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물러지고 청력·치아까지 망가지는 '가족성 저인산혈증'
◇인 들어오는 족족 나가는 병… 성장 지연에 통증도
가족성 저인산혈증은 ‘밑 빠진 독’이 되는 질환이다. 이 병이 있으면 뼈의 주요 구성성분인 인이 늘 부족하다. 혈액 속 인산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섬유아세포 성장인자(FGF23)가 지나치게 많아져 콩팥에서 인산염이 재흡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인이 소화기에서 흡수되려면 활성형 비타민D가 필요한데, 저인산혈증 환자들은 비타민D가 활성형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이에 인을 섭취하는 족족 소변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니, 혈액 속 인산염의 농도가 정상치보다 낮아진다.
‘가족성’이란 말이 붙는 건 유전 질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X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지만, 상염색체 열성 우성으로 유전되는 사례도 있다. X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저인산혈증을 가리켜 ‘XLH(X-Linked hypophosphatemia; X염색체 연관 저인산혈증)’이라 한다. 아버지가 XLH 환자면 딸에게 100% 유전되며, 어머니가 XLH 환자면 성별에 상관없이 자녀에게 50%의 확률로 유전된다.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지만 여성은 X염색체가 둘이라, 남성 XLH 환자는 이상이 발생한 X염색체만 보유한 반면 여성 XLH 환자는 이상이 없는 X염색체도 하나 보유하기 때문이다.
유전 질환이다 보니 환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질환과 함께한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 콩팥센터장 강희경 교수는 “아이가 걸음마를 뗄 무렵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에 데려오는 부모가 많다”며 “보통은 ‘키가 잘 안 크는 것 같다’ ‘아이의 다리가 너무 휘는 것 같다’는 증상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인이 부족하면 뼈가 제대로 무기질화되지 않아 물러진다. 이외에도 몸 곳곳에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이시훈 교수는 “어린 환자들은 ▲휜 다리 ▲성장 지연 외에도 ▲뼈·근육 통증 ▲두개골 유합 ▲치아 농양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성인 환자들은 ▲가성골절 ▲골관절염 ▲뼈·관절 통증 ▲청력문제 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강희경 교수는 “우리 몸의 에너지 단위인 ‘ATP’ 중 P가 인이라 인이 부족하면 기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족성 저인산혈증은 혈액 검사와 임상 증상만으로 90%는 진단할 수 있다. 강희경 교수는 “혈액 검사 결과 인의 수치가 너무 낮은데, 인이 낮을 만한 다른 이유가 없으면 저인산혈증을 의심할 수 있다”며 “임상 진단으로 거의 진단이 가능하나, 확진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합병증 걱정되지만 일단 '인산염' 투여
인이 부족하면 인을 투여하면 되지 않을까. 가족성 저인산혈증 환자들은 실제로 이렇게 치료받고 있다. 인산염이 바닥날 때마다 계속 투여해주는 것이다. 그 주기가 너무 빨라서 문제다. 하루에 4~6번이나 경구 알약을 복용해야 한다. 맛도 쓴 데다 복용한 후엔 가스가 잘 생겨 속이 불편할 수 있다. 인산염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인이 흡수되는 데 필요한 활성형 비타민D도 매일 하루 한 번 투여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떻게 될까.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만, 그렇다고 독 안에 물이 가득 차오르진 않는다. 들어온 만큼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저인산혈증 환자의 몸이 딱 이렇다. 이시훈 교수는 “경구 인산염과 활성형 비타민D를 투여하는 건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라 임시방편”이라며 “환자의 증상이 어느 정도 개선되긴 하나 체내 인산염 수치가 정상화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구 인산염과 비타민D를 계속 투여받았음에도 ▲뼈·관절 통증 ▲성장 지연 ▲다리 휨 등의 증상이 지속됐다는 소아 환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소아 환자의 2/3은 정형외과적 수술을 통해 하지 기형을 교정한다.
인을 계속 투여하다 보면 합병증도 생긴다. 우리 몸은 칼슘과 인의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띤다. 저인산혈증 환자의 몸에 인을 투여해 인산염 수치가 한때 높아지면, 인산염이 몸속 칼슘과 결합하며 칼슘 수치가 한때 떨어진다. 그럼 칼슘 부족분을 확보하기 위해 부갑상선호르몬이 활성화되며 뼈에 있던 칼슘을 끌어낸다. 뼈가 약해지는 것이다. 강희경 교수는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몸엔 칼슘이 한때 많아져, 잉여 칼슘이 소변을 통해 빠져나가게 된다"며 "그럼 콩팥에 칼슘이 계속 쌓여 석회화된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많고 임시방편일 뿐인 치료라도 조기에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뼈가 제대로 자랄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소아 환자라면 치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치과 검진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도 필요하다. XLH 환자는 근육이 잘 약해지는 편이다. 무산소운동은 골격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유산소 운동이 더 적합하다.
가족성 저인산혈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FGF23의 이상에 있다. 다행히 원인을 바로잡아 병을 치료하는 약이 나왔다. 바로 쿄와기린의 '크리스비타(성분명 부로수맙)'다. 크리스비타는 FGF23이 과다 분비되는 것을 막는다. 성인은 4주에 한 번, 소아는 2주에 한 번만 피하 주사로 투여하면 된다. 밑 빠진 독의 구멍을 막는 약인 만큼 체내 인산 농도가 정상화되는데다, 기존 치료법보다 투여 주기가 길어 덜 번거롭다. 지난 5월부터 만 1세~ 만12세 환자를 대상으로 크리스비타의 보험 급여가 시작됐다.
문제는 적용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단 것이다.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조차 몇몇 조항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의 크리스비타 급여 기준은 이 약의 3상 임상시험에서 약 투여 대상을 가려낼 때 사용했던 조건을 그대로 가져왔다. 제외대상에 '12개월 이내 성장 호르몬 치료를 받은 경우'가 포함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조항에 따라, 현재 저인산혈증 탓에 키 성장이 더뎌,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환자에겐 급여 적용이 안 된다.
그러나 약의 효과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임상시험과,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임상현장은 엄연히 다르다. 임상시험에선 크리스비타 투여 집단이 비 투여집단보다 키가 더 잘 자랐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약의 유효성을 보여야 의약품 승인을 받을 수 있어서다.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적 있는 사람에게 크리스비타를 투여하면, 성장호르몬과 크리스비타 중 무엇 덕분에 키가 자란 건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이에 크리스비타의 효과만을 '온전히' 관찰하기 위해 12개월 내로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적 있는 사람이 투여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임상 현장은 '증명'이 아닌 '최대한의 치료'가 목표다. 성장호르몬과 크리스비타를 둘 다 쓰는 게 좋은데도, 둘 중 하나만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 교수와 강 교수는 모두 "성장호르몬이 부족해 반드시 성장호르몬 투여가 필요한 환자에게 적용하기엔 가혹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RSS 점수, 유전자검사 결과, 나이 제한 느슨해져야
투여대상과 시작기준, 방사선학적 검사 결과에 따른 급여 적용 문제도 있다. 이 기준들로 인해 인산염을 투여하는 기존 치료를 6개월 이상 받았는데도 '구루병 중증도 점수(Rickets Severity Score, RSS)'가 2점 이상이어야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구루병은 어린이에게 있는 골연화증으로, 뼈의 변형을 일으키는 발단이 된다. 뼈가 제대로 석회화되지 않아 무를수록 RSS 점수가 높게 나온다. 언뜻 보면 RSS 점수로 저인산혈증 환자의 증상 심각도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강희경 교수는 "인산염 투여 치료를 지속하면 골연화증이 개선돼 RSS 점수가 낮아지지만, 뼈의 변형까진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에 키가 작고, 하지 변형이 심각한데도 골연화증이 개선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크리스비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환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시훈 교수 역시 "RSS 점수가 낮아도 하지 기형이 매우 심한 환자들은 크리스비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X염색체 연관 변이형(XLH)'이 유전자검사로 확인된 소아 환자에게만 급여가 적용되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다. 유전자 검사가 100% 명확한 것은 아니어서다. XLH 환자여도 유전자 검사에서 X염색체 연관 변이형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시훈 교수는 "X염색체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지 않은 환자라도 가족력이 있다면 급여 적용을 해 주는 게 좋으리라 생각한다"며 "또 한국은 소아 환자에게만 급여가 적용되지만, 미국·유럽·일본·호주에선 성인 환자에게도 크리스비타가 급여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여 기준만 빼고 보면, 크리스비타는 환자에게나 의료진에게나 꽤 흡족한 치료제다. 2~4주에 한 번씩만 피하 주사로 맞으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치료제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한 가지 약을 오래 쓰다 보면 내성이 생기는 환자들이 발생해서다. 강희경 교수는 "크리스비타 성분에 항체가 생겨 약효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환자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삶의 질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크리스비타가 의료진이 투여해야만 하는 바이알 형태가 아닌, 자가투여 주사 형태로 출시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당뇨병 환자들의 인슐린 주사가 대표적인 자가투여 주사다. 이시훈 교수는 "주사기 안에 약물이 이미 충전된 '프리필드시린지(Prefilled Syringe)’ 형태로 나오면 환자들이 약을 더 편리하게 투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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