 됐다.

서울, 2015 ⓒ허영한
생성형 채우기 기능으로 확장한 이미지. 진짜와 가짜의 경계도 진위도 알기 어렵다.
'생성형 채우기'의 빈칸. '생성'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해준다.
포토샵 25.7.0 베타버전의 인트로 화면. 어도비 설립자의 사진과 '딸기 편지'라는 프로그램의 애칭이 들어갔다.

기술이 새롭고 신기한 결과물을 쏟아내는 일이야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런데 차라리 보여주지 않거나 굳이 언급하지 않는 사실들의 의미를 AI가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가상으로 보여줘 버리는 건 좀 다르다. 대부분 눈치채지 못할 영역이고 관심도 없는 부분이지만, 감추고 생략하고 관객에게 기회를 주는 인간적 ‘없음’의 배려가 무가치하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표현의 이야기다. 시에서 말로 남겨지지 않은 여운처럼, 그림에서 묘사되지 않은 여백처럼, 사진의 바깥은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숨기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보여주기를 그치는 경계의 바깥에 때로는 진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천천히 드러난다.

편집자주 - 즉각적(insta~)이지 않은(un~) 사진(gram)적 이야기, 사진의 앞뒤와 세상의 관계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씁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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