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젊을 때가 있었다" 신구가 말하는 인생

이준목 2023. 7. 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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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준목 기자]

"내가 힘 남겨놓고 죽을 바에야 여기에다가 다 쏟고 죽겠다."

원로배우 신구가 전하는 묵직한 연륜과 열정이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5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는 남양주 남부경찰서 발명왕 유창훈 경정, 첼로 연주자 겸 지휘자 장한나,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박남규 경감, 배우 신구가 출연해 자신들만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경찰계의 에디슨'으로 불리우는 유창훈 남양주 남부경찰서 112 치안종합상황실장은 횡단보도 장수의자, LED 바닥신호등 개발, 실종자 수색을 위한 드론 도입, 외부 침입자를 파악할 수 있는 특수형광개발물질 활용 등 안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유창훈 경정은 "사후조치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예방업무에 더 치중해왔다"고 설명했다.

범죄예방 기획에 있어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예산 문제로 국회의원을 만난 유 경정은 국회의원이 "국가직(경찰) 일에 지방자치단체 돈을 쓰기는 그렇지 않냐"며 난색을 표했을 때 "국가 사무의 시민과 자체단체 사무의 시민은 다른 시민이냐"라고 응수해서 결국 지원을 이끌어냈다고.

1989년에 공직 입문하여 어느덧 35년 차가 된 유 경정은 내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유 경정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마무리하기엔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며 덤덤하게 미소를 지었다. 장사를 하던 어머니로부터 "너도 저 순경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경찰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가 되어 경찰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누구보다 아들이 경찰이 된 것을 기뻐했던 유 경정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순경으로 임용되던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유 경정은 "어머니가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리는 게 제 직분이니까. 우리가 생각을 1도만, 한 사람만 바꿔도 수혜를 보는 국민들은 포괄적이고 넓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을 드러냈다. 어느덧 은퇴할 시기가 되어 퇴직금을 받아서 내 집 마련을 앞두고 있다는 유 경정과 아내는 "그래도 괜찮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미소를 지으며 소탈한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첼로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돌아온 장한나는 변함 없는 밝은 미소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한나는 2007년부터 지휘자의 길에 입문하여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함부르크 심포니 수석객원 지휘자 등으로 활동해왔다.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장한나는 "집에 항상 음악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선물받은 첼로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첼로가 좋았던 이유로 "안고 있을 수도 있어서 친구같았고, 들고날 수 있어서 친구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었다. 항상 같이한다는 친밀감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장한나는 만 11세였던 1994년 본인의 우상이었던 '첼로의 신'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차지하며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원래 연령제한이 있었지만 주최 측의 착오로 장한나가 출전할 수 있었다. 장한나의 수상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로스트로포비치는 "연주가 증명해줬다"며 장한나의 실력을 극찬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마지막 제자가 된 장한나에게 어릴 때 절대 음악에만 매달리지 말고 학창시절도 즐기고 친구들과 사귀어 보라며 인생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로 선생'이 마지막 레슨에서 장한나에게 전한 말은 "이제 음악의 열쇠를 네게 넘겨준다. 마음껏 열어보고 즐겨라"였다.

장한나는 은사의 조언에 따라 2001년에는 전공과 무관한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또한 꾸준히 성공적인 첼로 연주자로서 명성을 이어가다가 2007년부터는 돌연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장한나에게 지휘자로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베토벤이었다. 똑같은 곡이라도 지휘자들의 색깔에 따라 그 해석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장한나는 "내가 듣는 음악은 다 남의 손을 거친 해석이다. 원본은 악보다. 악보는 소리가 없다. 이 음표를 베토벤이 왜 썼을까? 악보는 수많은 '왜?'의 연속이고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해야한다. 고민하다보니 베토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것을 지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장과 피가 들끓었다"고 말했다. 이어 장한나는 베토벤의 악보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으며 "책이 아니라 내 심장이다. 베토벤 사랑해"라며 유쾌한 소녀같은 팬심을 드러내 웃음을 안겼다.

'마약과의 전쟁' 최선봉에 선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박남규 경감은 최근 급증하는 마약 범죄율을 설명하면서 "마약을 하는 인원도 많아졌지만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마약사범은 흔히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는데,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 더 많다. 요즘 SNS가 발달하면서 정보 검색과 거래까지 더 쉽게 가능해졌다"고 그 심각성을 우려했다. 

마약들은 점점 다양한 루트와 수법으로 국내에 밀반입 되고 있다. 또한 마약사범들은 중독성 때문에 재범률도 매우 높다고. 박 경감은 "마약은 의지만으로 끊는 게 쉽지 않다. 아무리 참아도 마약을 눈으로 보게 되면 몸과 뇌가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다 더 마약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미국에서는, 일명 '좀비 거리'라 불리는 미국 동부 최대의 마약시장 켄싱턴 거리가 있단다. 또한 포르투갈에서는 출근길에 마약을 해독하는 약차를 운영하는 정책으로 마약 중독자 감소에 기여하기도 했다.

박 경감은 "마약사범은 '내가 설마 잡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경찰관이 찾아오거나 출석요구서가 날라온다. 마약사범은 투약자와 판매자가 얽혀있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잡힌다"고 자수를 당부했다. 이어 "마약을 접하고 나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다. 18세에 마약을 접한 사람이 80대까지 산다면 60년을 허비하는 것이다. 마약사범이 많아지면 경제 활동이 멈추게 되고 사회가 붕괴된다. 그래서 지금 기틀을 잡으려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며 마약 퇴치를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배우 신구는 "요즘은 나이를 세기도 싫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아직도 숨 쉬고 걸어다니고 있으니까 고맙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는 생각이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신구는 연극 <두 교황> <라스트 세션> 등을 통해 여전히 활발한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 출연 중인 <라스트 세션>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학자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각각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대표하여 벌이는 토론이다. 신구는 고령의 나이에 엄청난 대사량과 집중력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한 관객은 "86세의 신구 배우님이 84세 때보다 더 좋은 연기를 하시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는 감상평을 올리기도 했다.

1998년 한석규와 부자로 공연한 < 8월의 크리스마스 >에서 보여준 현실적인 연기는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신구는 부친으로부터 평생 험한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며 부모 역을 할 때도 "이럴 때 어머니나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연기에 참고했다고.

점잖고 소탈한 아버지의 대명사였던 신구는 2000년대 들어 잇달아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보여주며 큰 화제를 불러왔다.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고집불통 막무가내지만 귀여운 할아버지 '노구'를 연기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 시트콤에 출연하니 사람들이 가까워지더라. 초등학생들도 서먹해하지 않고 다가와서 만지고 했다"는 게 신구의 회상이다.

현역 배우들 가운데 가장 연기 경력이 긴 배우 중 한 명인 신구는 후배들을 편하게 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들 잘하고 있는데 잔소리를 왜 하나. 젊은이들 버릇 없다는 이야기는 전 세대가 다 그랬다. 그러면서도 발전하는 거다. 요즘 젊은이들 얼마나 잘하냐. 거기다 '라떼' 이야기를 하는 게 나는 싫다"고 답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는 "지금이 중요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지금을 즐기고 일해라"고 전했다.

안타깝게도 신구는 지난해부터 심부전증을 앓으며 인공 심장박동기를 가슴에 달게 되었다. 신구는 "심박동기 수명이 8~10년쯤 된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난 세상에 없을 테니까. 충분하지"라고 덤덤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래서 요즘 내 고민이 다음 작품이 들어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 아직 확답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구는 "숨쉬고 있고 살아있고 해야할 일은 그거고, 당연히 해야되는 일인데 못하니까 아쉽기도 하다"고 고민했다.

이어 "연극은 내게 수행하는 과정이었다. 연극은 내게 '살아있는 동앗줄'이었고 다행히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잘 매달려서 살아왔다는게 다행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연극 <라스트세션>의 기자간담회에서 신구는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내가 힘을 남겨놓고 죽을 바에야 여기다 다 쏟고 죽자"라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신구와 함께 공연 중인 후배 배우 이상윤은 "갑작스러운 급성 심부전증 진단을 받은 신구의 공연을 모두가 만류했으나 '관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고집으로 끝내 일정을 소화했다. 정말 무섭도록 연기를 잘 하신다. 앞으로도 계속 선생님과 무대에서 호흡하고 싶으니까 박동기의 건전지를 교체할 때까지는 무조건 건강하셔야 한다. 꼭 약속해달라"고 당부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신구는 "나도 젊을 때가 있었다. 이 순간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마지막 고비에 와보니 숨을 쉴 수 있다는게, 남의 도움 없이 걸어다닐 수 있다는게 너무 고맙더라. 매사가 다 '소 땡큐'(So thank you)였다"는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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