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스파이더맨에게 내민 도전장, 도발이 먹혔다
[고광일 기자]
▲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샷 |
ⓒ 소니픽처스코리아 |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작의 근간을 흔드는 도발적인 후속작이다. 1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빌런인 킹핀은 차원이동기를 만들어 죽은 아내와 딸을 다른 멀티버스에서 데려오려고 한다. 멀티버스가 중첩되면 도시는 붕괴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을 막기 위한 마일즈/스파이더맨의 활약이 1편의 주요 내용이다. 2편에서는 모든 멀티버스의 스파이더맨들이 겪어야 할 공식 사건(Cannon) 중 하나인 아버지 제프의 죽음을 막기 위해 마일즈가 온갖 멀티버스를 누빈다. 이 역시 멀티버스의 붕괴를 불러올 위험이 있지만 마일즈는 개의치 않는다.
새로운 빌런 지점은 이처럼 슈퍼히어로와 빌런의 모호해진 경계를 아예 무(無)로 돌린다. 스팟은 킹핀이 운영하는 알케멕스의 연구원이었지만 마일즈 때문에 차원이동기가 폭주하는 탓에 하얀 몸뚱이에 검은 구멍만 있는 몸으로 바뀐다. 주변 사람에 놀림을 받고 직장도 잃은 그는 빌런으로 결국 변한다. 42지구의 방사능 거미를 불러와 스파이더맨의 탄생에 기여하기도 한 스팟은 본인이 스파이더맨의 아치에너미(숙적)라고 선언한다. 그는 스파이더맨처럼 멀티버스를 이동하고, 차원이동기를 흡수하며 힘을 키운다.
▲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샷 |
ⓒ 소니픽처스코리아 |
이런 흐름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 질문에 도달한다. 우선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이다. 스파이더맨은 가까운 이를 잃는 공식 사건을 겪는다. 이 상실을 통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을 얻고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다. 하지만 공식 사건을 겪으면 모두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공식 사건을 겪지 않은 이를 과연 스파이더맨이라고 부를 수 있나. 공식 사건이라는 도식적인 흐름이 슈퍼히어로의 자격이라면 킹핀도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경험의 유무가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더 본질적이다. 마일즈가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이 필요하냐는 물음이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까지. 2000년 이후 약 20년 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시리즈만 이미 3개인 상황에서 굳이 또 다른 스파이더맨을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마일즈가 기존의 스파이더맨과 뭐가 다르기에 극장을 찾아야 하는지 관객들을 설득해야 한다. 스파이더맨이 공유하는 정체성과 마일즈만의 차별점을 동시에 납득시켜야 하는 모순을 영화는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우선 공통의 정체성부터 이야기해 보자.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공식 사건을 겪기 전의 마일즈가 겪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다른 스파이더맨들도 겪어왔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에서 피터 파커는 메리 제인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시민, 도시를 위기에 빠뜨리는 빌런들과 싸워야 하는 슈퍼히어로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잃는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미스테리오의 폭로로 정체가 발각된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부탁해 과거로 시간을 돌리려다가 멀티버스의 빌런들을 불러오게 된다.
▲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샷 |
ⓒ 소니픽처스코리아 |
이 결정으로 인해 피터는 상사에게 구박받는 사진기자, 여러 개의 알바를 동시에 해야 하는 가난한 학생, 연애 사업도 신통찮은 외톨이가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새로운 빌런과 마주하게 되는 등 고난은 끊일 날이 없지만 훗날 손해를 보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희생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이 친절한 이웃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가 겪는 공식 사건의 유무가 아닌 당장에 최선을 다하고 애쓰는 간절함 덕분일 것이다.
마일즈의 차별점도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스팟은 얼굴(=정체성)을 잃고 말한다. 더 많은 구멍을 만들면 된다고. 점박이였던 스팟은 더 많은 구멍을 얻고 구멍 자체가 되어 익명성의 세계로 숨기로 결정한다. 정체성을 잃은 건 스팟만이 아니다. 지구 2099의 스파이더버스에서는 수많은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만 가면 속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건 소수다. 멀티버스의 특징이 드러나는 생김새지만 그것만으로는 개개의 특징을 알 수는 없는 수많은 스파이더맨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정체성을 잃은 군중이 되어버린 스파이더맨 무리는 공식 사건을 포기하는 단 하나의 스파이더맨이 되려는 마일즈를 제지하러 달려든다.
그웬이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하는 지구 65에 나타난 르네상스 시대의 벌처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예술품들을 파괴하며 말한다. 이딴 게 무슨 예술이냐고.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과거의 영광된 순간을 지속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벌처의 입장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는 관객들과 다르지 않다. 샘스파, 어스파, 톰스파를 각각 재밌게 봤더라도 그게 지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차별화된 마일즈의 서사가 성립되지 않으면 존재 이유도 없다.
▲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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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
미술, 철학, 문학의 경계를 초월하며 치열하게 작업해 온 예술가 안규철은 예술 에세이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곳의 물>에서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말들은 순응과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위한 말이고, 전환과 역설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압도적인 현실과 지배적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고 운명에 도전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모든 변화와 새로움의 시초에, 그리고 모든 예술의 시작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비록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감히 예술이라 칭한다면 그 이유는 코믹스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멀티버스를 그린 과감한 연출, 흐름을 끊지 않는 선에서 적재적소에 분배된 추억의 파편, 한 장면도 허투루 그리지 않고 밀도 있게 채워 넣은 작화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다른 작품과의 차별점을 내세우는 역설을 자연스럽게 전환해 가며 무모해 보이는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어 미래를 바꾸기 위해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만을 향해 달리는 마일즈의 용기 있는 도전을 빼놓는다면 말이다. 후속편 <비욘드 더 유니버스>가 New-Across가 불러온 변화를 거쳐 새롭게 시작된 예술을 넘어(Beyond) 설 수 있을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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