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정에 또 일본 세운다, 이번엔 관동대학살
[민병래 기자]
▲ 국회의원회관 제10간담회실에서 윤미향·문석진 의원 주최로 소송관계자 준비 모임이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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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10회의실에서 윤미향 의원과 문석진 의원 주최로 의미있는 모임이 열렸다. 간토 학살(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일본의 국가책임을 묻는 소송'을 준비하는 좌담회였다.
이 자리에는 소송을 진행할 유족 권재익,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종수, 경북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의 김창록 교수,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위위원장 최봉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 권태윤,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 성주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김창주 등 여러 관계자가 모였다.
이 자리에선 이전 대일 과거사 피해소송에 비추어 관동 조선인 학살 사건의 소송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승소 전망은 어떤가에 대해 진지한 얘기가 오고 갔다. 윤미향 의원은 인사말에서 "해결해야 할 시기를 놓친 역사적 문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며 그동안 "누군가 하겠지 하고 미뤄왔던 것을 반성한다. 일본군 '위안부' 소송을 수십 년간 이끌어온 경험을 살려 함께하겠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힘을 모으자"라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간토 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종수는, 이 법정 투쟁은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재일동포의 명예를 회복하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7월에 발표된 일본변호사협회의 '간토대진재 인권구제청구사건 조사보고서'(이하 보고서)에 비추어 봐서도 이 소송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 보고서는 1999년 문무선이 일본변호사협회에 요청했던 인권구체신청에 대한 답변 성격의 문서다.
1923년 요코하마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을 직접 겪고 살아남은 문무선은 "조선인 학살 사건이 집단 학살이고 중대한 인권침해임을 밝혀달라"고 일본변호사협회에 요청했다. 이 청구에 대해 일본변호사협회는 보고서에서 "조사 결과 조선인과 중국인이 일본 군대에 의해 학살된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며 "일본 정부는 그 진상을 발표하고 책임에 대해 사죄하라"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권고했다. 일본변호사협회는 당시 정부 문서, 재판소의 판결문 등 여러 문서를 4년여에 걸쳐서 조사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국가 면제 조항' '청구권 협정' 둘 다 걸림돌 안돼
김종수 집행위원장에 이어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소송은 간토에서 학살된 피해자의 유족이 한국 법정에서 일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법정이 될 것이라며 몇 가지 논점을 짚었다.
우선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국가 면제 조항'. 이는 한 나라의 법정에서 다른 주권 국가를 피고로 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김창록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소송을 다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021년 1월 8일 반 인도적 범죄에 대해서 국가면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는 확정 판결이 되었다(2016가합 505092판결).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도 국가 면제 조항은 극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다음 쟁점은 1965년에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범위에 관한 문제다. 일본은 간토 학살이 청구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나올 수 있다. 그런데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강제동원 전원합의체에서 "식민 지배와 직결된 반 인도적 불법 행위의 경우 개인청구권이 살아있다"라고 판결한 바가 있으니 이 역시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발언하는 최봉태 변호사. 최 변호사는 대한변협 일제피해자특위위원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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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권태윤 민변 과거사청산위원장은 "이미 백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일본이 정부 문서 공개를 거부할 테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입증할 자료를 어떻게든 확보해야 한다. 또 소송이 시작되면 피고가 될 일본 정부가 대응하지 않아 재판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이때 법정 투쟁이 동력을 얻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민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윤미향 의원은 이날 자리를 마무리 하며 "오늘은 준비 좌담회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를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첫 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자. 유기홍 의원이 지난 3월 8일 대표발의한 간토 학살특볍법의 통과를 비롯해 소송 작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유족 권재익은 "관동에서 학살된 희생자와 그 유족은 잊힌 존재였다. 우리는 웅크리고 살았다. 정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본 땅에서 나쁜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지금은 일본 정부가 '조선인이 습격해 온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군대를 동원해 직접 학살에 나섰고 자경단 결성을 부추겼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당당하게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송이 중요한데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다"라고 밝혔다.
제노사이드 범죄 단죄하는 의미
관동대학살은 일본이 저지른 으뜸가는 범죄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잊힌 일이었다. 아직 소송까지는 준비할 일도 많고 검토해야 할 일도 많지만 올해 관동대학살(1923.9.1) 백 주년을 맞아 이제라도 소송이 이루어진다면 일본 국가의 학살 범죄를 인류 사회에 알리는 역사적 법정이 열리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사법부는 반 인도적 범죄에 대해 국가 면제 조항을 적용하지 않고 청구권 협정을 해석할 때도 일본의 불법 지배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판결했다. 과거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과 평화를 드높이는 판례를 남긴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소송이나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처럼 이 재판도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관동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서 유족이 승소하면, 이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책임을 엄격하게 물은 법정처럼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고 다시는 제노사이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오는 9월 1일 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간토의 유족이 일본 정부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을지 한국 사회와 언론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관련기사] 끔찍한 살인 숨기는 일본, 진정 우리의 파트너인가
(https://omn.kr/22x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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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서울중앙지법 2021. 1. 8. 선고 2016가합505092 판결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갑 등이 일본국을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갑 등에 대한 일련의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일본국은 일본제국의 불법행위로 갑 등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되었고 판례로서 남았다. 2. 유족 권재익의 외할아버지 남성규 유족 권재익의 외할아버지 남성규는 피해자 중 이름과 학살 경위가 밝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당시 재일YMCA 간사로 학살 실태를 조사했던 최승만의 ‘극웅필경’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244번지 출신인 남성규는 1922년 군마현으로 갔다. 자경단의 만행이 심해지자 고용주였던 신류천 사리회사의 사장 다나카 치요키치(田中千代吉)의 주선으로 다른 조선인노동자 14명과 함께 군마현 후지오카 경찰서로 피신했다. 이 소식을 듣고 후지오카촌의 자경단 대표 13명이 경찰서로 몰려와 “조선인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경찰서장은 신마치(新町)로 출장중인 상태였다. 후지오카 경찰은 서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고 오후 여섯 시경이 되자 자경단은 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자경단 내에서 누군가 “해 버리자”고 외치자 자경단은 경찰서 안으로 밀고 들어가 유치장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를 일본도와 죽창, 엽총으로 찌르고 베었다. 9월 7일 검사국에서 학살 당한 사람의 신원을 조사했는데 이때 남성규도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규를 기리는 추도비는 재일 조선인들의 노력으로 현재 군마현 조도지(成道寺)에 1957년 1월 1일에 재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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