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주 품은 산 걸으며 야생화 탐방, 낮은 하늘을 봤다

이완우 2023. 7. 6. 10: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원 교룡산 둘레길 7km 걸으며 만난 씀바귀와 돌나물

[이완우 기자]

 남원 교룡산, 광한루 앞 요천 변에서 본 전경
ⓒ 이완우
 
전북 남원시의 북쪽에 형제처럼 솟은 두 봉우리(밀덕봉과 복덕봉)의 교룡산(蛟龍山, 518m)은 멀리서도 한눈에 잡힌다. 교룡산 둘레길은 하나의 산을 이루는 두 개의 멧부리 기슭을 한 바퀴 걷는 산책길이다.

교룡산 주차장에서 보성 마을 갈림길까지는 1.2km 구간. 금강 마을 갈림길까지 3.2km 구간. 기린봉 갈림길까지 1.6km 구간. 교룡산 관리사무소(교룡산 주차장)까지 1.0km 구간. 이렇게 교룡산 둘레길은 7km 거리의 순환 코스로 2시간이면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

7월 초순 장맛비가 잠시 멈추고 맑은 날에, 이때다 싶어 교룡산으로 야생화 탐방을 나섰다. 남원의 옛 지명은 고룡(古龍)과 용성(龍城)이었는데 이곳 교룡산에서 유래한다. 교룡산의 두 봉우리는 두 마리의 용으로서 남원 고을과 백성을 보호한다고 믿어졌다.

두 마리 용이 지키는 곳  
 
 메꽃
ⓒ 이완우
 
남원 지역의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교룡산이 둘레길에 들어서면 두 봉우리는 보이지 않고 숲 그늘이 계속 이어져서 한여름 대낮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동북쪽으로 지리산 연봉이 희미하게 보이는 장소에 흰색 메꽃이 피어 주위가 환하다.

메꽃은 여러해살이 통화 식물로 꽃잎이 서로 붙어 꽃부리가 나팔 모양의 하나의 꽃 판을 이룬다. 밥의 고어(古語)가 '메'이니 메꽃은 '밥 꽃'이다. 옛적 메꽃은 먹을 것이 없었던 보릿고개 시절을 고맙게 넘길 수 있게 하던 구황식물로, 뿌리줄기와 어린잎을 식용하였다. 고구마꽃을 닮은 메꽃은 엷은 홍색의 꽃이 저녁에도 피어 있다.

메꽃을 소재로 한 동요가 있다. 모래알이 반짝이고 햇볕은 쨍쨍한데 호미나 괭이로 덩굴줄기의 메를 캐어 부모님 모셔다가 맛있게 먹는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메꽃 뿌리줄기의 왕성한 생명력으로 밭에서 호미에 잘리고 뜯겨도 더 번창하며, 메꽃 땅속줄기가 고구마같이 녹말을 저장하고 있다.
 
 꿀풀
ⓒ 이완우
 
보성 마을 갈림길인 작은 삼거리가 나왔다. 감나무 과수원에 생명력이 푸르다. 칡넝쿨이 키 큰 나무를 타고 오른다. 계절 따라 변화하는 식물들을 관찰하느라 숲속의 산책은 순간순간 새롭다. 꿀풀이 풀숲에 숨어서 피었다.

꿀풀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로 보라색 통꽃에 꿀이 많아서 꿀벌 사랑을 듬뿍 받는다. 여러 가지 약효가 있어서 유용한 풀이다. 하지 절기가 지나면 꽃이 피고 난 지상부의 줄기와 잎이 말라죽어서 하고초(夏枯草)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 꿀풀의 꽃을 뽑아 꿀을 빨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이어 나선 둘레길에서 사방댐을 만났는데 그리 반갑지 않다. 계곡 물길에 석축을 쌓고 시멘트로 깨끗이 단장하여 계곡의 물길 도랑에 가재 한 마리 볼 수 없게 됐다. 장맛비가 잠시 그친 숲길 모퉁이를 돌아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숲길을 걸으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시원한 바람을 만나 상쾌하다.
 
 씀바귀
ⓒ 이완우
 
씀바귀는 쓴맛이 나는 약용 나물로 뿌리 어린잎을 식용한다. 달래, 냉이와 씀바귀의 순서로 동요에 나열될 정도로 대표적인 봄나물로 줄기를 꺾으면 우윳빛 점성의 액체가 나왔다. 종다리 노래를 들으며 봄맞이 가는 바구니에 봄나물을 캐어 담으면 버들피리 가락에 꾀꼬리 노래가 어울렸다.

교룡산 북쪽의 남원시 대산면에 풍악산이 있다. 둘레길에서 풍악산 산줄기가 잘 보인다. 이 산기슭에 높이 3M의 신계리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은 예로부터 교룡산의 교룡이 찾고 있는 여의주(如意珠) 바위로 알려져 있다. 교룡산의 교룡이 여의주를 얻게 되면 승천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적당히 숨결이 가쁘고 종아리 근육이 묵직할 정도로 숲길 산책길을 걷는 강도에 깊은 호흡을 반복하니 마음은 더 가벼워진다. 숲길 걷기에 삼매(三昧)인데 다람쥐가 앞을 가로질러 가다가 멈추어 서서 무언가에 열중하며 인기척에 무관심한 태도이다.
 
 띠꽃
ⓒ 이완우
 
띠꽃은 볏과 띠속의 여러해살이 식물인데 지역에 따라 삐비나 삘기 등 향토색 있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띠의 도톰한 꽃대인 삐비는 풀잎으로 둘러싸인 여린 이삭이다. 이 여린 이삭인 삐비는 속살이 부드럽고 달콤한 즙이 풍부하여, 껌처럼 씹어 먹었던 어린 시절의 아련함을 추억하게 만든다.

띠꽃은 명주 같은 하얀 깃털이 풍성한 꽃을 늦봄에서 초여름에 피운다. 산길에나 산소 주변에 하얗게 핀 이삭을 가볍게 바람에 나부끼는 띠꽃은 여윈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처럼 쓸쓸한 정서를 환기했다. 그러나 띠풀이 군락을 이루어 가을바람에 은빛 띠꽃의 물결을 이루면 멋진 풍경을 이룬다.

편백, 대나무 숲, 메타세쿼이아와 느티나무 등 다양한 나무의 숲길을 지난다. 이 지역 출신의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 시비를 보니 둘레길 7km를 거의 다 걸었다는 뿌듯함이 다가온다. 돌탑처럼 만든 식수대에서 춘향과 이 도령의 암각 도형 옆에 새겨진 어사시(御使詩)와 옥중가(獄中歌)를 읽어보았다.
 
 돌나물
ⓒ 이완우
 
높고 멀어야만 하늘인가, 낮고 가까운 하늘도 있다 

돌나물(돋나물)은 잎이 연꽃잎처럼 생겨 석련화(石蓮花)라고도 한다. 건조한 모래밭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풍화된 바위 표면에도 뿌리를 내려 생기 있는 푸른 잎이 유지한다.

돌나물은 어린잎을 날로 살짝 무쳐서 요리하면 산뜻한 맛의 풍미가 있고 칼슘이 우유보다 2배나 많다니 영양 식품이다. 초고추장에 버무리는 비빔밥에도 좋고, 시원한 물김치로도 선호된다.

나비가 야생화에 날아와 앉는다. 나비는 알에서 부화하여 애벌레가 되고 자라서 번데기로 용화하여 성충으로 우화했다. 나비의 한살이는 인간에게 설레는 감동을 준다. 나비의 번데기도 야생화의 꽃봉오리처럼 꿈을 꾸는 여의주로 충분하다.

교룡산은 주위에 이어지는 산이 없어 나란한 두 봉우리가 우뚝 섰는데 곧 피어날 듯 꽃봉오리 두 개로 보이는 형상이다. 여의주를 꿈꾸는 교룡이 머물고 있다는 교룡산 둘레길을 걸으니, 야생화의 꽃봉오리마다 꽃으로 피어나 하늘을 여는 여의주의 꿈이 보인다.
 
 교룡산 둘레길
ⓒ 이완우
 
높은 공간만 하늘은 아니다. 꽃잎의 펼침도 나비의 날갯짓도, 낮고 가까운 하늘을 열고 있다. 교룡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여의주는 전설의 고귀한 용의 전유물이 아니고, 꿈꾸고 능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면 여의주가 가까운 낮은 곳에 있음을 찾아보고 싶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