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만 3시간 넘게 하는 아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유정 2023. 7. 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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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위한 영화 처방전] 영화 <쿵푸팬더>

[이유정, 김형욱 기자]

포는 아침마다 아빠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아빠의 국수 가게를 돕는 포가 꼼지락거리면서 가게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늦잠은 기본, 아빠가 깨워도 일어나 나오는 게 한세월이다. 일어나는 것도 느릿느릿, 와중에 무적의 5인방 피규어에게 인사하는 건 잊지 않는다. 몸집이 큰 판다(팬더)라서 느린 걸까?

어느 날, 쿵후(쿵푸)의 성지라 불리는 제이드 궁전에서 용의 전사를 뽑는 대회가 열린다. 20년 전 감옥에 갇힌 타이렁이 돌아올 거라는 예언에 대비한 대회였다. 쿵후를 좋아하는 포도 대회를 구경하러 간다. 평화의 계곡 꼭대기에 있는 제이드 궁전으로 모두 달려가지만, 포는 올라가지 못했다. 역시 몸집이 큰 판다라서 체력이 바닥인 걸까?

포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대회가 시작해 대회장 문이 닫혀버린다. 대회장엔 들어가지 못했지만, 무적의 5인방 중 누가 용의 전사가 될지 너무나 보고 싶었던 포는 폭죽 단 의자를 만들어 폭발로 대회장 한가운데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본 대 제이드 궁전의 마스터이자 대사부인 우그웨이는 포가 바로 선택된 자라며, 용의 전사로 임명한다.

얼떨결에 용의 전사가 된 포, 첫 번째 훈련 시간이다. 포는 쿵후를 좋아하나 힘든 운동이나 훈련에는 열의가 없다. 무적의 5인방도 용의 전사가 되고자 그토록 힘들게 훈련을 해 왔는데, 척 봐도 둔하고 소질 없는 포가 탐탁지 않다. 자신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무술 훈련에도 포는 매번 장난스럽게 임할 뿐이다.

사부는 우그웨이에게 포를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포를 믿어주면 타이렁을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통제하려 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주라고 말이다. 알고 보니 포도 잘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부끄럽고 다른 친구들이 너무 잘해 주눅도 들고 사부도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 내색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포는 조금 둔하고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어, 포를 훈련 시켜야 했던 사부는 포에게 맞춤 훈련을 시키기로 결심한다. 음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포에게 딱 맞는 방법이었다. 조금 느리고 굼뜨지만, 포만을 위한 맞춤 훈련과 사부의 믿음으로 포는 점차 용의 전사의 모습을 갖춰 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모두 그들만의 속도가 있다
 
 영화 <쿵푸팬더> 스틸 이미지.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쿵푸팬더>는 <슈렉> 시리즈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변변찮은 후속작들로 픽사에 밀렸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게 다시금 희망을 선사한 명작으로 기억된다. 이후 드림웍스는 명가 재건의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한편 <쿵푸팬더>는 시리즈화되어 2, 3편이 연달아 나왔는데 한국계 미국인 제니퍼 여 넬슨 감독이 둘 다 연출을 맡아 '대형 영화사 최초 아시아계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화제가 되었다.

영화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메시지를 다 잡았다. 주인공 판다 '포'에 의해 이뤄지는데, 몸집이 비대하고 느리고 게으르기까지 한 판다 포가 자신을 믿어주는 사부 아래에서 매뉴얼 따위 없는 지독한 쿵후 수행으로 성장을 거듭해 용의 전사로 거듭나 악을 물리친다.

판다와 쿵후의 조합부터 환상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게으르고 느리디느린 판다가 빠르디빠른 쿵후를 할 수 있을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텐데 포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니 자연스레 선입관과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의 느린 행동을 걱정한다. 밥을 한 시간 넘도록 먹는다든지, 30분이면 될 숙제를 3시간이 지나도 끝내지 못한다든지, 옷을 입거나 아침에 등교 준비를 하는 데도 너무나도 오래 걸린다든지, 글씨 쓰는 게 느려 선생님이 칠판에 쓴 내용을 반도 필기하지 못한다든지...

밥을 늦게 먹거나 숙제를 늦게 한다는 등 느린 행동 자체는, 아이가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느린 행동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게으름을 피우거나 답답한 아이로 치부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알아야 할 건, 아이가 어른보다 느린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어른에 비해 아이의 행동은 아직 정교화되지 못했고 혹은 요령이 부족하기 때문에, 느리게 보이고 답답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그들만의 속도가 있다.

부모는 느린 아이에게 의지가 없어서 게을러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지 않아서 꾸물거리고 늦는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가 느린 이유는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 그러니 무작정 혼을 내기보다 아이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하다.

행동이 느린 아이의 경우
 
 영화 <쿵푸팬더> 스틸 이미지.
ⓒ CJ 엔터테인먼트
 
아이의 느린 행동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각각의 원인을 짚어보고 행동 개선 방법을 살펴보자. 그런데 만약 아이의 행동뿐 아니라 학습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어하거나 지능적인 문제 혹은 언어, 의사소통 등 특정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

첫 번째, 주의력이 부족하거나 산만한 경우 느린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들거나 주변의 자극에 쉽게 주의력이 흐트러져, 한 가지 행동에 오랫동안 집중하기 어렵다. 간단한 숙제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아이를 관찰해 보면, 숙제를 하다말고 돌아다니거나 주변 물건으로 장난을 치거나 딴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집중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연습을 하면 느린 행동이 개선될 수 있다. 공부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시키면 아이의 행동은 더 느려진다.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할 때는 일의 순서를 정해주거나 할 일을 한 번에 한 가지씩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게 도움이 된다.

두 번째, 긴장이 높거나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경우에도 행동이 느릴 수 있다. 긴장이 높으면 뇌는 긴장을 낮추려고 한다. 그러니 행동이 느려진다. 긴장이 높은 아이들은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부모가 느리다고 타박하거나 계속 채근하면 얼어붙는다.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고 행동은 더 느려진다. 그러니 답답하더라도 기다려줘야 한다. 시간을 넉넉하게 주고 활동을 시키는 게 좋다.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닦달하지 말고 일단 아이의 현재 긴장도를 낮춰주는 게 중요하다.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경우도 비슷하다. 꼼꼼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느린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완벽하게 끝내야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전체적인 흐름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긴장도가 높은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제시간에 일을 끝까지 하는 것도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세 번째는 정서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다. 아이가 우울감이나 불안을 느끼면 느린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울감은 행동을 위축시켜 관심이나 흥미, 집중력과 반응이 낮아진다. 학교생활이나 친구, 혹은 가족관계에서 부적응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진 않은지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정서적인 문제를 겪는 아이의 느린 행동은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의 느린 행동과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이런 경우 아이의 정서 상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도 좋다.

네 번째는 의존적인 성향의 경우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 행동하는 경험이 부족하면 의존적인 경향이 되기 쉬운데, 느린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누군가 계속 대신 해 줬다면, 아이는 조금만 힘든 일에도 대신 누군가 해 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런 경우, 아이가 작은 일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 행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작은 일부터 스스로 성공하는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늘 누군가 도와주면 아이는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다.

다섯 번째는 타고난 성향이나 기질적으로 느린 경우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므로 나쁘거나 좋다고 할 수 없다.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아이의 기질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타고난 성향이 느린 경우, 게으르거나 의욕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아이는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저 행동이 느린 것뿐이다.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처럼 말이다. 이런 경우, 재촉하기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여유롭게 기다려 줘야 한다. 아이도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실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시간 내 공부나 일을 해결하는 연습으로 생활 습관을 개선해 주는 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의도를 가지고 느리게 행동하는 경우다. 아이가 불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느리게 행동하는 것이다. 수동 공격성을 나타낸다. 겉으로 나타나는 공격성과 달리 고의적 지연 같은 소극적인 방법으로 남을 공격하는 것이다. 부모를 곤란하게 하고자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자녀와의 관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런가 하면, 정말 하기 싫은 경우에도 느리게 행동한다. 이런 경우, 그 일이 왜 하고 싶지 않은지 물어봐야 한다. 만약 특정 과목 공부라면 아이와 상의해 공부할 과목의 순서나 시간을 분배해 보는 것도 좋다.

의도를 갖고 느리게 행동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느린 아이에겐 시간을 제한해 행동을 빠르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행동이 빠르진 않더라도 시간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시간을 인지하고 시간 안에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아이가 직접 시간을 확인하게 한다. 너무 촉박하게 해결하게 하기보다 시간을 넉넉히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숙제를 한 시간 안에 다 하기로 정했다면, 30분 안에 절반 분량을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식이다. 일의 중요성, 우선순위 등을 알려주고 시간을 지키는 연습을 시키는 것도 좋다.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결과도 미리 함께 이야기해 보고 책임감을 기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저 아이를 믿어만 주면 된다

행동이 느린 아이는 굼뜨고 답답한 아이가 아니라 내면 세계가 풍부한 내향적인 아이라고 생각하자. 느린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건 '꾸물거리고 느리다'라는 낙인을 찍는 일이다. 부모가 아이를 그렇게 취급할수록 아이는 스스로를 느리고 꾸물거리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느린 아이에게 중요한 건 부모의 '기다림'과 '믿음'이다. 무관심과는 다르다. 아이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당면한 사회가 굉장한 속도로 경쟁하는 게 당연시되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하겠지만, 속도만이 미덕은 아니다. 행동이 느리다고 모든 게 더딘 것도 아니다. 행동이 느린 아이라도 분명 빠르게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행동이 느리더라도 노력하면 시간 내에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자. 아이는 신중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노력형 아이로 자랄 것이다.
 
"저 복숭아꽃들이 언제 어느 날 개화할지 어찌 알고, 저 수많은 복숭아 중 어떤 게 언제 낙과할지 어떻게 알겠나? 자네는 그저 그 아이를 믿어만 주면 되는 거야. 약속하게, 사부. 믿음을 갖겠다고 약속해 주게나." - <쿵푸팬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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