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곡 없고 댄스도 없는데…공연 만석 행진 싱어게인 스타
“저는 정도(正道)로 음악을 계속해보겠습니다.” 가수 이승윤(34)의 음악관을 집약한 한 마디였다. 지난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진행된 '도킹'(DOCKING) 앙코르 콘서트는 그의 이러한 음악관을 꼭 빼닮았다. 공연 중 간간이 “제 멘트는 시간벌기용”이라며 다소 낯가리는 느낌의 발언을 이어가다 다음 무대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받으면 돌변하곤 했다. 그의 생각과 마음을 관객에게 전하는 데 언어보다는 음악이 더 편한 듯했다.
아이돌 위주의 한국 가요계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3년 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30호 가수’였던 그는 일관된 음악 세계로 팬들을 차츰 끌어모았다. 지난해 단독 콘서트 매진에 이어 올해 2월부터 진행했던 첫 전국투어의 서울 공연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번 공연은 6개 도시에서 진행된 전국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열린 앙코르 무대. 역시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공연 강자’라는 수식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증은 첫 곡부터 풀렸다. 올 초 공개한 곡 ‘야생마’로 문을 연 이승윤은 가사 속 “파격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세상에 없던 말”과 같았다. 달랑 스탠딩 마이크 하나만 마주한 채, 댄스 같은 퍼포먼스 없이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오른손을 위로 들어 보이며 끌어낸 관객의 호응은 전자 기타의 쨍한 소리와 어우러졌다.
시종일관 그는 전체 공연의 지휘자 같았다. 곡 ‘한 모금의 노래’에선 중앙 돌출 무대로 밴드 전원이 나와 일렬로 서서 어쿠스틱 무대를 꾸몄다. 기타를 맨 이승윤은 등을 돌리고 세션(연주) 멤버들과 눈을 맞추며 노래했다. 나아가 관객까지 지휘했다. ‘무명성 지구인’을 부르고는 관객들에 “브릿지 파트를 자신 있다 하셔서 기회를 드렸는데 영 아니었다. 다시 기회를 드리겠다”며 같은 부분을 한 번 더 노래하기도 했다. ‘우주 라이크 섬띵 투 드링크’ ‘웃어주었어’ 앙코르 무대에선 2층 지정석까지 뛰어 올라가더니 급기야 관객이 없는 시야 제한석 좌석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공연장을 흔들었다.
이승윤 공연을 찾은 팬층은 다양했다. ‘싱어게인’으로 팬이 됐다는 중년 부부부터 정규 앨범에서 버릴 수록곡이 없다는 젊은 층까지, 연령·남녀가 뒤섞였다. 이러한 '티켓 파워'는 그의 색깔이 담긴 곡과 가사로부터 나온다. 2021년 발매한 정규 1집 타이틀곡 '폐허가 된다 해도'의 “난 나라는 시대의 처음과 끝이야. 난 나라는 인류의 기원과 종말이야”라는 가사는 떼창을 통해 의미가 배가 됐다. 정규 2집에 수록된 '기도보다 아프게'는 음원보다 라이브에서 감성적인 보컬이 훨씬 돋보였다.
전날 공연에서 이승윤은 “히트곡 하나 없는 제가 이런 공연을 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지만, ‘싱어게인’ 우승 후 발매한 두 장의 정규 앨범만으로 120분 공연은 꽉 채워졌다. 커버곡이나 게스트는 없었다. 사전에 팬들에게 받은 이승윤을 표현하는 수식어 중 '시집을 다시 읽게끔 하는 록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승윤은 공연 중 “언젠가 인터뷰 중 ‘(스스로) 언더도그(underdog)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당시엔 ‘제가 언더도그라고 하면 기만이죠’라고 말하면서 ‘오버도그’로 하겠다고 했다. (이후) 생각해보니 오버는 아닌 것 같다. ‘언더 드래곤(용)’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언더도그’는 상대편보다 세력이 약해서 경기나 싸움에서 질 것 같은 사람이나 팀을 말한다. ‘언더 혹은 오버’, 즉 ‘주류 혹은 비주류’의 틀을 벗어나 ‘도그’가 아닌 ‘드래곤’을 선택한 것은 그다운 결론이었다.
공연 말미 그는 “어제오늘 공연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이게 스탠딩의 맛이구나. 다 끝나고, 손이 저릿저릿했다”며 생애 첫 스탠딩 콘서트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끝인사는 새 앨범 발매 예고였다. 이승윤은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올해 초) 냈다. 이제 또다시 창작을 해야 할 때란 생각이 든다”면서 “내년에 새 앨범을 낼 것”이라고 밝혀 환호를 받았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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