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탁 10건 중 8건, 법원이 불수리…강제징용 '3자 변제' 어떻게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도출한 이후 배상 절차를 이어가던 정부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15명(원고 기준 14명) 중 제3자 변제를 거부한 4명의 징용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금을 공탁하려던 계획이 난관에 봉착하면서다.
외교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은 지난 3일 피해자·유족의 거주지를 바탕으로 광주·전주·수원지방법원 등에 10건(6일 기준)의 공탁 신청 서류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이중 8건에 대해선 아예 공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나머지 2건 중 1건은 미비 서류를 추가 제출한 뒤 공탁 가능 여부에 대한 검토가 진행될 예정이고, 1건은 서류 미비를 이유로 공탁 신청이 반려됐다.
6일 오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공탁이 확정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
일부 법원 불(不)수리 근거는 민법
지원재단은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채권·채무 관계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다는 것이 이들 법원의 판단이다. 근거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제3자는)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는 민법(제469조 2항) 조항이다.
지난 3일 공탁 신청 건에 대해 처음으로 불수리 결정을 내린 광주지방법원의 공탁관은 물론, 이후 불수리 결론을 낸 수원지법도 해당 민법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공탁이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은 해당 법원의 민사 재판부가 내리게 됐다. 만약 재판부의 판단에 불복할 경우 항고와 상고 절차를 통해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외교부 "제3자도 공탁 가능"
이러한 법 해석 역시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아니하거나 받을 수 없는 때에는 변제자는 채권자를 위하여 변제의 목적물을 공탁하여 그 채무를 면할 수 있다”는 민법(제487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판단을 비롯한 제3자 변제 추진 과정 전반의 법률 검토는 '법무법인 세종'이 맡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공탁은 채무자(지원재단)가 변제 의사를 밝혔음에도 채권자(징용 피해자와 유족)가 변제금을 받지 않는 상황에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며 “제3자 변제를 진행해 온 지원재단은 공탁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채권자가 돈을 받지 않아 공탁을 진행하는데, ‘채권자가 변제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공탁을 수리하지 않는 것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했다.
공탁 절차 제동…'해법 완결성'에 의문
일부 피해자들이 제3자 변제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공탁은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할 때부터 사실상 예견돼 있던 절차였다. 피해자들이 지원재단의 배상금 지금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공탁 이외에는 변제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피해자들이 배상금 수령을 거부할 경우 연 20%에 달하는 지연 이자를 물어야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설득 작업을 무한정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란 의미다. 이 때문에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3월 6일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할 당시에도 “법리적으로 (피해자들이) 판결금을 끝까지 수령하지 않으면 공탁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며 제3자 변제안을 설계할 초기부터 공탁 절차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불수리 결론 난다면…논란 재점화
정부가 공탁을 추진했던 이유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금 지급을 위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과 이를 통한 현금화 절차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공탁이 불가능해질 경우 한·일 관계 경색의 핵심 원인이 됐던 현금화 논란이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다.
외교 소식통은 “공탁 가능 여부를 놓고 외교부와 법원 공탁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각자 법적 근거를 앞세우고 있는 만큼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내부적으론 최악의 경우 재판부가 불수리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제3자 변제안을 통해 15명 중 11명의 피해자와 유족이 배상금을 수령했고, 한·일 관계가 개선된 이후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가 쌓인 만큼 현금화 논란이 일게 되더라도 그 여파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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