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자가 FC서울 유니폼…‘100경기’ 채울 겁니다
“삼부자가 대를 이어 FC서울 유니폼을 입게 됐네요. 가문의 영광이죠.”
지난 4일 경기도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프로축구 FC서울의 이태석(21)과 이승준(19)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을용(48)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의 장남과 차남이다.
이태석-승준 형제는 지난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경기에서 나란히 뛰었다. 지난해 주전을 꿰찬 형 이태석은 선발로 출전했고, 올해 서울 유스팀 오산고에서 프로로 직행한 동생 이승준은 후반 39분 교체 투입됐다. 2000년대 FC서울에서 활약했던 아버지 이을용에 이어 ‘삼부자’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K리그 경기를 치른 거다.
이태석은 동생 이승준이 교체 멤버로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손을 내밀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리그 데뷔전을 맞은 이승준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잔뜩 긴장한 탓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서울 선수가 쓰러지자 대전이 공을 밖으로 내보냈고, 이어 서울이 대전 골문 쪽으로 스로인해서 공을 일부러 돌려줬는데 이승준이 이 ‘매너 볼’을 뺏으려고 한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은 이승준은 이민성 대전 감독을 찾아가 사과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승준은 “상대 수비가 공을 잡은 이후에 압박하라는 벤치 지시를 착각했다. 데뷔전이라 정신이 없었고 ‘열정 과다’였다. 대전 선수단과 팬들께 죄송하다. 집에 들어가니 아빠가 ‘어휴~ 촌놈아’라며 웃으셨다”고 전했다. 이태석은 “놀림거리가 생겼다. 동생을 잘 가르치겠다”고 했다. 대전전에서 이태석의 패스가 전방에 있던 이승준에게 연결되지는 않았다. 이태석이 “공을 피해 다니더라”고 하자, 이승준은 “형이 시야가 좁은거지”라고 받아쳤다.
이을용 감독은 “태석이와 승준이는 축구 스타일과 성격이 모두 정반대다. 왼쪽 수비수인 태석이는 나처럼 왼발잡이다. 선 굵은 직선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신중하고 묵직하다. 반면 오른발잡이 섀도 스트라이커 승준이는 수비를 제치는 걸 좋아한다. 성격은 약간 덤벙댄다”며 웃었다.
이승준은 “난 MBTI(성격유형 검사)가 ESFP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한다. 아빠랑 외모는 형이 더 닮았는데, 크면서 나도 닮아간다”고 했다. 이태석은 “여동생도 왼발을 쓰는데 승준이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 보다(웃음). 난 ISTJ 계획형이다. 형제의 장점을 반반씩 섞으면 아빠가 된다. 아빠는 터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축구를 했다”고 했다. 이태석과 이승준은 롤모델도 각각 앤디 로버트슨(리버풀), 네이마르(PSG)로 서로 다르다.
아버지 이을용은 2003년 중국전 당시 뒤에서 다리를 건 리이의 뒤통수를 때려 ‘을용타(打)’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지난달 한국 24세 이하 대표팀과 중국의 평가전 당시 중국의 거친 ‘소림축구’에 한국 선수 3명이 줄부상을 당하자, 축구 팬 사이에서 ‘을용타’ 영상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중국과의 평가전에 뛰었던 이태석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 가능성이 높다.
이을용은 “걱정하면서 TV 중계를 봤다. ‘중국 축구가 아직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대가 거칠게 나오더라도 맞받아치면 안 된다”고 했다. 이태석은 “만약 아시안게임에서 중국과 다시 맞붙게 된다면, 우리 선수들 개인 기량이 우월한 만큼 신사답게 실력으로 이기겠다”고 했다. 이승준은 “언젠가 중국을 상대할텐데, 상대가 거칠게 나오면 보복해야죠. 농담이고 골로 보여주겠다”며 웃었다.
이을용은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 미국전에서 안정환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했고, 터키와의 3-4위전에서 프리킥 골을 넣었다. 이태석은 2019년 17세 이하 월드컵 8강에 기여했고, 이승준은 올해 20세 이하 월드컵 4강 멤버다. ‘차범근-두리 부자’처럼 ‘이을용 삼부자’가 FIFA 주관 대회를 모두 뛰는 진기록을 세웠다.
오산고 감독 시절 이태석에게 주장을 맡겼던 차두리는 “나와 공통점이 너무 많은 아이라서 더 애착이 갔다. 아버지의 그늘, 아버지의 감독 경질, 사람들의 시선”이라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태석은 “전 아직 위대했던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더 노력해, FC서울에서 ‘삼부자 100경기 출전’ 새 역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승준은 “아빠는 아빠, 형은 형, 저는 저다. 골을 넣는다면 박재범의 ‘블루 체크’ 춤을 추겠다”며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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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형제’ 맞대결 및 같은팀 동시 출전
이승준-태석
김정남-형남-성남-강남
김종우-종석
남궁도-웅
박선용-선주
유동춘-동관-동우-동기-동욱
이광훈-광혁
이동희-건희
이상호-상돈
이창근-창훈
하대성-성민
한석종-홍규
」
구리=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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