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전경련과 4대 그룹

김혜원,산업1부 2023. 7. 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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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연말을 달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는 끔찍한 기억이다.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까지 대통령실과 4대 그룹 총수, 전경련은 사전에 합을 맞춘 연기자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를 앞두고선 기대 반 우려 반 분위기가 읽힌다.

4대 그룹이 돌아가면 KT와 포스코 등 전경련에 등을 돌렸던 굵직한 대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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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산업1부 차장


2016년 연말을 달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는 끔찍한 기억이다. 국회에 증인으로 무더기 출석한 대기업 총수에게도, 그 장면을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던 국민에게도 그렇다. 헌정사상 최초 기록을 남긴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열린 ‘재벌 청문회’의 여진은 지금도 이어진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책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때문이다. 당시 국회에선 전경련 ‘해체’를 압박했고 대다수 총수는 ‘탈퇴’를 택했다. “전경련을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해야 한다”는 혜안을 던진 고(故) 구본무 회장 시절의 LG그룹이 가장 먼저 탈퇴원을 내고 전경련을 떠났다. 이후 두 달 만에 삼성·SK·현대자동차그룹이 전경련에서 빠져나왔다. 500억원에 달하는 연간 회비의 70% 이상을 4대 그룹이 부담하고 있을 때라 전경련엔 치명타였다. 전경련은 문재인정부에서 노골적인 ‘패싱’ 수모를 견디며 숨죽인 채 명맥만 유지했다.

근근이 버틴 전경련에 한 줄기 빛이 비친 것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전경련 수장(회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상황은 180도 급변했다.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까지 대통령실과 4대 그룹 총수, 전경련은 사전에 합을 맞춘 연기자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졌고 그럴싸한 장면이 속속 연출됐다. 전경련은 지난 5년여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노련하게 행사를 치러냈다. 암흑기를 떨쳐낸 전경련 임직원들은 부족한 인력에 일감이 넘쳐도 힘든 기색이 없다. 그런데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를 앞두고선 기대 반 우려 반 분위기가 읽힌다. “뒤탈이 없길 바랄 뿐”이라는 전경련 직원의 말은 울림이 있다.

임기 6개월을 약속한 김 회장은 8월 말 이전에 4대 그룹 복귀를 매듭짓겠다는 각오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4대 그룹이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대통령 순방 동행이나 전경련 주관 행사 참여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재가입과 선을 긋던 4대 그룹도 명분 싸움에서 밀려 포기한 눈치다. 4대 그룹은 이미 복귀를 전제로 실무 작업에 돌입했다. 재계의 한 원로는 “소나기를 피하니 태풍을 만난 격”이라고 관전평을 했다. 4대 그룹이 돌아가면 KT와 포스코 등 전경련에 등을 돌렸던 굵직한 대기업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전경련 회원사는 430개사 정도다.

복귀 방식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전경련이 한국경제연구원과 통합하는 것이 한경연 회원사로는 남아 있는 4대 그룹 일부 계열사를 흡수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4대 그룹은 정식 입회원을 내고 총회 의결을 거쳐 떳떳하게 복귀하는 게 맞는다. 이는 국정농단 과거사를 스스로 청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관심은 누가 전경련 회장을 맡느냐다. 선뜻 나서는 이가 없자 ‘젊은 피’를 추대하자는 의견이 ‘어른 총수’ 일각에서 나왔으나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총대를 메는 분위기다. 이 경우 상근부회장 자리는 4대 그룹 출신 인사가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좋든 싫든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은 재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4대 그룹 복귀는 기업보다도 사실상 전경련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기사회생한 전경련의 쇄신 의지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경제인협회로 ‘간판’만 바꿔 다는 게 아닌 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자구안을 내놓고 공감을 얻어야 재도약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해선 안 된다.

김혜원 산업1부 차장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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