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가 제주에서 10년을 산 비결, 이거랍니다 [제주 이민 10년차들을 만나다]

박순우 2023. 7. 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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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민 10년차들을 만나다] 뭐든 시작하고 배우는 사람 이미림씨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순우 기자]

오는 9월이면 제주로 이주한 지 만 십 년이다. 십 년이라니.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이리도 빨리 흘러갈 줄이야.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십 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니, 시간마다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이 보인다.

오자마자 사람에게 상처 받아 고슴도치처럼 가시만 내놓고 숨어든 적도 있었고, 자연 앞에 풍전등화인 처지를 절감하곤 두려움에 섬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남았고 어느덧 십 년차 이주민이 되었다. 

'제주 이주 열풍'이 분 건 2010년대 초반이었다. 올레길이 열리고 제주의 속살을 맛본 사람들은 육지와는 좀 다른 삶을 꿈 꾸며 섬으로 모여들었다. '제주 이민'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주 열풍은 2018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든다.

언론들은 섬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집중 보도하고 나섰다. 연봉이 적다, 일자리가 없다, 궨당 문화(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로 이웃까지 범위를 넓혀 사용된다)가 견디기 힘들다 등. 나 역시 섬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떠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나처럼 여전히 이곳에서의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선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같은 이주민인 나 역시 그동안 먹고산다고 바빠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여전히 제주에는 새로운 삶을 꿈 꾸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 십 년 넘게 섬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인터뷰에 나섰다.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건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경우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태어났기에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거나 정신 없이 흘려보냈다. 그런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십 년을 보냈을까. 나라면 고비가 올 때마다 섬을 뛰쳐나갔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당시 이주민들은 대다수가 삼사십 대였다. 사회의 쓴맛을 어느 정도 본 뒤 다른 삶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제주에 와서 이삼십 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어 신기했다.

2014년 1월, 당시 휴학생 신분이었던 이미림(32)씨는 스태프 일을 두 달만 해보자며 제주로 왔다. 당시 제주에는 게스트하우스(게하)가 속속 들어서고 있었는데, 스태프 일을 하면 숙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에서 얻은 깨달음,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 제주 십 년차 이주민 이미림씨 오름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미림씨
ⓒ 이미림
 
- 두 달만 살겠다던 사람이 십년차가 됐어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제가 사실 겁도 많고 새로운 걸 잘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아르바이트를 해봤자 최저임금이라 돈은 안 모이고, 집에서는 눈치만 보이고, 졸업한 뒤에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두 달만 제주에서 살아보자 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이전에는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왔어요. 인천 신도시에서 나고 자랐는데, 친구들도 그렇고 모두 생각도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했죠. 근데 게하에서 일하다 보니까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는 거예요.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제주에 있는 게 몸에 잘 맞기도 했어요. 그 전까지는 꼭 화장을 해야 하고, 옷도 어떤 브랜드를 꼭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주에 오니까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허름한 옷도 막 입고 다니는 거예요.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걸 처음 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약속한 두 달이 지나고 게하 사장님이 매니저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셔서 1년을 더 있게 됐어요. 복학을 한 뒤에도 가고 싶은 기업도 딱히 없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제주로 다시 내려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게하에서 일하다가, 사장님이 새로 책방을 열어서 책방 직원으로 6년을 일했어요.

게하 사장님이 제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도 포용력이 넓고 엉뚱한 사람이거든요. 사장님이랑 함께 있으면 너무 재밌고 배우는 게 많아요. 게하 사장님네랑 함께 먹고 자고, 가족 같은 사이가 돼서 더 오래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책방에서의 이미림씨 책방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미림씨 모습
ⓒ 이미림
 
- 제주에서 새로운 가족이 생긴 셈이네요. 십 년 동안 있으면서 제주를 떠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정말 많았죠.(웃음) 제일 힘들었던 때는 게하 사장님네가 잠깐 제주를 떠나 있을 때였어요. 그때 느낌이 꼭 부모한테 버림 받은 자식 같더라고요.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 줄 알았는데, 사장님을 부모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때 진짜 독립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음이 지옥이면 제주에 있어도 지옥이더라고요."

- 위기는 어떻게 넘겼나요?
"그때 명상적인 요가를 하는 요가원에 다니게 됐어요. 한 시간 반 동안 요가를 하는데, 한 동작을 오분씩 버텨야 했어요. 아무리 쉬운 동작도 오분을 버티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는 어떻게든 잘 하고 싶었어요. 왜 잘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무리하지 마세요. 애쓰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저는 속으로 그랬죠. '아니 왜. 잘 해야지. 무리를 해야지. 어떻게든 1등을 해야지.'(웃음)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 제가 실체가 없는 것에도 무조건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내가 너무 애쓰며 살았구나, 싶었어요. 

또 돌아보니까 인간 관계가 너무 좁은 거예요. 사장님네 가족 말고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마침 그때 요가원에서 만난 분들이 저랑 뭔가 주파수가 맞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평소 친해지고 싶었던 분들한테 용기를 내서 다가갔죠. 같이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그러면서 차츰 좋아졌던 것 같아요."

'참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 지금 일하는 데가 명상과 차를 소개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그럼 요가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요가원에 가면 꼭 요가가 끝나고 차를 주는 거예요. 그때 차에 관심이 생겼어요. 책방 그만 두고 쉬고 있을 때, 명상이랑 차를 소개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3일만 해볼 생각으로 갔다가 아예 직원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면접 때 '저 차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요' 하고 말했는데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손님들한테 차를 소개할 때, 우리는 차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안내를 하는 거라고 말하거든요. 그래서 어렵지 않게 직원으로 들어갔어요. 

티하우스에 1년 정도 일했고 지금은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사실 디자인이에요. 웃기죠. 저는 포토샵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니까 배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포토샵을 켜는 방법부터 다 회사에서 배웠어요."

- 제주라는 특성이 작용한 걸까요? 시골이고 젊은 인력은 없으니.
"그런 것 같아요. 높은 연봉 주면서 전문 인력을 쓸 수는 없으니. 있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쓰는 것 같아요. 차를 하나도 모르는데 와서 배운 것도 그렇고, 디자인도 여기에서 배우면서 바로 실전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육지라면 디자인 할 수 있는 인력이 널려 있어서 저 같은 사람을 굳이 쓰지 않았겠죠." 

- 직장만 다니는 게 아니라 N잡러라고 들었어요. 에어비앤비로 방도 임대하고, 자신만의 공간도 갖고 있다고요. 
"살고 있는 데가 예전에 펜션이었던 곳인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립된 두 공간이 나와요. 그래서 하나는 제가 쓰고 나머지 하나를 한달살기 하는 여자분께 임대해드리고 있어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공간도 혼자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뭐든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회가 와도 하지를 못했는데, 요즘 저는 그냥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라 이 공간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명상에서는 '참 나'가 있다고 하거든요. '참 나'를 마주하고 인정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조금씩 저를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커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공간을 열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 Life isn't cool 이미림씨가 임대해 활용하고 있는 공간인 'Life isn't cool'. 매주 목요일마다 이 공간에서는 독서모임이 열린다.
ⓒ 이미림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보고 싶어요

- 미림씨는 또래들이랑 자신을 잘 비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게하 스태프 일을 할 때는 그래도 또래를 좀 만났는데, 근래에는 아무래도 또래보다는 저보다 조금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랑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가까이 하는 지인들도 저처럼 타인이나 사회보다는 '나'를 중심에 두고 사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보다는 내가 뭘 원하는지 등 내면을 향한 질문을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지금 미림씨는 무척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여요. 제주에 사는 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죠.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 저는 통통한 몸매 때문에 민소매도 못 입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이제 민소매를 입어요.(웃음) 물도 무서워했는데 이제는 바다에 가면 발 담그고 재밌게 놀 줄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겁이 많아서 새로운 걸 잘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해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엄청 전전긍긍하는 사람인데, 예전보다 확실히 덜 주저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 먹지 않으려고요. 잘 하려는 생각도 버리고 그냥 해보려고요."

- 만약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제주로 올 것 같나요?
"네, 올 것 같아요. 제주에 있는 건 결국 사람이 제일 크지만, 이제는 사람이 떠나더라도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유가 있겠거니. 10년 산 것도 의미가 있겠지, 해요. 의미가 또 없으면 어떤가 싶고요. 제주는 이제 제 뿌리 같아요. 다른 데 있다가도 제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들 때 제가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생각보다 제가 이곳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근데 제가 제주에 와서 많이 변했잖아요. 그래서 다른 곳에 가면 또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보면 또 제가 많이 성장하지 않을까. 그런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 비교하고 시기하는 나이가 이삼십 대라고 생각해 왔다. 이미림씨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니었다. 삼십 대 초반인데 누구보다 빨리 자신에게 집중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회 경험 없이 제주 시골에서 살아가는 청춘들도 도시 청춘만큼이나 좌충우돌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족 없이 왔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사람이 꼭 많은 곳에서 부대끼며 살아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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