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vs 기회’… 디지털 시대의 육아 딜레마

김남중 2023. 7. 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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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
소니아 리빙스턴·얼리샤 블럼-로스 지음, 박정은 옮김
위즈덤하우스, 456쪽, 2만3000원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은 영국 부모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시대가 양육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광범위하게 탐구한다. 국내에도 초청된 적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분야의 권위자 소니아 리빙스턴(런던정치경제대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 구글, 유튜브, 트위치 등에서 어린이·가족 정책을 담당한 얼리샤 블럼-로스와 함께 썼다. 런던에 거주하는 73개 가정을 대상으로 한 현장조사와 영국 전역에서 시행한 부모 2032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책은 그동안 디지털 시대 담론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양육을 조명한다. 디지털 기술의 변화는 매우 복잡하고 속도가 빠르며 일, 여가, 학습,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 모두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양육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대중매체의 헤드라인은 디지털 스킬을 배우거나 따라갈 수 있도록 최신 기기를 사라고 부모들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온라인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면밀히 감시하고, 게임이나 소셜 미디어처럼 ‘머리를 쓰지 않는’ 활동을 하며 보내는 시간을 제한하라고도 꾸준히 권한다.”

“한편에서는 스마트폰이 ‘한 세대를 망쳤고’ 소셜 미디어가 ‘대화를 단절시켰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강조하고 고용주가 요구하며 정부가 장려하는 ‘21세기 스킬’을 부모가 자녀에게 습득시킬 필요가 있고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이 뒤처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기기와 기술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서로 충돌한다.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기술은 아이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자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된 경로가 되었다.”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부모들의 고민과 대응을 수용, 균형, 저항 세 가지로 분류한다. 물론 완전히 수용하거나 완전히 저항하거나 완벽하게 균형을 잡는 사례를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 쏠려있는 방향이 그쪽이라는 것이다.

저항과 관련해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것은 ‘스크린 타임’이다. 자녀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스크린 타임은 부모가 육아를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다는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스크린 타임에 대해 “맥락과 관계없이 시간을 기준으로 제한하려는 노력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비판한다. 또 현대의 부모-자식 관계에서 정착되고 있는 ‘민주적인 가정’과 충돌한다고 우려한다.

수용과 관련해서는 ‘긱(geek)’이라는 개념을 검토한다. 괴짜를 가리키는 긱은 오늘날 디지털과 관련된 좁은 형태의 전문 지식을 집요하게 쌓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부모들은 디지털 기술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만지작거리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는 자녀를 보며 긱으로 키우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좋은 성적보다는 컴퓨터게임을 하는 게 디지털 미래에서 더 큰 기회를 약속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약속은 불확실하다.


저자들은 “긱 자녀를 지원하는 것은 부모의 상당한 헌신을 필요로 하고” “최종적인 결과 면에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수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준다. 특히 긱의 정체성과 생활 방식을 수용하는 것은 또래의 대다수와 동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며 “고위험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특수교육 요구와 장애가 있는 아동을 둔 부모들은 디지털 기회가 자녀의 가난이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주목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장애인의 디지털 진로가 특권층 부모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들에게는 부담과 고통을 늘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어떤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가 제기하는 가능성과 위험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균형을 강조할 뿐이다. 저자들은 “수용과 저항의 혜택이 모두 불확실하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부모의 균형 유지 노력을 현명하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기운다”면서 정부, 언론, 전문가들을 향해 부모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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