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스마트글라스 너머 '함께 사는 세상'

2023. 7. 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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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켈리 著 '5000일 후의 세계'
AI 결합한 AR·VR이 이끄는 미래
스마트글라스가 핵심 매개 역할

"테크놀로지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미국 작가 케빈 켈리는 미래를 내다보려면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술의 흐름에 몸을 실으면서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면, 성공 가망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동력인 까닭이다.

켈리는 우리가 과학기술을 인류 전체를 위해서 어떻게 더 낫게 사용할 것인지는 고민할 수 있어도, 그 발전 가능성 자체를 가로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전기를 발명하면, 곧이어 전파가 생겨나고, 결국에는 와이파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든 싫든 기술의 목소리를 들어야 미래의 해상도를 높일 수 있다.

‘5000일 후의 세계’에서 켈리는 앞으로 50년에 걸쳐 인공지능(AI) 기술이 자동화와 산업혁명에 견줄 만한 혁명적 변화를 인류 사회에 가져오리라고 말한다. 조만간 우리는 인공지능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배우고 일하는 세상에 진입한다. 수도나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 인공지능은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처럼 일상의 필수 인프라가 된다.

1995년 인터넷이 상용화하면서 전 세계 정보를 디지털화해 검색하고 답하는 웹 플랫폼이 구축됐다. 그 후 약 5000일(약 13년)이 지나자 SNS 플랫폼이 나타났다. 휴대전화 발명으로 촉진된 SNS는 극히 복잡하고 변덕 넘치는 인간관계(소셜그래프)를 대량으로 정보화함으로써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인공지능 발달을 가속했다. 웹과 SNS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각각 큰 변화를 가져왔다.

켈리에 따르면, 다음 5000일 동안 일어날 변화의 중심에는 인공지능과 스마트글라스가 결합한 미러 월드가 있다. 데이비드 겔런터 예일대 교수가 처음 명명한 이 용어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겹쳐져 존재하는 세계를 가리킨다. 미러 월드는 사물인터넷 등을 사용해서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공간 자체를, 더 나아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인간 감각 자체를 정보화한다. 스마트글라스는 그 정보를 인간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각종 기계의 총칭이다.

미러 월드엔 두 가지 표현 양태가 있다. 하나는 흔히 메타버스라 부르는 디지털 가상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과 정보가 실시간 결합한 증강 현실이다. 스마트글라스 안에서는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지구 규모의 가상 세계를 실시간으로 함께 구축하고, 스마트글라스를 끼고 바라보는 현실 세계에선 눈짓, 손짓 같은 간단한 동작만으로 거리나 사물에 온갖 디지털 정보가 겹쳐져 연출된다. 둘은 인공지능(디지털)과 현실이 결합해서 탄생한다는 점에서 본질상 같은데, 표현 양태만 다소 다르다.

가령 차세대 자동차를 개발하려고 스마트글라스를 이용해 100만명이 함께 일하는 세계가 도래한다. 현재 오픈소스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협업해서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듯, 가상 세계에 3D로 생생하게 구현된 자동차를 놓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후, 인공지능의 실시간 통역(번역) 기술의 도움을 받아 대화하면서 새 자동차를 만들고, 각자 기여도는 블록체인 기술로 기록해 보상 과정에 활용하는 세계가 열린다.

미래엔 이런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성과 경험, 상상력과 통찰력, 대화와 협업의 기술 등이 무척 중요해진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최적화한 학습 방법을 습득하는 한편,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깊이 파고들되 가능한 한 넓은 분야에 두루 관심을 품고 교양을 쌓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게 좋다.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다른 사람 말을 알아듣고, 필수지식을 함께 학습하며 서로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이 갈수록 흔해지기 때문이다.

스마트글라스를 쓴 채 현실 세계를 돌아다니면, SF영화에서 보듯 실시간으로 장소나 사물의 역사와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가령 거리를 걷다 음식점을 바라보면, 그 집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주메뉴는 무엇인지, 소비자 평가는 어떠한지 등을 순식간에 알 수 있다. 마트나 시장을 둘러보다가 요리 재료를 지켜보면 누가 언제 생산했는지,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등이 떠오른다. 이러면 공간에 축적된 정보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성공의 지름길이 되고, 주민들이 이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혁신하느냐가 도시의 미래가 된다.

스마트글라스를 통해 제공되는 번역(통역) 인공지능은 공간의 장벽을 허문다. 이러면 지역을 넘나드는 교류와 취업이 활성화하고, 다양한 국가로 여행하면서 ‘일 년 살기’ 같은 노마드적 삶을 즐기는 일이 빠르게 증가한다. 지역을 넘어선 삶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이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비결이 되고, 인재를 뺏고 뺏기는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진다.

도시는 질 좋은 정보를 쉽게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거대 클러스터로 변화한다. 암스테르담은 디자인, 실리콘밸리는 소프트웨어, 선전은 가전제품, 서울은 반도체 관련 산업이 몰리고 재능과 자금이 쏠리는 메가시티가 된다. 이주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적절한 복지, 소통과 협력을 북돋우는 열린 문화, 값싸고 질 좋은 공공 인프라 등 매력을 갖추지 못한 도시나 국가는 장기적으로 인재 부족으로 쇠퇴한다.

현재 IBM,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공룡들이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기술에 돈을 쏟아붓는 건 미러 월드가 이룩할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IBM은 MS가 되지 못했고, MS는 구글이 되지 못했고, 구글은 페이스북이 되지 못했다. 성공의 보호를 받으면 현실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더 재빠르고 더 명민하고 더 도전적인 기업이 미러 월드로 가는 과정에서 승자가 되리라고 예측한다.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낳고, 항상 성공 모델을 바꾼다. 누군가는 그 흐름에 올라타서 미래를 먼저 산다.

대량 실업에서 인간 멸종 시나리오까지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흐름에 관한 민감성을 기르고, 상식을 늘려가며,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 발전을 막을 순 없어도, 공동체 전체에 봉사하는 좋은 기술이 되도록 이끄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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