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주민번호 없는 아이들의 비극

조인경 2023. 7. 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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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냉장고에서 4~5년 전 태어난 영아 2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놀란 국회와 정부는 부랴부랴 의료기관이 아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학대받거나 방임 피해를 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행방이 묘연한 아동들이 한두 명씩 나오는데, 대개 부모를 따라 해외로 출국한 경우이지만 이따금 부모가 아이를 유기한 사건이 드러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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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냉장고에서 4~5년 전 태어난 영아 2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태어난 이후 두 달여간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아기는 결국 영양결핍으로 숨졌다. 원치 않은 출산을 한 20대 엄마는 온라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에게 갓난아이를 넘겼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기를 집 주변 야산에 유기한 친모도 적발됐다. 정부가 지난달 하순부터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 같은 사건들은 불과 2주 만에 수사대상이 200여건으로 늘고, 이미 15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출생 미신고 신생아 2000여명을 전원 조사하겠다고 하니 행여 앞으로 그 숫자가 더 늘어나는 건 아닐까 두렵고 참담하기까지 하다.

놀란 국회와 정부는 부랴부랴 의료기관이 아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한, ‘주민등록번호 없는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권단체 등이 십수 년 전부터 요구해 왔고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이미 2년 전 발의됐던 법안인데 그동안 다들 손 놓고 있던 셈이다. 그나마 시행은 1년 뒤부터나 이뤄진다.

출생통보제로 다 관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출생통보제가 자칫 출산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는 산모들의 ‘병원 밖 출산’을 늘릴 수 있다며 산모가 신원을 숨기고 출산해도 정부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양육 포기를 부추기거나 훗날 아동이 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찬반 논란이 맞선다.

정부의 전수조사에서 빠진 미신고 외국인 아동 4000여명의 경우 본국에라도 출생신고가 돼 있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현행법상 외국인은 국내에서 출산한 뒤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없고, 이들의 출생등록을 위한 규정이나 제도도 없기 때문이다. 형법 제정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영아살해죄’ 형량을 강화해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형법상 살인죄는 최소 5년 이상의 징역부터 사형까지 처할 수 있지만, 영아살해죄는 최대 형량이 10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조사 이전에도 교육부는 2017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예비소집일에 오지 않은 학생들의 행방을 추적해 안전을 확인해 왔다. 학대받거나 방임 피해를 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행방이 묘연한 아동들이 한두 명씩 나오는데, 대개 부모를 따라 해외로 출국한 경우이지만 이따금 부모가 아이를 유기한 사건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번 출생 미신고 아동 조사를 통해 의료기관과 보육기관, 교육기관, 정부 행정망 등을 총동원하면 좀 더 빨리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

합계출산율 0.78%의 초저출산 국가에서 해마다 이렇게 많은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살해당하는 일은 명백한 범죄이자 사회·국가적 손실이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방치한 채 저출산 대책에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한탄이 나올 만하다. 이미 태어난 아이만큼은,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고 건강하게 키워내도록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와 정부가 더 철저하고 빈틈없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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