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노다지' 전세계 채굴 전쟁…삼성 "안한다" 못박은 이유
19세기 미국 서부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른바 ‘골드 러시’다. 2023년엔 ‘바닷속 골드러시’가 벌어질 듯하다. 수천m 심해저(深海底)에서 망간·구리·코발트 등을 채굴하는 사업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광물들은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저장장치 등에 탑재된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유엔(UN) 산하 국제해저기구(ISA)가 오는 9일(현지시간)까지 관련 규정을 마련하지 않으면, 다음날인 10일부터 면허 신청을 통해 심해 광물을 상업적으로 캐낼 길이 열린다. 육상보다 매장량이 훨씬 많고,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를 들여 채굴이 가능해 관심을 갖는 국가와 기업이 많다. 하지만 논란도 거세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지구 온난화 억제에 기여할 거란 기대와 미지의 영역인 심해 생태계가 파괴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올 거란 우려가 맞서고 있다.
심해 채굴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해묵은 논쟁이다.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은 국가가 관리하지만, 공해상에선 유엔의 협약이 적용된다. ISA는 국제 해역에서 시험채굴만 허용하고 상업 활동을 위한 대규모 채굴은 금지한 상태에서 2016년부터 상업 채굴 관련 국제 협약 마련에 착수했다.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가 쏘아올린 ‘채굴 논란’
하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가 행동에 나섰다. 나우루는 2021년 법률 조항을 발동해 ISA에 “회원국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심해 채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엔 해양법 협약에 있는 ‘2년 규정’ 조항을 내걸고 그때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으면 곧바로 심해채굴에 나설 것이라는 ‘최후통첩’과 함께다.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르면 심해 탐사권을 확보한 회원국이 심해 채굴 의사를 밝히면 ISA는 2년 안에 허용여부 검토를 마쳐야 한다. 시한을 넘기면 기존에 존재하는 규정에 따라 채굴 신청을 받고 수락해야 한다.
그 시한이 오는 9일이다. ISA가 이날까지 별도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으면, 각국 정부나 기업들은 다음날부터 심해채굴 면허 신청을 할 수 있다. 만일 36곳의 ISA 이사국 중 찬성표로 3분의 1만 얻으면 심해채굴이 가능해진다.
논란을 촉발한 나우루는 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의식해 ISA에 곧바로 상업용 채굴을 신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르고 데이예 나우루 유엔 대사는 지난 3월 “우리의 관심사는 법률적 확실성 보장과 책임 있는 개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심해 채굴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게 관련 규정을 만들자고 주장해왔던 만큼 곧 신청에 나설 확률이 높다.
나우루는 세계 최대 광산기업 글렌코어 등이 출자한 캐나다 기업 더메탈스컴퍼니(TMC)와 함께 세운 나우루해양자원주식회사(NORI)를 통해 심해 채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나우루와 TMC가 면허를 받는다면 지켜보던 다른 국가, 기업도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자메이카 회의에서 관련 규정 마련 합의에 실패한 ISA는 이달 말 다시 회의를 개최해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이사국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SA 이사국 중에선 심해 자원 개발에 관심이 많은 중국·러시아·영국·캐나다·노르웨이는 채굴 관련 규정을 마련해 심해 개발과 환경 보호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독일·프랑스·스페인·코스타리카·뉴질랜드·칠레·파나마·팔라우·피지·미크로네시아 연방 등은 모든 해저 채굴 활동의 일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 해양법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미국은 ISA 회원국이 아니다.
심해 채굴이 주목받은 건 태평양·인도양 등 해저 4000~6000m에 있는 '망간 단괴' 때문이다.이 검은 광물 덩어리엔 망간을 비롯해 리튬, 니켈, 코발트 등 40여종의 금속이 뭉쳐져 있다. '바닷속 노다지'로 불리는 망간단괴는 전 세계 심해에 1조7000억t 가량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찬성론자 “삼림 채굴보다 친환경, 중국서 독립해야”
심해 채굴 찬성론자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개발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리튬과 니켈 같은 광물 수요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각국이 정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2040년까지 매년 4800만t의 니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2020년 연간 생산보다 약 19배 많은 양이다. 같은 목표를 위해 리튬은 42배, 흑연은 25배가 필요하다.
심해저 개발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CCZ)’이다. 태평양 하와이섬 남동쪽 약 450만㎢ 면적의 이곳에 니켈만 3억4000만t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추정한 전 세계 육상 니켈 매장량의 3배를 웃도는 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CCZ의 심해에서는 채굴되는 니켈 1t 당 약 6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반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열대우림에선 니켈 1t 당 60t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온다”며 “해저의 망간단괴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면 육지 삼림을 지금처럼 심각하게 훼손하며 광물을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심해 망간단괴에는 육상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금속이 함유돼 있어 적은 양의 에너지만으로도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심해 채굴이 육상 채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의 4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중국이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 등의 원료로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한 가운데, 심해 채굴이 중국산 광물 의존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란 주장도 나온다. 심해채굴 기업 영국해저자원(UKSR)의 한스 올라프 하이드 회장은 “심해 채굴은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매우 명확한 대응”이라며 “중국의 배터리 금속 공급망 지배에 유럽연합(EU)이 맞서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대론자 “바다 생태계 돌이킬 수 없는 피해”
광물 채취로 바닷속 탄소가 빠져나올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국제 환경 관련 자선단체인 ‘포나 앤드 플로라’의 캐서린 웰러 지구 정책 책임자는 “깊은 바다는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거대한 저장고”라며 “광물 채취가 이뤄지면 기후위기가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해저 채굴이 본격화되면 한국엔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년간 관련 기술 개발에 힘써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2년 ISA에서 확보한 CCZ 해역 독점 탐사광구(7만5000㎢) 내에서 망간단괴 탐사와 상용화 기반 기술개발을 추진해 왔다. 여기는 한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확보한 광구로, 망간단괴 약 5억6000만t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연간 300만t 규모로, 100년 이상 채굴할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민간 기업은 현재로선 심해채굴에 유보적이다. 삼성SDI는 지난 2021년 구글·BMW·볼보 등과 함께 심해저 채굴을 하지도 않고 심해저 채굴로 구해진 광물을 쓰지도 않는다는 세계자연기금(WWF) ‘심해저 광물 채굴 방지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로선 전기차 수요가 높은 미국과 유럽에서 친환경 규제를 근거로 시장 진입을 막을 것에 대비해야 한다”며 “WWF 가입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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