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고장난 교실 에어컨... 신선했던 아이들의 반응

이준수 2023. 7. 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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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속에 생각보다 잘 적응해준 아이들... '편리함' 뒤에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

[이준수 기자]

 교실 천장에 설치된 와이파이 공유기와 냉온풍기
ⓒ 이준수
여름이 왔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여러 신호가 있지만, 학교에서는 에어컨 필터 청소가 신호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내가 직접 책상을 밟고 올라가서 필터를 분해하고는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문 업체에서 나와 청소를 해준다. 아마 여름철 에어컨 사용이 필수가 되다 보니 관련 예산이 배정된 탓이리라. 

올해도 어김없이 유니폼을 갖춰 입은 분들이 교실을 방문했다. 능숙하게 장치를 해체하고, 먼지가 낀 필터를 수거해 갔다. 교정 뒤편에서 전문 장비를 사용하여 세정 작업을 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에어컨 필터 청소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간단히 끝났다. 이때가 6월 초였다.

정비가 끝난 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6월 초는 냉방을 하기에 너무 일렀다. 불과 몇 주 전에 점퍼를 입고 다닌 기억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못 참을 정도로 덥지 않았다. 창문과 교실 앞뒷문을 모두 열어두면 충분히 지낼만했다. 우리 학교는 강원도 시골에 있다. 학교 주변에는 열을 마구 발산하는 교통체증도, 거대 빌딩도 없었다.

나는 가급적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계절 날씨에 대응하는 것을 선호한다. 더우면 반소매를 입고, 추우면 옷을 껴입는다. 직관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다. 물론 항상 버티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다. 고온 주의 안내 문자가 날아오는 날이나 창밖으로 주먹만 한 눈덩이가 펑펑 쏟아지면 에어컨이나 히터를 켠다. 더위나 추위를 심하게 타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 위주로 온도를 설정한다. 

교실 단위에서 기온과 습도, 공기질을 조절할 수 있는 국가의 교사로 생활하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렇지만 편리한 교육 여건이 반드시 윤리적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쾌적함의 이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건강을 해칠 날씨라면 에어컨을 켜는 것이 맞지만,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냉방은 자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부쩍 잦아진다.

의식적으로 에어컨을 안 켜는 아이들

양양의 하조대 근처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기후 변화는 당장 코 앞에 닥친 사안이다. 6월 중순 양양군에는 이틀 연속 열대야 현상이 발생했다. 아이들도 밤잠을 설쳤다. 6월 중순에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기온이 섭씨 25도를 웃돌았다. 

또 얼마 전에는 바로 윗동네인 속초 앞바다에 백상아리가 출몰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니 동해안에서 청상아리 같은 식인상어의 등장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독성 해파리 출현도 빈번해졌다. 이름도 생소한 노무라입깃해파리 무리가 바닷물을 일렁거리며 떠다닌다. 쏘이면 심한 통증과 함께 채찍 모양의 상처가 남는다. 

아이들은 자원과 에너지를 무한대로 사용하려는 태도가 현재의 기후 위기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에어컨을 덜 쓰자는 골자의 학급 규칙도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었다. 우리 반이 에어컨을 적게 튼다고 해서 전체 전력사용량에 생기는 변화는 극히 미미하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는 기초 지식을 배우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함양하는 곳이다. 일상생활 전반에서 자원을 적게 사용하는 습관이 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에어컨을 의식적으로 안 켜는 아이들은 핸드 타월도 한 장만 쓰고, 차 안 타고 걸어서 등교했다고 자랑하는 성향으로 자라난다. 

얼마 전에는 한 아이가 남대천 플로깅 행사에 참여해 주말 반나절 동안 쓰레기를 주웠다. 친구들은 그 아이에게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었다. 가식 같지는 않았다. 환경을 염려하는 친구의 행동을 아니꼽게 바라보지 않고, 좋은 일 했다며 엄지를 세워주는 5학년은 드물다.
 
 수리를 요청하기 위해 촬영한 에어컨 조작부 사진. 밀린 AS 일정으로 3주간 창문을 열고 지내야만 했다.
ⓒ 이준수
 
항상 일이 원만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체육 시간에 신나게 티볼 수업 2차시를 연달아하고 들어온 날이었다. 야외 잔디 운동장에서 땀을 흠뻑 흘린 탓에 온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대로는 도저히 3교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망설이지 않고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기왕 트는 것 기분 좋게 즐기자며 풍량을 최대치로 맞췄다.

오랜만에 만끽하게 될 찬바람의 향연을 기다리며 우리는 모두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스르륵, 띵! 기계가 멈췄다. 기대했던 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간 너무 가동을 안 해서 조작할 때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천천히 조작을 시도했다. 스르륵, 띵! 아까와 동일한 소리가 들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는 전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조작 패널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등 뒤의 아이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다시 도전하더라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거라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에어컨 필터 청소 후 시험 가동이라도 해 봤어야 했다. 필터 청소 일주일 후 옥상 방수 공사 기간이 있었다. 교실 에어컨 실외기는 옥상에 있다. 방수 공사를 하던 중 실외기 쪽을 건드렸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온몸에 흐르는 땀이 체육 시간의 여파인지 당황스러움 탓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반 에어컨이 고장 난 것 같다고. 그 순간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허탈함과 찝찝함이 복잡하게 뒤섞인 침묵이었다. 

나는 교실의 모든 창문과 교실 앞뒷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찬물로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다녀왔다. 에어컨 안 켜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아이들이라 해도 여름날 체육 블록수업 이후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것은 비극이었다. 나는 에어컨 수리를 문의했다. 초여름 대목이라 그런지 AS 일정이 보름 넘게 밀려있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금껏 해 왔던 대로 씩씩하게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기온이 점차 높아져감에 따라 아이들의 불만이 커졌다.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과학실에서 전담 수업을 받고 후텁지근한 교실로 귀환하는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에어컨 작동 유무를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6월 하순에는 비가 맹렬하게 내렸다가, 푹푹 찌는 날씨가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고장 난 에어컨 상황에 적응해 버린 건지, 아니면 지친 건지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수업 시간 자료 화면으로 영화 <천문>을 보던 아이가 문득 말했다. 

"조선 시대에는 에어컨이 아예 없었겠네요. 어휴 더웠겠다."

사극 영화에서 냉방을 떠올릴 줄은 몰랐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임금과 신하 모두 무척 더워 보이는 복장으로 궁궐에 출입하고 있었다. 잠시 영화를 멈추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의 냉수기에서는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물이 나오고, 천장에는 냉온풍기가 설치되어 있다. 미세먼지에 대비한 대형 공기청정기와 무선 와이파이망도 촘촘하다. 우리는 어쩌면 세종대왕보다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불편한 보름이 지나고 드디어 에어컨 수리 기사님이 왔다. 수리는 허무하리라 만치 빨리 끝났다. 기사님이 옥상 실외기와 교실 조작 패널을 대수롭지 않게 살펴보더니 십여 분 만에 정상화되었다. 

편리함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수리 기념으로 대망의 2023년 여름 첫 에어컨 가동식을 가졌다. 띵! 메마른 효과음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나왔다. 첫 3분 동안 헤죽헤죽 웃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곧 별 감흥이 없어졌다. 5분 뒤에는 여학생 한 명이 춥다면서 팔을 떨고, 이러다 냉방병 걸리겠다고 해서 끄고 말았다. 

체육 시간 직후 몇 번과 폭염의 오후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우리 반 에어컨은 개점휴업 상태다. 우리는 도대체 무얼 기대하고서 보름간 에어컨 수리를 기다렸던 걸까.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보름 정도는 에어컨 안 틀어도 별 탈 없이 수업이 가능하다, 인간은 적응력이 굉장히 강하다.

결국 쾌적함이라는 상태도 기분과 적응의 문제가 아닐까. 한국은 선진국이므로 에어컨을 켤지 말지가 선택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에너지 사용으로 인해 생성된 탄소배출물은 한국을 떠나 지구 단위에서 공유된다.

건설폐기물처럼 우리 땅에 직접 남겨지는 것들과 달리 다른 장소로 옮겨 가는 물과 공기는 우리의 죄책감을 가볍게 만든다. 편리함은 좋은 것이지만, 편리함의 대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히 책임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절제와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일까. 학생의 편리와 쾌적함이라는 우수한 교육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항상 우선이어야 하는 걸까.

일단은 아이들이 더위로 힘들어하면 에어컨을 바로 켜고 있다. 그렇지만 충분히 시원해져서 끌 때가 되면 편리함과 그 대가에 대해 짤막하게라도 대화를 나눈다. 

슈퍼 엘리뇨가 다가오고 있다고, 슈퍼 엘리뇨의 원인 속에는 그간 선진국 시민들이 누린 편리함이 포함되어 있다고. 마음이 불편하지만 나와 우리 반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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