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넘어 공병판매까지'… 문화가 된 위스키
편의점·마트·면세·호텔
'위스키+문화' 판매 확대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GS더관악점.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줄 앞쪽 대기자들은 이미 이틀 전부터 인근 건물 공실에 캠핑의자를 두고 대기를 시작한 이들이다. 불볕더위와 폭우를 견디며 자리를 지킨 이들이 손에 넣고자 했던 건 GS25가 이날 물량을 푼 김창수 위스키 4호 캐스크(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나무통) 상품. 1인당 1병만 살 수 있도록 판매를 제한했음에도 '위스키 오픈런' 열기는 여전했다. 오픈 당일 방문했다가 GS더관악점에 할당된 48병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은 이날 함께 출시된 김창수 하이볼을 봉투 가득 구매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같은 시각 온라인 판매 역시 와인25플러스 접속자 수가 순간적으로 폭발, 4분 만에 준비 수량이 모두 동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위스키 열풍이 식을 줄 모르면서 다양한 사회 현상을 낳고, 급기야 유통·관광 트렌드도 바꾸고 있다. 위스키를 단순히 맥주·소주와 같은 술 그 자체로 소비할 뿐만 아니라 이를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와 그 상황을 구매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에 한정판, 희귀 위스키에 대한 경험에 가치가 생기고, 수요가 많으니 돈이 되면서 리셀러들도 위스키 소비 시장에 합류했다. '마셔보고 싶은 마음'과 '갖고 싶은 마음'이 만나 이틀을 기다리는 '오픈런'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위스키 신드롬은 위스키는 공병 중고거래로까지 이어졌다. 위스키 트렌드에 편승, 공병을 인테리어에 활용하거나, 병이라도 갖자는 심리가 작용했다. 당근마켓·중고나라 등 주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구하기 힘든 정도, 청결 상태 등에 따라 최대 5만~6만원에 거래가 이뤄지곤 한다. '조니워커 킹 조지 스페셜 에디션', '발렌타인 위스키 30년산'과 같은 위스키는 공병과 케이스 세트 시세가 2만5000~5만원 정도에 형성됐다.
위스키 열풍은 주류업계뿐 아니라 유통·관광업계까지 '하반기 키워드'가 됐다. 관세청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위스키류 수입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78.2% 급증한 8443t에 달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있는 2000년 이후 역대 1분기 기준 최고치다. 위스키 수입량은 편의점을 비롯해 마트 등의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전날 김창수 위스키 오픈런 행사를 진행한 편의점 GS25는 올해 상반기 위스키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9% 늘었다. 앞서 지난 5월 '위스키 런' 행사를 진행한 세븐일레븐은 매출이 2년 전과 비교해 250% 증가했다. 대형마트도 상황은 비슷하다. 홈플러스도 위스키 매출이 최근 2년 사이 120% 신장했다. CU 관계자는 "CU에서 운영하는 주류 1500여종 가운데 위스키가 절반까지 치고 올라왔다"고 했다.
위스키를 활용한 마케팅 전쟁도 열기를 더하고 있다. 하반기 주류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데다 인천국제공항 새 단장에 나선 면세점업계는 일제히 구하기 힘든 위스키를 앞세워 공격적인 모객을 시작했다. 호텔에서도 위스키 클래스를 열어 시음을 넘어 취향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MZ세대를 주축으로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에 착안, '오직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기억'을 더한 위스키 프로모션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위스키 열풍이 '희소성'을 찾는 젊은 세대 문화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한정판 같은 경우 아주 소수 사람만 손에 넣을 수 있어 돈이 있다고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며 "남들과 비슷한 것을 원하기보단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등 희소성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노출 등으로 생긴 군중심리 효과도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미디어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며 "위스키 유행이 전국적으로 일자 젊은 층 사이에서는 '나도 한 번 해볼까'란 심리가 발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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