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창업신화 13년…김봉진, 배민 이어 DH도 떠난다 [팩플]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창업자가 한국에 이어 아시아 배달 사업에서 손을 뗀다. 한국의 배달 앱 시장을 키우고, 스타트업 매각 신화를 쓴 이의 퇴장, 혹은 새로운 출발이다.
무슨 일이야
7일 우아한형제들은 김봉진 창업자가 우아DH아시아 의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월 김 의장이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를 사임한 지 5개월 만이다. 이날 오전 김 의장은 우아한형제들 전 직원에게 ‘고맙고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e메일 보내 “제 인생의 큰 쉼표를 찍어본다”며 사임 인사를 했다.
우아DH아시아는 독일계 배달 플랫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와 우아한형제들의 합작사로, DH의 아시아 13개국 사업을 관장한다. 김 의장은 지난 2020년 12월 우아한형제들을 DH에 매각한 뒤 우아DH아시아 의장으로 아시아 배달 사업을 이끌어 왔다. 앞으로는 DH와 우아한형제들의 고문직만 맡게 된다.
김봉진 13년 성취
김 의장은 한국 외식 산업을 배달 중심으로 재편한 주역이다. 2010년 출시한 배달의민족 앱은 국내 모바일 기반 B2C(소비자 대상) 플랫폼 전성시대를 열었다. 창업 초기에는 전단지를 모으고 식당 주인들을 설득해 입점시키며 ‘흙수저 창업신화’를 썼다.
웹 디자이너 출신인 김 의장은 명함에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적을 정도로 디자인과 마케팅을 중시했다. ‘을지로체’, ‘한나체’ 같은 글씨체를 자체 제작해 배포했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등 B급 감성의 광고로 주목받았다.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배민다움’ 등 자율·팀워크를 강조한 기업문화롤 만들고 알렸다.
지난 2019년 말 DH의 배민 인수는 한국 스타트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DH는 당시 ‘요기요’와 ‘배달통’을 내세워 배민과 경쟁했지만 배민을 꺾지 못하자 결국 인수합병(M&A)를 택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배민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매각하라’라고 했고, DH는 요기요를 팔고 배민을 품었다.
김 의장은 “배민 매출이 100억원일 때 그 정도면 상장하라는 이들도 많았지만, 회사를 더 키우는 길을 택했다”고 나중에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DH의 공습을 막아내고 국내 배달시장 1위를 고수한 끝에, 40억 달러 규모의 엑싯(exit·스타트업 투자자나 창업자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이뤄낸 것. 이후 하이퍼커넥트(아자르 앱)가 미국 매치그룹에 인수되고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등 한국 유니콘 기업의 대형 엑싯 사례가 이어졌다.
김봉진 미완의 과제
아시아 진출의 꿈은 미완으로 남았다. 김봉진 의장은 우아한형제들 지분을 DH에 매각할 때 현금화하는 대신 DH 지분으로 전환해, DH 이사회 멤버(글로벌 자문 이사회)로 경영에 참여했다. 앞서 배민은 2019년 ‘BAEMIN’ 브랜드로 베트남에, 2020년 ‘푸드네코’ 브랜드로 일본에 진출했었다.
김 의장의 우아DH의 아시아 사업 13개국 사업을 주관하며 아시아 사업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DH는 2021년 12월 ‘경쟁 심화와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일본 사업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베트남의 BAEMIN은 그랩 같은 동남아 대기업에 밀려 현지 시장 점유 4위권에 머물고 있다(베트남 전자상거래 백서 2022).
한국 배민은 혁신과 유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배민은 주식보상비용을 제외하면 2021년 사실상 흑자 전환했고, 지난해는 매출 2조9471억원에 영업이익 4241억원을 기록했다. 명실상부 돈 버는 기업이 된 것. 다만 외국계 모기업 DH의 캐시카우(현금 창출)에 머무는 것이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지난 1분기 DH 매출의 37%는 아시아에서 나왔고, 아시아 매출의 상당 부분은 한국 배민이 차지한다.
김봉진은 앞으로
김 의장은 사임 후 디자인 분야 창업과 스타트업 투자 계획을 밝혔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했고 배민 창업 전 네오위즈·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김 의장은 직원 대상 메일에서 “이제 ‘경영하는 디자이너’가 진짜 좋아했던 디자인이라는 일에 대한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다”라며 “커다란 세상에 ‘작은 생각 하나’와 ‘뜨거운 열정 하나’를 품고 세상과 맞짱을 떠보려는 후배들도 도와보려 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여러분을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 밖에는 생각나지 않네요”라며 “고맙고 또 고맙고, 고맙습니다”라고 이메일을 맺었다.
아래는 이메일 전문.
안녕하세요 김봉진입니다. 오랜만에 전체 메일을 드리네요. 무더운 여름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배민’은 열정적이고, 정열적입니다.
우리 구성원들과의 함께 했던 그 열정의 시간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열정은 너무 뜨겁고 너무 큰 힘을 쓰는 일인지라 좋은 쉼표가 있어야 좋은 마침표로 완성됩니다.
이제 제 인생의 큰 쉼표를 찍어봅니다.
‘우리들의 배민’과의 연결은 계속될 것입니다.
‘고문’이라는 역할로 여러분과 연결되어 뜨거운 도전에 지속적으로 힘을 더할 겁니다.
우리의 생각은 멋졌고, 우리의 시간들은 행복했습니다. 풋~ 하고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아! 하며 우리의 생각은 진화되었습니다.
우리들의 ‘풋!’과 ‘아!’는 대한민국의 외식시장을 진화시켰다고 자부합니다. 구성원들이 함께 이룬 것들입니다. 고마움을 전합니다.
‘평생직장 따윈 없다. 최고가 되어서 떠나라’ 우리 회사 공간에 적혀있는 문구입니다.
여러분의 멋진 도전을 위해 제가 적은 것입니다. 그때 생각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작은 시작 앞에서 여러분들과의 시간을 가슴에 담아봅니다.
이제 ‘경영하는 디자이너’가 진짜 좋아했던 디자인 이라는 일에 대한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커다란 세상에 ‘작은 생각 하나’와 ‘뜨거운 열정 하나’를 품고 세상과 맞짱을 떠보려는 후배들도 도와보려 합니다.
새로운 도전에 우리 배민 구성원들이 응원해주면 큰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면 ‘고맙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고맙다’는 말 밖에는 생각나지 않네요.
고맙고 또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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