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놀거리 없었는데, 재밌어요"…곶감의 고장 싹 바꾼 이들

최승표 2023. 7. 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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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봉강리 '상주환경농업학교' 한편에는 피자를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 '살롱드봉강'이 있다. 국산 밀로 반죽을 하고 지역 유기농 식재료를 활용한다. 여느 프랜차이즈 피자와 달리 신선한 맛이 돋보인다.

요즘 농촌은 심심하지 않다. 촌캉스(촌+바캉스)라는 신조어가 통할 정도로 농촌 이미지가 확 바뀌었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쉬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이색 체험거리도 많이 생겼다. 특히 젊은이가 활기를 불어넣은 지역이 많다. 2021, 2022년 전국 지자체 중 귀농인 수 연속 2위(1위는 경북 의성)를 기록한 경북 상주가 대표적이다. 2021년 상주 귀농인의 49%가 40대 이하였다. 상주에서는 블루베리를 따 케이크를 만들고, 지역 식재료로 피자를 만들어 먹는다. 모두 청년 농부가 운영하는 체험 명소다. ‘곶감의 고장’으로만 알고 있던 상주를 색다르게 즐기는 법을 소개한다.


케이크 만들고, 동물 먹이 주기까지


블루베리는 더 타임즈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다. 피로 해소, 노화 예방 같은 효과가 탁월하고 맛도 뛰어나 국내 재배 농가가 급증하고 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해 블루베리 따기 체험도 유행이다. 상주시 체험농장 가운데 방문객이 가장 많은 ‘스테이지 파머스 룸’이 대표적이다.
2021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상주 스테이지 파머스 룸. 7월 중순까지는 밭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실내에서 케이크를 만든다.
스테이지 파머스 룸은 이동우(29) 대표를 비롯한 청년 농부 5명이 2019년 창업했다. 비닐하우스로 체험장을 짓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이듬해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사업을 접었으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경북농업기술원으로부터 청년농업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2억원을 들여 체험 공간을 꾸몄고 프로그램도 강화했다. 2021년 방역 지침이 엄격했는데도 체험객이 줄을 이었다. 2021년 3274명이 방문해 매출 8000만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3~6월 넉 달 동안 2600여 명이 방문해 매출 6200만원을 넘겼다.
직접 수확한 블루베리로 케이크를 만든 어린이의 모습.
지난달 24일 약 2시간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여해봤다. 체험객 15명은 블루베리 3종류(뉴하노버·에코타·레가시)를 맛보고 열매를 땄다. 수확한 블루베리로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이어 동물 우리로 이동해 말·양·토끼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했다. 신난 아이들이 동물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체험객 송채영(26)씨는 “고급 과일을 원 없이 따 먹어서 행복했다”며 “상주는 여름에 놀 거리가 많지 않은데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스테이지 파머스 룸에서는 동물 먹이주기 체험도 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동우 대표는 1만㎡ 면적의 밭에서 연 2톤의 블루베리를 수확한다. 블루베리는 맛있지만, 단점이 있다. 수확 시기가 짧다.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다. 그러나 체험은 계속된다. 7~8월은 바질 잎을 따서 피자를 만들고 이후에는 샤인머스켓 포도, 고구마를 수확해 간식 만들기 체험을 한다. 이 대표는 “지역 농가와 상생하기 위해 연중 체험을 이어간다”며 “체험객에게 재미뿐 아니라 다양한 농작물 이야기와 농사의 의미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밀, 지역 채소로 만드는 피자


우리가 먹는 피자는 크게 세 종류다. 이탈리아식, 미국식 그리고 불고기·고구마를 얹어 먹는 한국식. 그리고 ‘상주식 피자’도 있다. 프랜차이즈 피자집도 드문 상주에 한국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피자를 만들고 체험도 하는 피자집이 있다.
황진영씨가 피자를 만드는 모습. 체험객은 지역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반죽 위에 직접 토핑을 얹는다.
상주 출신인 황진영씨(43)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서울에서 미술강사로 일하며 밴드 활동도 했다. 남들은 멋있다고 했지만 도시살이는 팍팍했다. 남편 강형찬(48)씨와 귀농을 결심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자립하는 소농학교’에서 유기농과 생태적 삶을 배웠다. 자급을 위해 제빵도 배웠다. 2014년 상주에 터를 잡고 벼농사를 시작했다. 황씨는 “지역에서 제빵 수업을 했는데 피자를 만들어 대접했더니 모두 깜짝 놀랐다”며 “당장 피자집을 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2018년 상주환경농업학교(구 배영초등학교) 한편에 피자 체험 공간 ‘살롱드봉강’을 열었다. 2020년에는 시내에 작업실을 열었고, 2021년 환경농업단체연합회로부터 ‘친환경식당’ 인증을 받았다.
살롱드봉강을 운영하는 황진영, 강형찬씨 부부. 목공에 재주가 있는 강씨가 낡은 폐교를 근사한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살롱드봉강 피자는 우리 밀로 반죽한다. 토마토·감자·버섯은 유기농 상주산을 쓰고, 햄은 흑돼지 무항생제 살라미를 사용한다. 올리브와 치즈만 유럽산이다. 24일 피자 체험 때는 이웃 농가의 마늘종·완두콩과 학교 마당에서 키운 딜·바질 같은 허브를 따 피자에 얹었다. 서구에서도 유행하는 ‘팜 투 테이블’, ‘제로 마일리지’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살롱드봉강 피자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6월에 만든 피자에는 마늘종, 완두콩, 딜, 바질 등이 올라갔다. 한여름은 토마토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어서 피자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직접 토핑을 얹은 뒤 262도 오븐에서 15분 구운 피자를 먹어봤다. 채소 하나하나의 맛이 또렷하면서도 겉돌지 않았다. 체험객 정유미(43)씨는 “아이가 평소 완두콩과 버섯을 안 먹는데 피자는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살롱드봉강은 제철 피자를 표방한다. 계절마다 가장 맛있는 채소를 활용해서다. 봄에는 아스파라거스, 가을에는 단호박을 쓰는 식이다. 황씨의 설명이다.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는 토마토가 가장 맛있을 때예요. 피자의 핵심 재료가 토마토이니 여름이야말로 피자의 제철이라 할 수 있죠.”


건강까지 챙기는 표고 사골 칼국수


상주하면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여느 지자체와 달리 상주시의 관광 홈페이지에는 추천 식당만 있을 뿐, 지역 대표 음식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다. 상주 사람도 음식 이야기를 하면 머쓱해 한다. 그런 와중에 30대 청년 농부가 직접 재배한 표고버섯으로 색다른 칼국수를 만들어 이목을 끌고 있다.
김윤영 청년농부의 표고칼국수 대표(가운데)는 2018년 고향 상주로 귀농했다. 아버지 김진규씨, 어머니 박정희씨와 함께 농사도 짓고, 2021년에 연 식당에서 표고칼국수를 만들어 판다.
김윤영(33) ‘청년농부의 표고칼국수’ 대표는 서울과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8년 고향 상주로 돌아왔다. 야근이 잦은 영상 편집 일을 하다가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와서였다. 인스턴트 음식과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운 게 문제였다.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고 부모의 표고 농사를 도왔다. 농사도 짓고 인터넷을 이용해 영업망도 넓혔다. 이것만으론 아쉬웠다. 정성 들여 재배한 표고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어머니 박정희(65)씨와 함께 음식을 공부했다. 상주시 향토음식연구회와 농산물가공발전연구회에서 음식을 배우다가 표고칼국수를 개발했다. 한우 사골로 국물을 내고 표고 분말을 넣어 면발을 뽑는 방식이었다. 김 대표는 “맛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칼국숫집을 탐방하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말했다.
청년농부의 표고칼국수는 끓이면서 먹는다. 표고 분말을 넣은 면발과 한우 사골 우린 국물이 잘 어울린다.
모녀는 2021년 12월 낙동면 표고농장 옆에 칼국숫집을 차렸다. ‘청년농부의 표고칼국수’라는 간판을 걸었고, 복고 감성을 살려 식당을 꾸몄다. 농사가 우선이라 점심에만 식당을 열었다. 그런데도 주민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관광객의 발걸음도 꾸준히 늘었다.
상주시 낙동면에 자리한 청년농부의 표고칼국수는 방치돼 있던 식당 공간을 재활용해 단정하게 꾸몄다.
표고칼국수는 전골식이다. 1인분을 주문해도 끓이면서 먹도록 해준다. 표고와 사골국물의 맛이 우러나 끓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겉절이 김치와 표고장아찌가 국수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김 대표는 “칼국수는 서민 음식이지만 보양식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며 “맛있게 먹었다며 웃는 손님을 보면 내가 더 치유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여행정보

박경민 기자

스테이지 파머스 룸은 7월 중순까지 토·일요일 블루베리 체험을 진행한다. 네이버에서 예약할 수 있다. 1인 3만원. 8월부터는 바질을 수확해 피자 만들기 체험을 한다. 살롱드봉강 피자 체험은 상주환경농업학교에서 월 1회 진행한다. 체험비는 피자 한 개 5만원(2인 기준). 매주 금·토요일 남성동 피자 작업실에서는 피자를 하루 10개씩 포장 판매한다. 피자 체험과 구매 예약은 살롱드봉강 인스타그램에서 받는다. 청년농부의 표고칼국수는 화~일요일 점심에만 영업한다. 칼국수 9000원. 네이버 ‘백두 표고농장’ 페이지에서 버섯도 판다.

상주=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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