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제와 술탄과 한국의 정치 권력 [최준선의 Zoom-In]
혁신경제 좌초시킨 타다 금지법…거대 기득권과 정치권의 야합
중국 명나라의 환관이자 무장(武將)인 정화(鄭和·1371~1433)는 1405년 영락제의 명을 받아 2만7800명의 선원과 62척의 보선(宝船), 190척의 소형 선박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이끌고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딘 이후 20여 년 동안 동남아시아, 인도양, 아라비아 반도, 중동, 아프리카 각국을 탐험했다.
무려 87년 후인 1492년 콜럼버스가 겨우 3~5척의 배에 백여 명의 선원으로 에스파냐를 떠나 인도로 향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규모였다. 그러나 영락제 이후 즉위한 홍희제가 대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를 금지하고 해상 교통과 무역을 제한하는 해금정책(海禁政策)을 펼치면서 정화의 원정은 중단됐다. 해금정책은 100년도 더 지난 1567년에 가서 폐지됐다.
홍희제의 해금정책은 표면적으로 왜구나 해적의 침입을 방지하고 밀무역을 단속한다는 미명하에 시행되었으나, 그 내면에는 관료들의 알력 다툼이라는 정치적 이유가 내재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당시 수도인 베이징을 기반으로 세력을 쥐고 있던 문인 관료들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성장한 상인 집단과 그들의 우호세력이었던 환관 집단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반(反)환관’ 문인 세력은 신문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환관인 정화의 원정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원정으로 얻는 경제적 실익이 적고 오히려 원정단 모집으로 농업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홍희제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조선소가 폐쇄되고 선박이 부숴졌으며, 기득권과의 세력 싸움에서 밀려난 정화는 원정을 지속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사후엔 그의 이전 원정 기록까지 모두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콜럼버스보다도 먼저, 중화제국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대원정’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시간 동안 여러 대륙을 탐험하는 혁신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기록이 터무니없이 적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명나라에 이은 청나라도 1655년 해금령을 시행했으며, 해외무역을 중시하지 않았다. 1800년대 중반 중국은 대영제국과의 아편전쟁에서 무참하게 깨졌다.
명나라 홍희제의 해금정책…정치적 이유로 역사의 흐름 외면
정화의 대원정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437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활용한 활판인쇄술을 발명했다. 조폐국의 금화 제조법을 인쇄술에 응용해 발명한 금속활자는 활자의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해 도서 제작 비용과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였다. 15세기 후반 유럽은 1300만부 이상의 책을 찍었다. 16세기에는 2억부 이상, 17세기에는 5억부 이상을, 18세기에는 약 10억부를 찍었다. 유럽인의 문해력이 급격히 상승했음은 당연한 결과다. 1800년 경 네델란드의 문해율은 68 퍼센트, 영국과 벨기에는 50 퍼센트에 이르렀다.
활판인쇄기는 도서뿐 아니라 행정 서류 등을 빠르게 찍어내며 상공업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되었다. 재고품의 값을 매기고 환전하는 법, 매출 이익과 지급 이자를 계산하는 법, 복식부기법 등을 가르치기 위한 상업수학 교과서의 대량 인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책은 도덕적·문화적 가치와 성년기의 직업 생활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매체가 됐다.
빠른 속도로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 보급된 활판인쇄기는 그러나 오스만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1485년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아랍어 문자의 활판인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신성시하는 쿠란을 ‘감히’ 인쇄하는 행위는 신성모독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구텐베르크의 초기 인쇄본 중 하나가 ‘구텐베르크 성서’이며, 당시 독일 교회의 ‘면죄부’가 인쇄술로 대량생산된 것과는 정 반대다. 술탄들은 1727년에야 비로소 인쇄술을 받아들였다. 유럽보다 앞섰던 오스만 문명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럽에 뒤처지기 시작했으며, 문해율은 2~3 퍼센트에 불과했다.
술탄들에게도 숨겨진 속내가 있었다. 인쇄술이 도입되고 쿠란이나 일반 도서가 널리 민간에 보급될 경우, 종교적 지혜를 전파하는 지식의 독점적 지위와 영향력을 잃게 될까 염려한 것이다. 끝내 프랑스가 시민 혁명을, 영국이 산업 혁명을 이룰 동안 오스만제국은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몰락하고 말았다.
혁신경제 좌초시킨 타다 금지법…거대 기득권과 정치권의 야합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는 2018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운수사업법) 을 근거로 운전자가 있는 11인승 승합차를 이용자에게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표방한 ‘타다’는 기존 택시업계에 불만을 느끼던 젊은 이용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는 누명을 쓰고 택시업계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하고 말았다. ‘타다’가 운수사업법 주관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아 운영 중이었음에도 택시업계의 반발과 대규모 집회가 계속되자, 택시업계를 의식한 국회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4년의 법적 공방 끝에 ‘타다’와 경영진은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2021년부터 시행된 ‘타다 금지법’으로 인해 기존의 서비스는 제공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경영난에 봉착한 ‘타다’는 최근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혁신을 극렬히 저항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득권을 가진 그룹들과, 그 그룹들이 가진 표를 구걸하고자 하는 정치권의 야합이 신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시대의 흐름마저 역행시킨다. 대법원 판결 이후 ‘타다 금지법’을 지금이라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제2의 타다’가 될 위기에 처한 부동산 중개 서비스 플랫폼 ‘직방’,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 세무사 중개 어플 ‘삼쩜삼’, 비대면 진료 어플 ‘닥터나우’ 등의 운명도 주목받고 있다. ‘타다’의 이재웅 전 대표는 “혁신은 죄가 없다”며, “법을 바꾸어 혁신을 막고 기득권의 이익을 지켜내는 일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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