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막내딸 사망 보험금을 둘러싼 가족의 갈등

조영준 2023. 7. 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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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63]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내 단편 상영작 <우리의 내일> 외 1편

[조영준 기자]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우리의 내일>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우리의 내일>
한국 / 2023 / 25분
감독: 권한수

15년 전 실종된 동생 미래를 닮았다는 사람에 대한 제보를 받게 된 가족. 생김새와 모습이 똑같고 왼팔에 있는 큰 흉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연락이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긴 시간 동생에 대한 수많은 소식이 들려왔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소식이 없었을 뿐이다. 우리(최서원 분)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동생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뿐이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소식을 확인하러 떠난다.

가족의 오랜 믿음과 희생은 보험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의해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미래 앞으로 가입이 되어 있는 사망 관련 보험이 다음 달 만료가 된다는 내용의 전화다. 문제는 지금 신고되어 있는 실종 상태로는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없으며, 이와 관련한 사항의 변경은 보험이 만료되는 다음 달 전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험사는 이미 수 차례 엄마 희정(양말복 분)에게 연락을 보내 이 내용을 안내한 상황이었고, 엄마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숨겨왔던 것이다. 이렇게 하염없이 유예되어 왔던 과거에 묶인 가족의 삶에 갑자기 제동이 걸리게 된다. 실종된 동생 미래의 상태를 실종에서 사망으로 바꾼다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의 내일>은 실종된 딸에 대한 마음을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엄마의 심리와 그를 이해하면서도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다른 가족 우리와 민성(조승민 분)이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동생의 실종이라는 과거의 문제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극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역시 사망 보험금이다. 감독은 이 가정에 동생의 사망 보험금이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포기한 채로 기계처럼 일만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부여함으로써 인간성과 물질성 사이에서 갈등이 발화하도록 유도한다.

극 중의 이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처럼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물질성을 선택하려는 우리와 민성 쪽에도 타당해 보이는 이유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딸을 지키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 장장 10년이 넘는 세월을 두 사람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책임을 다해 살아왔다. 막내딸 미래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으로 가정을 돌보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며 전단을 붙이고 돌리는 동안 두 사람은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일만 하며 가족의 삶을 대신 지탱해 왔던 것이다.

15년, 기약도 없이 조금만 참아달라던 엄마의 간절한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이라고는 가족의 대출금과 빚, 그리고 엄마가 가진 당신의 상실감에 대한 집착뿐이다. 23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다는 이름 모를 사람의 이야기만 믿고 가능성도 희박한 일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헛된 희망을 키운다. 곁에 남은 딸과 아들이 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최선을 다해왔던 그 이해가 엄마가 감춰뒀던 동생의 사망보험금 앞에서 모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가족 아니야? 엄마한테 나하고 오빠는 도대체 뭔데?"

영화는 엄마가 가지고 있을 우리와 민성에 대한 고마움과 아직도 찾지 못한 딸 미래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 관객들을 밀어 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감정은 서로 자리를 바꿔 위치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 되지만, 인물들의 갈등을 쉽게 해소하도록 두지는 않는 것이다. 현재에 미안함이 커지게 되면 과거에 실종된 딸 미래를 포기해야 하고, 과거에 고마움이 커지게 되려면 다시 딸 미래가 건강하게 돌아와야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하다.

가족 사이의 갈등 위에서 내내 중립적인 시선을 보이던 영화는 엄마의 결심으로 인해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순간 의미 심장한 장면을 하나 관객들에게 던진다. 쉽지 않았을 엄마 희정의 선택을 우리가 다시 번복시켜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설정을 제시하면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선택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마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막내딸의 죽음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던 엄마의 마음과 동일하게, 우리에게는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적극적인 확인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 준다.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모른 척하기에는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는 그런 장면.

영화 전반을 통해 가족의 선택과 갈등이 쌓이는 동안 여러 생각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가치에 해당하는 걸까. 정말로 그 선택이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여기에 어떤 대답도 완벽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X의 저주>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 X의 저주 >
한국 / 2023 / 19분
감독: 김희수

이별이란 원래 그런 거야. 우린 서로 사랑하지 않아. 무더운 여름날 회전 기능이 고장 난 선풍기 한 대를 이유로 두 남녀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지금 이 두 사람에게는 상대가 놓인 상황보다 자신의 컨디션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별의 코 앞에 서서도 서로의 자존심은 내려지지 않는다. 자신이 사 준 것이니 바지까지 싹 다 벗어놓고 나가라는 지수(정수지 분)와 그걸 또 얄밉게 받아내며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공학(권다함 분).

어쩌면 두 사람의 이별이 꼭 선풍기 때문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치사하고 더러운 상황 앞에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지수는 공학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 평생 안 설 거야."

이처럼 영화 < X의 저주 >는 이별 앞에서 이제 헤어지는 남자 친구를 향한 한 여자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된다. 남자가 앞으로 성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이 무섭고 사악한 저주.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모두 이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얼마 후 공학이 지수를 다시 찾아오면서부터 일어난다. 아니, 벌써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재회를 하게 된다. 지수의 말대로 공학의 홀로 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약을 먹어봐도 병원을 가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헤어지던 날까지는 제 기능을 충실히 잘해왔던,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던 부분이기에 공학은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다. 지수 역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녀는 홧김에 순간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말을 했을 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공학의 신체적 문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코미디의 장르적 속성을 차용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장치일 뿐이다. 이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장애물과 문제의 대표성을 지닌 대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공학과 지수가 각각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보기 위한 하나의 실험 장치에 가깝다는 뜻이다.

물론 이미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선풍기에 엮인 하나의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두 사람의 성향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조금 더 긴 과정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이유로 이별이라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려 보기 위함이다.

이런 경우의 문제가 늘 그렇듯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는 않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대한 배려는 상실하고 정해진 목적만을 향해 돌진하는 성향을 보이는 공학과 그 과정에서 다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보다 부정적인 행동으로 먼저 표출하는 모습을 가진 지수의 모습. 타인의 개입 없이도 서로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모습을 이제야 돌아보게 된다.

서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만 이미 매듭지어진 이별을 막을 수는 없다. X의 저주가 풀리고 공학이 자신감과 건강을 회복한 것이 유일한 다행이랄까. 단순한 구조의 형식과 가볍게 웃기 좋은 포맷을 하고 있지만, 지난날의 사랑과 자신의 방식을 한번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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