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법은 시기상조? 이 영화에 답이 있다
[장순심 기자]
최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에 관한 뉴스를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출산율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문제의 심각성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 7년째 연속 내리막이고 전 세계 '꼴찌' 출산국이다. 평범한 중년의 내가 출산율 저하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는 것은 이미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우리 집 아이들도 결혼이나 더 나아가 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의 대책을 외국인 가사도우미 들여오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괴한 발상도 있었고 그걸 실행으로 옮긴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정부에서는 아무 말이라도 다급했던 상황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스틸 이미지.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마침 미국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봤다. 그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가족 형태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에도 영화에서와 같은 가족의 형태와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게 생활동반자법이든 출산율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든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배제하면 솔직히 현실 같지 않았다. 제목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Evolution of a game)는 주인공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의 주 포지션인 오펜시브 태클, 즉 쿼터백이 공을 패스하는 순간 왼쪽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를 보호하는 역할로 불우한 환경과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약물 중독에 걸린 엄마와 어린 시절 강제로 헤어진 후,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마이클. 거대한 체격이지만 남다른 운동 신경을 눈여겨본 친구 아버지와 학교의 미식축구 코치에 의해 상류 사립학교로 전학할 수 있었지만 이전 학교에서의 성적 미달로 운동은 시작도 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돌봐주던 친구의 집에서도 따가운 눈총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이제 마이클에게는 학교 수업이나 운동보다 하루하루 잘 곳과 먹을 것이 걱정인 상황이다. 추수감사절을 앞둔 하루 전날 밤, 차가운 날씨에 반팔 셔츠만을 걸친 채 체육관으로 향하던 마이클을 발견한 '리 앤(산드라 블록)'.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확고한 성격의 리 앤은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마이클이 지낼 곳이 없음을 알게 되고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 잠자리를 내어주게 되고, 이것을 시작으로 가족이 된다.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스틸 이미지.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마이클에게 처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리 앤의 용기는 영화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리앤은 백인 기득권층의 가정주부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향력 있는 '인싸(Insider)'다. 그런 그녀가 근본도 모르는 덩치 큰 흑인을 집으로 들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다. 나아가 가족이 되어주고 기꺼이 법적인 후견인이 되려 하는 그녀의 행동을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리 앤은 달랐다.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아이(마이클)는 존중해 달라고 말한다. 오히려 바뀐 건 마이클이 아닌 자신의 인생이라며 주변의 편견과 근거 없는 불신에 엄중하고 단호하게 경고한다.
오락적 영화에서조차 흑인에 대한 백인 상류층의 배제성, 배타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이 지닌 생각들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 리 앤과 그의 가족에게서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가난이나 약자에 대한 인식에 편견이 없으며 대하는 자세는 진솔하다. 다시 말하지만 실화가 아니었다면 다분히 작위적이며 위선적인 감독의 포장이라고 말했을 것 같다.
명예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다. 의미 있는 목표를 위해 죽는다면 명예와 용기를 모두 갖게 된다는 점이 좋다
-마이클의 에세이 중-
출산율 극복과 영화의 상관관계
▲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스틸 이미지. |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영화는 흑백의 대립이나 가진 자와 가난한 자의 반목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마이클 오어'의 성장 스토리와 '리 앤' 가족의 보편적 인류애에 초점을 맞추니 영화 전체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가족에게서 외면 받던 한 사람이 명예와 용기를 지닌 인간으로 성장하는 성장 이야기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마이클 오어' 역의 주인공을 둔하고 모자란 인물로 묘사한 것은 다소 불편하다. 실제 인물인 마이클 오어도 비슷한 이유로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는 보지 않겠다"라고 언급했다고 하니.
출산율 극복의 문제가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생활동반자법의 내용은 생활을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동거 및 부양·협조 의무, 일상가사 대리권,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서로에게 부여하는 내용이다. 생활동반자는 신혼부부처럼 주택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 대상이 되며, 국민연금·고용보험 연금 수급, 건강보험 피부양, 출산 휴가나 돌봄 휴가 등의 권리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생활동반자법이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는 아닐 것이다. 다만 가족의 범위를 넓게 보고 법적으로 보호하는 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책이 수립되고 우리 실정에 맞게 촘촘히 보완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이어진다면, 지금의 청년들이 가족이 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이 더불어 명예와 용기를 갖고 사는 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혼인이나 입양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도 식구(같이 밥을 먹는 사람)로 모인 울타리에 법적 가족에 준하는 다양한 혜택과 지원이 가능한 현실이라면 영화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애써 시작된 법안의 논의가 탁상공론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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