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작고 까칠하고 독보적인 식당들처럼
주인들… 개성과 매력 넘쳐
고객 아닌 팬을 가지고 있다
예약 없이 하루에 세 명의 손님만 받는 식당이 있다. 영업시간은 매일 인스타그램에 공지된다. 사진을 보니 볶음면, 명란구이, 돈카츠 등이 있지만 고정 메뉴인지 확인하긴 어렵다. 한마디로 주인이 내킬 때 문을 열어 내키는 음식을 해주는 식당 같다. 아직 누군가 다녀왔다는 리뷰도 찾기 힘들지만 나를 포함해 팔로어가 3791명이다. 조만간 이 식당의 손님이 되는 것이 요즘 희망사항 중 하나다.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은 식당들이 있다. 예약을 받지 않고, 메뉴가 많지 않고, 주차가 되지 않으며, 친절하지도 않은 곳들이다. 위치가 모호하고, 외관은 허름하고, 실내는 좁고, 가구며 집기들은 낡았을 확률도 높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 갖췄다. 맛있고, 청결하고, 비싸지 않다. 대부분 주인 혼자 운영하거나 보조가 한 명 정도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지향과 룰로 나름의 질서와 대단한 효율을 이루고 있다. 개성과 매력이 넘친다.
그동안엔 먹는 일에 진심을 다하지 못했다. 별다른 고민이나 노력 없이 가깝고 리뷰가 좋은 식당을 고르는 편이었다. 집에서 먹을 땐 10분 이내에 준비가 가능한 간편식들을 이용했다. 오늘 꼭 이걸 먹어야겠어, 식의 의지를 불태우거나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드물었다. 배고픔은 못 참지만 허기만 해소되고 적당히 청결해 보이기만 하면 ‘그럭저럭 괜찮네’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방문한 작고 놀라운 식당들 덕분에 음식에 관심이 늘었다. 뱃살도 함께 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지만 즐거움이 더 크다. 살짝 발을 들이니 역시 이 세계에도 선배들이 보인다. 그들은 어쩌다 비싼 미슐랭 식당에 가는 대신 일상의 한 끼 한 끼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까다롭고 예민한 고수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면 아무리 작고 멀어도 찾아내 기어코 방문한다. 나는 생초보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 앞에 선 것처럼 흥분된다.
서울 홍제동에도 영업시간을 알 수 없는 주점이 있다. 인스타그램은 물론이고 전화도 안 받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가봐야 하는 곳이다. 가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빨라진다. 가게 앞에 사람들이 둘 셋이 모여 있으면 벌써 자리가 없는 것일까 조급해진다. 문을 열자 사장님이 “한 시간쯤 있다가 오세요” 하신다. 두말없이 “네, 이따가 오겠습니다” 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주변을 배회한다.
겨우 자리를 잡아도 주문은 음식을 만드는 사장님이 있는 주방 앞에 가서 말씀드려야 한다. 처음 갔을 때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앉은 자리에서 “여기요, 주문할게요” 했는데 그래 봤자 아무도 오지 않고 나만 손해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면 모든 서러움은 잊힌다. 가게가 너무 허름해서, 값이 너무 싸서 반신반의했지만 4000원 우동국수의 맛이 이럴 수도 있는 거였다. 물론 주문했던 다른 메뉴들도 다 깔끔하고 맛있었다.
김치와 돼지고기가 가득 들어 있고 국물이 진해 수프에 가깝게 느껴지는 김치찌개 집은 강서구의 주택가 골목에 있다. 자리도 10석이나 될까.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다. 라면을 넣을 것인가 밥이랑 먹을 것인가만 선택할 수 있다. 한 사람분의 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진 쟁반이 내 앞에 오기 전에 수저통에 있는 수저를 테이블에 미리 차려놓으면 안 된다. 다른 식당에서 하던 습관이 여기선 안 통한다. 하지만 독보적인 음식 한 그릇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곳이다.
작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식당의 주인들이 영웅으로 보인다. 큰 자본이나 학력은 필요 없다. 그들은 까칠함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아니라 팬을 가지고 있다. 주로 혼자 일하지만 공간을 청결히 유지하고,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운영하며,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낸다. 갑자기 ‘한 달 동안 손주 보러 다녀옵니다’ 같은 것이 문에 붙어 있어도 손님들은 불평 대신 ‘쏘 쿨’을 외친다. 그분들이 건강히 오래 식당을 계속해주길 바란다. 나도 뭘 하려면 저렇게 해야지.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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