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거꾸로 뒤집는 순간 터져나온 탄성
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최은경 기자]
▲ 제목을 짓는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경우가 많다. |
ⓒ 픽사베이 |
이 질문에 순간적으로 파파박 떠오른 대답은 다섯 가지 정도로 압축되었다. ▲ 딱히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때 ▲ 더 나은 대안이 없을 때 ▲ 제목에 담긴 글쓴이의 의도를 존중해 주고 싶을 때(자의) ▲ 고치는 게 자신 없을 때 ▲ 글쓴이가 절대 고치지 말라고 했을 때(타의).
나는 발견하지 못한 장면
누군가는 제목을 뚝딱 뽑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목을 짓는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경우가 많다. 편집은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편집하는 사람마다 판단이나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그래도 회사마다 기준에 따른 평균치는 존재한다). 원래 제목보다 더 나은, 읽힐 만한 포인트를 나는 찾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은 발견할 수 있다.
▲ 선배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거나 재밌는 장면이거나 생생하다고 생각한 장면)을 포착해서 제목을 뽑았다. |
ⓒ elements.envato |
'글이 좋으면 제목도 잘 나온다'라고 쓴 바 있지만 예외는 있는 법. '홈베이킹을 하다가 알게 된 것', '가성비보다 가심비' 등등의 아이디어보다 글쓴이가 써서 보낸 처음 제목 '내가 주말마다 케이크를 굽는 이유'가 더 적절해 보였다.
오렌지 케이크는 '업사이드 다운 케이크(upside down cake)'로 우리말로 바꾸면 거꾸로 케이크쯤 되겠다. 말 그대로 거꾸로 있기 때문에 뒤집어줘야 한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뜨거운 케이크와의 한판 뒤집기! "우와~!" 틀에서 분리된 케이크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두 제목을 비교하자면 나는 글쓴이가 '홈베이킹을 하게 된 이유'에 집중해 제목을 지은 거고, 선배는 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거나 재밌는 장면이거나 생생하다고 생각한 장면)을 포착해서 뽑은 거였다. 한 마디로 내가 지은 제목이 2D라면 선배가 지은 제목은 3D인 셈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3D에 반응한다. '뭐지, 이거?' 하며 혹한다.
입체적으로 바뀐 제목을 보자마자 나도 "이야!"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게 더 생생하고 재밌네. 케이크를 거꾸로 뒤집는 순간이라니, 뭔가 더 긴박감도 있고 무슨 일인가 싶은 궁금증도 생길 것 같다'는 나름의 진단도 함께. 그래서 조회수가 어땠냐면, 바꾸기 전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러니 더 나은, 더 좋은 제목을 고민할 수밖에.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차이
글쓴이의 의도를 더 존중하고 싶을 때, 제목을 바꾸지 않는다. 더 많이 읽히는 것보다 글쓴이의 생각이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할 때다. 제목을 바꾸기 전에 상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인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목을 바꿨을 때는 필자에게 원제로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물론 제목 자체만 놓고 보면 고친 제목이 훨씬 잘 읽힐 문장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누가 더 많이 읽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 서로의 입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입장의 차이를 아쉽지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보라고 쓰는 글 아닌가, 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방법이 있는데 그걸 마다하지?' 조회수를 보면 후회할 선택이라고 예단했다(내가 뽑은 제목이 잘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부끄럽다).
쓰는 사람이 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글을 검토하는 나는 어떻게든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지만, 글을 쓰는 나는 조회수보다 내 생각이 가장 잘 전달되는 제목이 좋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은 제목을 고치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는 글은 웬만하면 손대지 않는다(팩트가 틀리거나 혐오나 차별을 담은 제목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과를 앞서 재단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아닌, 많이 읽히지 않아도 좋을 이유가 있을 테니. 물론 설득하는 일도 없지는 않다.
제목을 고치는 게 자신 없을 때는 확신이 없는 경우이지 않을까? 내가 잘 읽은 게 맞나? 이해한 게 맞나? 그런 불안이 엄습할 때.
▲ 활명수 광고 125년의 만찬 편. |
ⓒ 동화약품 |
제목은 읽은 사람이 글을 소화한 만큼 뽑힌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 뭘 쓰려고 했는지가 분명해야 제목도 수월하게 나온다. 아무리 읽어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거나, 글은 다 썼는데 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고민해 볼 만한 이야기다.
어느 소화제 광고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든 소화해 내고야 만다'는 카피를 보고, 정말 잘 만든 광고라고 생각했는데 제목도 그렇다. 글을 잘 소화 시키지 못해서 제목에 탈이 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핵심을 빼먹거나, 팩트를 틀리거나, 과장하거나,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이런 일은 한 마디로 글을 제대로 못 씹어먹어서 생기는 일이라고 나는 본다.
글을 다 쓰고, 혹은 글을 다 읽고 무슨 말을 하는 글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면 소화를 잘 시킨 거다. 글의 내용을 잘 틀어쥐고 있다면 그 상태에서 뽑은 제목은 너무 의심하지 말자(이건 내 자신에게도 하는 말). 내 판단을 믿어 보는 거다. 자신감은 성공의 경험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만약 성공의 경험을 더 많이 늘리고 싶다면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먼저 성실할 것. 같은 내용을 읽어도 다른 제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니 여러 각도에서 가능한 한 제목을 많이 뽑아봐야 한다.
조사 하나라도 바꿔 차이를 느껴보고, 문장의 앞뒤 순서를 바꾸면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테스트 해 본다. 후킹(대중을 낚아채는) 단어를 최대한 끌어내고 소리 내 읽어서 어감이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자연스럽게 다시 써본다.
이 모든 과정을 매일 무수히 많이 반복하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한다. 그래야 실력이 붙는다. 양질전환의 법칙. 양의 증가가 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법이다. 무슨 일이든 그렇다. 성실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또 한 가지는 '오늘의 제목'을 기록해 보는 것.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봐야 한다고 하지 않나. 좋은 제목도 그렇다. 내가 발견한 좋은 제목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하나씩 짚다 보면, 좋은 제목에 가까이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워도 배움이 있는 과정은 즐겁다. 잘하는 사람이 목표가 될 필요도 없다. 겪어보니 롤모델은 모델일 뿐 내가 이룰 수 없는 무엇이더라. 나의 최애 캐릭터 <낭만닥터 김사부>의 사부님도 말씀하셨다. '김사부 같이 훌륭한 의사로 살 자신이 없다'는 후배에게 "누구처럼 살 필요 없어. 너는 너답게 살면 되는 거야"라고. 내 방식대로, 나대로의 길을 찾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 진정 실력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실력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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