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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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면 이육사 시인의 작품 '청포도'가 떠오른다.
7월의 시 '청포도'는 1939년 8월에 '문장(文章)'지에 발표됐다.
시인이 고운 우리말로 청량하게 그려낸 그 희망적인 '느낌'이 와닿지 않는가.
1944년 1월, 서른아홉 짧은 생을 베이징의 감옥에서 마치기까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시 쓰기를 그치지 않은 시인 덕분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일로도 '청포도'가 윗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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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면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7월이면 이육사 시인의 작품 '청포도'가 떠오른다. 7월의 시 '청포도'는 1939년 8월에 '문장(文章)'지에 발표됐다. 절망의 공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광복을 노래한 독립운동가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한 '절정',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부르는 '광야'도 절창이지만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학창시절, 밑줄 긋고 별표 쳐가며 갖은 수사법, 상징에 내포된 의미를 요약 전수받던 국어시간의 기억은 잠시 묻어두자. 시인이 고운 우리말로 청량하게 그려낸 그 희망적인 '느낌'이 와닿지 않는가.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에 적극 동의하지만, 불후의 명작은 모르고 봐도 우리 가슴을 두드리는 바가 있다.
1944년 1월, 서른아홉 짧은 생을 베이징의 감옥에서 마치기까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시 쓰기를 그치지 않은 시인 덕분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일로도 '청포도'가 윗길이다.
포도의 풍성한 덩굴과 알알이 달린 과실 모양새는 풍요·다산·자손번창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해서, 조선시대 포도 그림, 포도문양 도자기도 여러 점 전해진다. 그간 본 작품들은 수묵이나 백자에 철화로 포도알이 표현돼 이때는 청포도는 없었나 했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청포도를 '수정포도'라고 불렀고, 조선왕조실록에 태조와 연산군이 즐겼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다 익어도 투명영롱한 연두색을 띠는 청포도에 어울리는 보석 같은 작명센스다.
선조들이 드신 청포도는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하지만, 과일가게에서 맛볼 수 있는 청포도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청포도 품종에는 샤인머스캣, 세네카, 나이아가라, 톰슨 시들리스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알이 둥근 세네카종이 유통됐지만, 2010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씨 없는 품종인 톰슨 시들리스가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다가 2012년 이후에는 경상북도에서 재배해 수출하기 시작한 샤인머스캣이 대세로 성장했다.
샤인머스캣은 포도송이가 우람하며, 껍질째 먹을 수 있고, 탱글한 식감과 상쾌한 향, 18브릭스 내외 고당도로 한 송이에 몇만 원씩 팔리는 명품과일이 됐다. 1988년 일본 과일나무과학연구원에서 만들어낸 품종인데 '식물의 신품종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라 유효기간 6년 내 품종등록을 하지 않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가 없고, 수출량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는 스토리도 꽤 알려졌다.
과수농가들이 너도나도 재배에 뛰어들어 국내 포도 재배면적 중 샤인머스캣 비중이 2017년 4%에서 2022년 41.4%로 급증했다. 일찍이 블루베리·아로니아 열풍 사태에서 봤듯 공급과잉에 따라 수익성이 하락세다. 명절 특수를 노리고 덜 익은 포도를 내놓는 등 허술한 품질관리로 외면하는 소비자가 늘어 재배농가와 주요산지 지자체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에서 개발됐다는 이유로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청포(淸袍)를 입고" 찾아오는 그 손님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있겠다. 다만, 샤인머스캣을 먹으면서도 나라 잃은 고달픈 삶 속에서도 광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시인이 있었음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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