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내부망에서 동료 경찰 22명 전화번호 알아내 고소장 기재한 경찰 무죄 확정
자신과 관련된 경찰 내부망 게시글에 비판적인 댓글을 단 경찰들을 고소하면서 직원 조회 프로그램을 이용해 알아낸 휴대전화번호를 고소장에 기재한 경찰의 무죄가 확정됐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주체인 정보처리업무 종사자로 볼 수 없는 데다가,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경찰공무원이면 누구나 동료 직원의 연락처 등을 조회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통해 알아낸 휴대전화번호를 기재한 것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돼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2월 22명의 경찰을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내지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휴대전화번호를 내부 전산시스템을 통해 파악한 뒤 고소장에 기재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을 언급한 경찰 27명과 기자 2명 등 모두 30명을 고소했는데, A씨가 이미 휴대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던 경찰을 제외하고 새로 내부 전산망을 조회해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낸 나머지 경찰들에 대해서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A씨가 고소한 경찰들은 2018년 1월 8일 내부 게시판(폴넷)에 올라온 '김해 서부서 여경 1인 시위 뉴스를 보고'라는 글과 2018년 2월 12일 같은 게시판에 등록된 '성추행 피해 여경 면담해 주고 내게 벌어진 엄청난 일들…'이라는 제목의 글에 A씨에 대한 비판적인 댓글을 단 경찰들이었다.
A씨는 이들이 작성한 댓글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자신을 모욕하는 내용이라고 판단하고 수사기관에 고소하기로 마음먹은 뒤 자신이 근무하는 경찰서 지구대 사무실에서 업무용 컴퓨터로 경찰청 표준인사시스템인 'e사람'에 접속해 '직원 조회' 코너를 통해 이들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이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고소장에 휴대전화번호를 기재해 2018년 7~8월 전주지검 등 5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에서 A씨 측은 검찰 측 공소사실에 담긴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A씨는 개인정보처리자가 아니며 ▲고소장에 휴대전화번호를 기재한 것을 개인정보의 '누설' 또는 '유출'로 볼 수 없고 ▲A씨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돼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사는 ▲A씨는 업무상 전산시스템에서 개인정보를 처리했던 자로서 처벌 대상에 포함되고 ▲내부 시스템에 등재된 전화번호를 사적인 용도로 고소장에 기재한 것은 개인정보의 유출 내지 누설에 해당하고 ▲정당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 측 추장이 맞다고 봤다.
먼저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의 의미에 관해 앞서 서울고등법원이 판시한 내용을 인용했다.
서울고법은 2019년 "업무상 알게 된 법 제2조 1호 소정의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가 그 업무 즉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개인정보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 없이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가 담당한 모든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일체의 개인정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즉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인정보처리자의 누설이나 유출을 처벌하는 대상인 개인정보는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개인정보에 한정되지, 개인정보처리자가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개인정보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재판부는 "A씨가 이용한 'e사람'의 '직원 조회' 시스템은 경찰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동료직원을 찾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휴대전화번호는 해당 직원이 공개를 허용한 경우에만 검색되는 사실, 피고인은 이러한 내부 직원 검색에 관한 직접적인 업무를 담당하지는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e사람'의 '직원 조회'는 직원의 이름을 입력하면 소속, 직급, 직장전화 정보가 나타나고, 휴대전화번호는 해당 직원이 공개를 허용한 경우에만 조회되며, 비공개로 설정한 경우에는 '비공개'로 나타난다. 직원조회 화면 하단에는 '내부직원 개인정보 사적활용 금지!'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해당 시스템은 모든 경찰공무원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수사대상자 조회 시스템과는 달리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조회화면에는 '내부직원 개인정보 사적 활용 금지'라는 경고문이 표시돼 있기는 하나, 직원들은 업무적인 일 또는 개인적인 일로 동료직원의 연락처가 필요한 경우 별다른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라며 "경찰이 경찰업무를 위해 일반 국민 또는 수사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조회하는 '온라인조회'와는 달리 이러한 직원검색 시스템은 폭넓은 접근 및 사용이 허락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동료들을 명예훼손죄로 수사기관에 고소하며 피고소인의 연락처 기재란에 위와 같이 취득한 휴대전화번호를 적은 것으로, 이를 피고인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개인정보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은 내부 직원검색에 관한 직접적인 업무를 담당하지는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2017년 5월 11일부터 2018년 5월 31일까지는 B 경찰서 C 지구대에서 순찰요원으로 근무했고, 2018년 6월 1일부터는 또 다른 경찰서 지구대에서 순찰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처벌 예외사유들을 고려할 때 A씨의 행위를 개인정보의 '누설'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의 유출을 금지하고 있으나 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2항은 개인정보처리자의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제7호)' 및 '법원의 재판업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제8호)'를 예외사유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는 경우 민사소송법 제249조(소장의 기재사항)에 따라 당사자를 특정해야 하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고소를 하는 경우도 관련 법령상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기재해야 하므로, 결국 형사 및 민사절차에 따라 법원 및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고 이와 같이 제출된 개인정보는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돼 다른 제3자가 이에 접근할 수도 없으므로, 이를 개인정보의 '누설'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일부 부적절한 측면이 있었음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 징계 처분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개인정보보호법상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27명의 경찰관 및 기자 2명 등 30명을 자신의 관련사건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라며 "실제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무차별 고소하며 내부망에서 연락처를 찾아 기재한 피고인의 행동이 적절하다고는 보기 어려우나, 위 행위를 내부규정 위반으로 징계 등 처분을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행위가 일반적으로 개인정보 누설행위로서 처벌대상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기관에 고소 및 법원에 소송제기에 필요한 정보를 기재하는 행위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하면, 실제로 억울한 당사자의 고소·고발과 소송제기 등 개인의 정당한 권리의 행사까지 제한하게 돼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취지에도 반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2심 역시 이 같은 1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이 밝힌 이유에 일부 부적절한 부분이 있지만 무죄라는 결론은 타당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유 설시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개인정보 누설 등으로 인한 개인정보보호법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상고 기각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앞서 대법원이 다른 사건에서 고소장에 개인정보를 기재한 것도 개인정보의 누설이나 유출이라고 판단한 선례에 비춰, 2심이 개인정보의 누설이나 유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것은 잘못됐지만 피고인이 개인정보처리자가 아니어서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없거나 정당행위에 해당돼 위법성이 없어 무죄라는 결론은 타당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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