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파괴된 사회… 나를 지키는 ‘저항의 말들’
아라이 유키 지음, 배형은 옮김
ㅁ, 236쪽, 1만8500원
“‘말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말이 스스로 무너질 리 없으니 ‘말이 파괴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일상생활의 공간과 그 생활을 만드는 정치의 공간에서 부정적인 힘이 가득한 말이나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 늘었다… ‘말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은 사람의 존엄성을 상처 입히는 언어가 발화되어 생활 영역에 뒤섞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감각이 흐려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 니쇼가쿠샤대학 문학부 부교수인 아라이 유키(43)가 쓴 이 서문은 지금 한국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다. 말들의 풍경이 너무 피로하고 무섭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피하고 말면 될 일이 아니다.
“언어에는 ‘내리쌓이는’ 성질이 있다. 입 밖으로 나온 언어는 개인 안에도, 사회 안에도 내리쌓인다. 그러한 언어가 축적되어 우리가 지닌 가치관의 기반을 만들어간다.”
저자는 문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내리쌓이는 파괴적인 말들을 바라보며 여기에 맞서기 위한 말들을 찾아 나선다. 그는 일본의 장애인 운동에서 그 말들을 찾아낸다. “비국민” “밥벌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치” 같은 잔인한 말들에 맞서 싸우면서 장애인 운동은 ‘맞서는 말들’ ‘저항의 말들’을 벼려왔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사양하고 있으니 장애인도 약자라는 이름 뒤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사양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파업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누구나 어려움이 있으니 당신들도 좀 참아야 되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저자는 이런 말들에 맞서 살기를 사양하도록 강요당한 장애인들의 역사를 들려준다. 장애인들은 밥 먹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다 같은 욕구조차 사양할 때가 많다. 여성 장애인들은 자궁 적출 수술을 강요받기도 했는데, 생리 현상까지 사양하도록 강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양하라”는 말이 삶 자체를 사양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양이 미덕일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양하다가 죽는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자기 책임”이라는 말도 유행이다. 저자는 이 말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를 얻지 못했거나 부조리하게 상처 입은 경험 등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사회의 존재 방식에 분노해서도,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구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주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에 주목하면서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견제하며 서로의 입을 다물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려한다.
“우리는”이나 “이 사회는” 같은 ‘큰 주어’로 시작되는 말들도 많다. 저자는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할 건데?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어?”라고 질문했던 한 장애운동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작은 주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에 수록된 18편의 글은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놀라움을 주면서 국내 처음 소개되는 아라이 유키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한다. 그는 문학연구자지만 오랫동안 장애인 운동을 연구해왔다. 장애인 운동의 역사에서 이 시대에 맞설 언어와 용기를 발견해내는 접근법이 참신하다.
“우리는 모두 ‘요약’할 수 없는 인생을, 깔끔하게 말로 정리할 수 없는 채로, 오늘이라는 날을 아무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정리되지 않음’이야말로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귀함이 태연한 얼굴로 다소곳이 앉아 머무를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지킬 말을 찾는 사람들, 시대의 흐름을 반전시킬 말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아라이 유키에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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