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국전쟁이 남긴 과제들

2023. 7. 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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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한여름 소나기가 걷히고 밝은 햇살이 내비치는 경복궁 옆 ‘열린송현’ 공원에는 해바라기와 아름다운 여름꽃들이 피어있다. 시민들이 만남을 즐기며 평화롭게 거니는 이 장소는 한때 미 대사관 직원들의 거주공간이었고, 73년 전 이맘때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어 피난 못 간 가족들이 생사의 갈림길 공포 속에 살았던 북촌, 서촌 주거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이 공원을 걷고 있는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는 없겠지만, 서울과 전국 대부분 국토에는 아직 전쟁의 상흔들이 남아있다. 남대문, 덕수궁, 경복궁, 동십자각,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석벽에도 수많은 총알 자국의 흔적이 선연히 남아있다. 당시 시가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준다.

「 한반도 운명 갈랐던 한국전쟁
전시 민간인들 생존 위한 사투
한국사회 깊은 내상으로 남아
전쟁이 남긴 숙제 잘 풀어가야

총알 자국은 이제 과거의 흔적으로 말이 없지만, 사람들이 입은 마음의 내상들은 아직 우리 사회 깊은 곳에 아물지 않고 남아있다. 한국전쟁이 낳은 민간인 사상자는 200만명을 넘었다. 이는 당시 인구의 약 10%에 달하며 3년 동안 전쟁에 투입된 모든 국적의 군인 전사자들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다. 당시 민간인들이 생존을 위해 벌였던 사투를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전쟁과 오늘의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권헌익의 『전쟁과 가족: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2020)은 3년간의 전쟁이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남긴 깊은 내상들에 대해 잘 기록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사라진 가족구성원 중 적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의심되거나 반정부적 동조자 혐의가 있는 자들은 남은 가족 전체가 감당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한국전쟁 경험을 담은 최근의 문학작품, 자서전, 증언록 등을 보면 이 전쟁이 무수히 많은 한국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상은 지금도 진보와 보수 진영의 극렬한 대립과 갈등이란 증세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자 국제전이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서로 부정하던 두 세력이 하나의 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었으며, 동시에 서로 다른 가치와 체제를 추구하던 두 국제적 세력이 충돌한 전쟁이며 냉전시대의 출발이기도 했다. 또한 오늘날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간에 최초로 벌어진 전투이기도 하다. 1360년 전 백제 부흥군과 왜의 군대, 신라와 당의 군대가 백강에서 벌인 전투의 결과가 그랬던 것처럼 이 전쟁은 이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게 되었다.

해방정국과 정부수립 전후하여 좌우 대결과 혼란이 극심했던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반공, 자유, 민주라는 가치를 국가 정체성으로 확고히 정립되게 되었다. 또한 전쟁의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 경제원조를 받게 되면서 당시 빈약한 세수와 생산기반에도 불구하고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민생도 빠르게 안정됐다. 미국 원조 당국이 절대적으로 달러를 필요로 하는 한국 정부에 시장주의 경제정책 방향으로 지속해서 압력을 넣었던 것도 한국이 오늘날 시장경제, 민간주도경제, 개방경제로 발전하게 된 데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보여준 남한과 북한의 행로는 자유, 민주, 시장경제라는 제도가 국가번영에 얼마나 중요한 요인이 되는지를 확인해 준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다. 첫째, 통일문제다. 한국전쟁으로 입은 남북주민들의 내상은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 최근의 미·중갈등 심화라는 외부환경 역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럼에도 남북 간 사람의 교류, 정보의 흐름을 지속해서 확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남북통일은 세계적 문제이며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결국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과 합치려는 열망이다. 이를 위해 진영 간 타협과 협력이 필요하다.

둘째, 한미동맹의 미래다. 금년 70주년을 맞게 된 한미동맹은 한국이 오늘날의 세계 10위 경제로 부상하는 받침대, 한국외교의 등뼈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세계의 경제, 정치 지형은 21세기 들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반도의 중간에 한미일, 북중러의 전선이 명확히 그어져 지속하는 것이 미래 한반도 운명을 위해 반드시 반길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중국, 인도, 유럽과의 연대도 강화해 나가야 하며, 한미간에 안보뿐만 아니라 기술, 지식, 경제 협력의 지평을 넓힘과 동시에 한국외교의 독자적 공간을 넓히려는 노력에 대한 상호 간 이해도 넓혀야 할 것이다.

셋째, 자유라는 가치의 해석이다. 나라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 변해왔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다. 자유라는 가치는 평등이라는 가치와 늘 균형을 맞추며 추구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주 부딪히는 경제적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의 조화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성찰 없이 한국의 미래 안정과 지속적 번영을 담보하기 어렵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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