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찬란했다, 엘튼 존의 '라스트 댄스'

이현파 2023. 7. 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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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생에서 마지막 월드 투어 마무리한 '전설' 엘튼 존

[이현파 기자]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리오넬 메시는 'GOAT(역사상 가장 위대한)' 논쟁을 끝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렇다면 뮤직 페스티벌의 'GOAT'는 누구일까? 이견이 있겠지만, 글래스톤베리의 손을 들고 싶다.

지난 6월 22일부터 25일에 걸쳐, 2023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 열렸다. 글래스톤베리는 영국 서머싯주에 위치한 마이클 이비스(Michael Evis) 소유의 워디 팜(Worthy Farm)에서 열린다. 1970년 히피즘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수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문화적 상징물이다. 글래스톤베리에서 록, 팝, 일렉트로니카, 힙합, 알앤비, 재즈, 레게, 라틴 등 장르의 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코미디와 서커스, 연극, 시 낭송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만날 수 있다.

U2, 데이비드 보위, 폴 매카트니, 비욘세 등 위대한 뮤지션들이 이 곳을 빛냈다.  달라이 라마, 제레미 코빈 전 노동당 당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등 사회적인 인물이 등장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글래스톤베리는 단순히 슈퍼스타를 만나는 곳이 아니다. 크고 작은 무대가 수십 개 가량 존재하며, 다양한 뮤지션들이 자신이 속한 음악 신(scene)을 몸소 소개하는 축제라는 점에 그 진가가 있다. 매년 이곳에 가기 위해 수백만 명이 티켓을 신청하고, 매년 20만 명의 인파가 120만 평 규모의 워디 팜을 가득 채운다. 

'꿈의 축제' 마무리한 엘튼 존
 
▲ Elton John - Rocket Man (Glastonbury 2023) ⓒ BBC Music

카타르 월드컵의 주인공이 리오넬 메시였다면, 올해 글래스톤 베리의 주인공은 엘튼 존이었다. 엘튼 존은 올해 글래스톤베리의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 나섰다. 이번 공연은 엘튼 존의 마지막 월드 투어인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 투어(Farewell Yellow Brick Road Tour)'의 마지막 영국 공연이라 의미가 더욱 컸다.

엘튼 존은 음악 활동은 계속 할 것이지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월드 투어로부터 은퇴할 것이라 선언했던 바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이 투어는 지난 5월 30일까지 약 9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한 팝 뮤지션의 투어로 기록되었다. 거장의 마지막 영국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이날 관객 중에 유독 장년층이 많았던 것도 엘튼 존의 힘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엘튼 존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불후의 명작 <라이온 킹>의 주제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부르는 모습, 혹은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Candle In The Wind'를 부르는 모습,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것은 엘튼 존 커리어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빌보드가 선정한 1970년대의 아이콘이며, 열정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가로지른 록스타다. 3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25년 연속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40위권에 진입한 곡을 배출했고,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는 팝의 간판이다.

엘튼 존이 1975년에 커버한 더 후(The Who)의 명곡 'Pinball Wizard'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The Bitch Is Back',  'Your Song', 'Goodbye Yellow Brick Road', 'Border Song' 등 그의 수십년 커리어를 요약하는 명곡이 이어졌다. 깊은 목소리와 현란한 피아노 연주는 건재했다. 엘튼 존의 투어를 수십 년 간 함께 해온 세션맨들이 옛 명곡을 연주하면서 깊이를 더 했다.

과거만 존재하는 공연은 아니었다.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아티스트이자 '퀴어 팝'의 아이콘인 리나 사와야마, 록밴드 킬러스의 브랜든 플라워스, 키키 디, 스티븐 산체스 등 자신보다 젊은 뮤지션들과도 함께 호흡을 맞췄다. 엘튼 존의 전기 영화 '로켓 맨'에서 엘튼 존을 연기한 배우 태런 에거튼 역시 공연장을 찾았다.

일흔 여섯 엘튼 존의 과거와 오늘
 
 2021년 엘튼 존이 발표한 'The Lockdown Sessions'. 이 앨범에서 엘튼 존은 두아 리파,찰리 푸스 등 다양한 후배 뮤지션과의 협업을 펼쳤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물론 엘튼 존에게 있어 세대 화합의 장면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엘튼 존은 계속 새로운 음악을 듣고, '오늘'과 호흡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래퍼 에미넴과 함께 'Stan'을 불렀다. 대표적인 게이 팝스타인 그가 '호모포비아'적인 가사를 쓰는 래퍼와 함께 공연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2018년에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한국 인디 밴드 세이수미의 'Old Town'을 추천하기도 했다.

2021년에 발표한 < Lockdown Sessions >에서는 두아 리파, 찰리 푸스, 리나 사와야마, PNAU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작업하면서, 거의 모든 팝의 장르를 아울렀다. 특히 두아 리파와 함께 부른 'Cold Heart(Pnau 리믹스 버전)'은 빌보드 핫 100 차트 7위,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번 글래스톤베리 공연은 일흔여섯 엘튼 존의 과거와 오늘을 부지런히 축약한 90분이었다.

영국에서 직접 엘튼 존의 글래스톤베리 공연을 관람한 A씨는 "공연 말미에 울려 퍼진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가 최고였다"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이 곡은 엘튼 존의 대표적인 발라드 넘버 중 하나다. 동시에 이 곡이 음악적 동지이자 또 다른 게이 팝스타였던 고(故) 조지 마이클에게 헌정된만큼 의미는 더 깊었다(이날은 조지 마이클의 예순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마지막 곡 'Rocket Man' 역시 압권이었다. 압도적인 조명과 폭죽이 용솟음치는 가운데, 엘튼 존은 제목 그대로 '로켓 맨'처럼 우뚝 섰다.

이 공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움 그 자체였다. 12만 명의 관객이 그의 공연을 직접 관람고, 760만 명이 BBC 중계를 통해 그의 공연을 지켜 보았다. 글래스톤베리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다. 엘튼 존은 7월 8일 스웨덴 공연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월드 투어를 마무리한다. 엘튼 존의 '라스트 댄스'는 모든 음악 팬에게 숭고한 감정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무대를 떠난다. 그의 공연을 한국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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