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로봇청소기 구매를 후회하시나요? [마흔이 서글퍼지지 않도록]

남희한 2023. 7. 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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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택'은 '최선'이었다는 믿음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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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 기자]

▲ 로봇청소기 청소가 편해질 줄 알았다. 사용해보기 전에는....
ⓒ Pixabay
아이가 많은 집이라 먼지가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1층인 영향도 있겠지만 노는 것이 일인 네 명의 아이 덕분이다. 조금만 본업에 충실하면 황야에나 굴러다닐법한 건초뭉치 같은 먼지가 어느새 바닥을 굴러다닌다. 수시로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럴 때면 내 손에 들리는 것은 정전기 포를 붙여 쓰는 청소 밀대다. 흡입력이 뛰어나다는 무선 청소기와 알아서 먼지를 먹고 다닌다는 로봇 청소기가 있지만 20% 모자란 느낌에 청소 업무에서 배제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선 청소기를 애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손목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방향을 돌리다 보면 손목이 뜨끔거렸다. 처음엔 묵직한 느낌에 근육이 붙겠다 싶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파스가 붙었다.

안되겠다 싶어 더 작은 무선 청소기를 들고 거실에 섰는데 차라리 걸레질 하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 바로 든다. 이럴 때만 광활해 보이는 거실. 집이 작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조금 편해보려고 산 로봇 청소기는 가는 곳마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난다. 널브러져 있는 장남감과 어쩌다 이런 곳까지 왔는지 모를 양말이나 머리끈에 멈춰 서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편해질 요량이었는데 이물질을 빼주는 요령만 는다.

종종 침대 가장 깊숙한 곳에서 양말을 물고 잠들어 있는 날엔 뜻하지 않은 수색 작업과 구조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침대 밑 먼지의 반은 내 몸으로 닦게 된다. 일석이조라기엔 뭔가 대단히 석연치 않다.

게다가 널려있는 바닥의 물건들을 치우다보면 로봇청소기가 나를 위해 있는 건지 내가 로봇청소기를 위해 있는 건지 정체성도 모호해진다. 상호보완이라기엔 돈 들여 산 내 입장에선 좀 억울하다.

그에 반해 청소 밀대는 내게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갖추고 있다. 우선 가볍다. 아주 적은 힘으로도 모든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밀기, 당기기, 돌리기. 무엇을 하든 신체 어디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다. 흩어져있는 장난감을 한 쪽으로 몰아넣는데도 아주 유용하다. 빨아들이는 청소기는 언감생심인 고급기술이다.

길이가 조절되고 길어져도 제어가 전혀 어렵지 않다.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닦는 것이라 훨씬 깔끔한 느낌이란 것 또한 큰 매력이다. 그런 이유로 내게 있어서만큼은 청소 밀대가 바닥 청소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된다.

진공청소기와 로봇청소기를 두고 왜 청소 밀대를 쓰냐는 갸웃거림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런 속사정에 의해 끄덕임으로 바뀌게 된다. 들여다보면 모든 선택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행착오 속에서 바꿔 온 이유 있는 선택들이 현재를 만들어 낸다. 삶이 이런 식이다.

지난 선택에 대한 아쉬움
 
 현재의 결과만을 보고 이전에 했던 선택을 번번이 후회하곤 한다.
ⓒ Pixabay
과연 당시의 선택이 후회할 만큼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수많은 리뷰를 읽어보고 넘치는 기대로 힘 좋고 똑똑한 청소기들을 들였지만, 그들을 제쳐두고 청소 밀대를 잡고 있는 것처럼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알게 됐지만 옳지 않은 선택이었단 것을 당시에 알 수 있는 상황이었을까. 과연 내가 바꿀 수 있는 선택이었을까.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에서 선택의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겹겹으로 진행된 여러 사건의 결과가 쌓이고 쌓여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그럼에도 현재의 결과만을 보고 이전에 했던 선택을 번번이 후회하곤 한다.

로봇청소기만 사면 소소한 바닥청소는 그냥 해결될 줄 알았다. 광고에서 그러지 않나. "이제 바닥은 제게 맡기세요!" 하... 그렇게 맡겼다가 로봇청소기가 나한테 맞을 뻔했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기대에 부응하거나 생각처럼 흘러가지도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닌 굉장히 감사할 일이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로봇청소기를 구매한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후회란 게 이런 식이다. 상황이 조금만 바뀌거나 적잖이 만족하지 못하면 최선이라 믿었던 선택은 후회거리가 된다.

언젠가 바닥에 있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사라지고 모두가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정리하는 생활이 지속되면 '뭣 하러 이런 청소 밀대를 썼지? 정전기포는 왜 이리 쟁여 논 거야?'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그런 의문을 품을 계획이 전혀 없지만 삶이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게다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후회를 줄이기 위해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거나 기억력을 높이려 노력하는 것은 게으른 망각의 동물인 내가 봤을 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그리 쉽게 능력치를 높이거나 없던 습관을 만드는 것에 재능이 없다. 그래서 그냥 매 순간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믿음이 기억보단 믿을만하니까.

삶은 최선의 연속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 Pixabay
최선이었다. 이 믿음을 반복적으로 되뇔 수 있다면 지난 선택에 사무치게 아쉬워하진 않을 수 있다. 맞다. 그냥 다 이유가 있었겠지~ 하며 합리화하겠다는 이야기다. 뭐 어떤가.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일. 지난 일로 마음까지 괴롭힐 필요는 없다. 과거가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행복해야겠다.

삶은 최선의 연속이다. 비록 매순간 신중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단단한 믿음이 있어야 그걸 밟고 뛰어 오르든 박차고 달려 나가든 할 수 있다. 한숨만 쉬는 걸론 어디로든 나아가지 못한다. 게다가 그 자리에 온전히 머무르려 하더라도 딛고 있을 바닥은 필요하지 않나. 지난 선택은 뒤로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후회'라는 또 다른 선택은 하지 않아도 될 이유다.

휴...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느긋하게 쉬고 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는 마음이 이제 조금 편안해졌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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