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지팡이와 날카로운 클랙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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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기자]
▲ 건널목 신호등. |
ⓒ 최승우 |
태양의 이른 기상으로 아침이 일찍 열리고 사람의 일상도 바쁘고 활기차다. 아파트 옆 공터에는 부지런한 할아버지의 정성으로 상추와 깻잎이 자리 잡고 한여름의 쓸모를 기다린다. 공공 근로에 임하는 어르신은 아이들의 등교지도에 여념이 없으시다.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는 보행기에 물건을 싣고 어디론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신다.
바쁘게 걷는 걸음으로 등줄기에 땀이 맺힌다. 도보 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걷는 속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호등의 흐름을 잘 타야 한다. 바로 앞에 녹색등이 켜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빨간불에 걸리면 2~3분이 지체된다.
갑자기 뒤에서 날카로운 클랙슨 소리가 들려온다. 할아버지가 건널목을 건너는 중 빨간색으로 변한 신호에 빠르게 통과하려 하나 지팡이와 몸이 따로 놀아 여간 위험하지 않다.
"노인은 언제나 느린 걸음으로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다니지. 빨리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단다. 몸이 두 쪽 나 버릴 수도 있으니까."
▲ 엘리자베트 브라미의 <너희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단다>(개정판이 출간되었다) |
ⓒ 보물창고 |
'60 청춘', '인생은 60부터'라는 구호가 차고 넘쳐난다. 각종 매체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노년의 모습을 소개하고, 미용과 건강 등 관련 산업이 호황이다. 인간은 평균 수명 연장이라는 과학과 의학 발달의 수혜자이지만 삶의 시간 연장이 축복일 수만은 없다. 인간은 여전히 시간 속에 머물고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청소년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가까운 거리도 뛰어가고 점심시간을 공 차는 시간으로 활용하나 노인의 시간은 다르다. 70이 넘고 80에 이른 노인은 노화로 인해 약해진 근력으로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약해진 시력과 청력 등의 감각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고령의 노인은 보폭이 좁고 느리며 인지 능력 또한 떨어진다. 건널목이나 도로를 건널 때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중간에 머물거나 의도치 않게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 교통사고의 원인이 노인의 안전 의식 결여와 무리한 횡단, 자동차가 알아서 피해 가겠지, 하는 안일한 인식 등이 문제이지만 교통사고의 원인이 노인의 실수로만 발생하겠는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아래로 향한 시선과 뒤뚱거리며 걷는 불안정한 노인의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힘들게 건널목을 걷는 노인에 대한 차창 속 따뜻한 시선과 기다림이 이제는 잊힌 조상들의 아름다운 덕목으로만 기억해야 하는가? 0.01초의 기록 경신을 위해 출발선에 선 100미터 육상 선수의 긴장감이 아닌 느긋한 마라톤 선수의 여유를 가지고 차를 출발하면 안 되는가?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과거의 어느 시절 우리는 순진한 어린애였고 지금은 현재의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미래의 어느 시간은 노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세월의 무게에 지쳐 무딘 감각과 기우뚱거리며 힘들게 걷는 노인의 모습은 잠시 유보된 미래의 나이다.
▲ 책 <너희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단다> 중에서 |
ⓒ 최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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