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킬러 문항과 정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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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보다 중요하다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고작 5개월 앞두고 갑자기 킬러 문항 제거 작전이 시작됐다.
킬러 문항은 문제 원인이기보다 과도한 경쟁과 대학 서열화, 시험 한 번에 인생을 걸게 하는 제도와 문화의 산물이자 결과다.
입시와 사교육에서 킬러 문항은 나머지 문제를 다 맞히는 소수 학생의 이슈일 뿐이지만, 크게 보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질병을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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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보다 중요하다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고작 5개월 앞두고 갑자기 킬러 문항 제거 작전이 시작됐다. 배워도 풀 수 없는 문제, 알아도 풀 시간을 주지 않는 시험과 과도한 사교육이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름만 살벌할 뿐 명확히 정의하기도 힘든 킬러 문항과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설정하고 인사권과 공권력을 동원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대책이 일대 혼란을 일으켰으나 직접적으로는 별 효과도, 큰 악영향도 없을 것이라는 교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제 주목할 건 이번 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킬러 문항은 문제 원인이기보다 과도한 경쟁과 대학 서열화, 시험 한 번에 인생을 걸게 하는 제도와 문화의 산물이자 결과다. 줄을 세워야 하니 변별력이 필요하고 변별을 위해 어려운 시험이 생긴다. 교육부가 말하는 “변별력이 있고도 교과과정 내에 있는 문제”는 “교과과정 내 킬러 문항”일 뿐이다. 지나친 경쟁의 구도를 바꾸는 대안이 함께 제시되지 않는 한, 킬러 문항을 없애도 실수 안 하기 연습을 시키는 사교육 시장은 여전히 번창할 것이다.
킬러 문항은 정답 신화를 낳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답을 정한 후 몰아붙이는 정부의 모습은 모든 문제엔 답이 있고 빨리 풀수록 좋다는 시험 문제 풀이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어린 시절 대학입시와 각종 고시에서 킬러 문항을 잘 풀었던 이들이라 그런지 세상만사를 정답과 오답으로 나누고 빠른 해법을 찾는다. 그러나 맥락은 무시한 채 킬러 문항만 없애겠다는 식의 접근은 원리를 몰라도 답만 맞으면 된다는 말처럼 허망하고 위험하다.
어디 정책 결정자뿐이겠는가. 모든 일에 정해진 정답이 있다는 착각, 정답을 빨리 맞혀야 한다는 강박, 그 정답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오만, 나아가 아예 자기 생각을 정답으로 삼는 문제를 만들어 남을 강제하려는 욕망이 어느새 우리 사회를 덮고 있다. 정답 신화는 교회 안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하나님을 출제자로 만들고 자기만 정답 맞히는 법을 안다고 주장하는 자와 스스로 설정한 정답을 근거로 서슴없이 남을 정죄하는 사람 그리고 그 가르침에 공연히 불안해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입시와 사교육에서 킬러 문항은 나머지 문제를 다 맞히는 소수 학생의 이슈일 뿐이지만, 크게 보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질병을 비추는 거울이다. 킬러 문항이 대표하는 단순한 정답과 무한한 경쟁의 논리는 그 무서운 이름에 맞게 우리 사회의 귀중한 덕목을 죽이고 공동체의 소통을 방해한다. 복잡다단하고 부조리하며 오묘한 세상의 신비를 사유하는 능력은 죽이고, 적과 동지를 서둘러 가리는 조급증을 부추긴다. 다양한 해결책을 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겸손한 용기 대신 오답을 가진 자에 대한 당당한 혐오를 조장한다. 결과가 나에게 유리하면 과정의 정당성은 무시하고, 공정을 규칙의 기계적인 준수로 축소하는 것도 극한 경쟁의 결과다. 서로 도와 문제를 풀면 행복해진다는 지혜 역시 킬러 문항의 공격 대상이다.
사람을 죽이는 킬러는 제거하면 그 해악이 없어지지만, 원인이 아닌 결과로서의 킬러 문항 제거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이번 소동을 우리 사회의 지나친 경쟁과 학벌 차별, 결과주의와 정답 신화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변별력이 아닌 배움을 격려하고 사고력을 키우는 시험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고, 한 문제 때문에 낙오자의 낙인을 찍지 않는 사회적 여유와 재기의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를 모색하자. 정부의 능력이 모자란다면, 이것이야말로 약하고 억울한 자의 친구로 오신 예수를 믿는 교회가 우선해야 할 사역이다.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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