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되겄소?""이낙연 쪼까 서운"…野 텃밭, 광주 심상찮다 [르포]
더불어민주당의 ‘텃밭’ 광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7~29일 정례조사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51%였다. 지난해 대선 전까지는 7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했었다. 이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직후인 3월 첫째 주 조사에서 65%→51%로 급락한 뒤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5월 넷째 주 조사에선 41%까지 하락했다.
민주당이 고전하는 이유를 직접 듣기 위해 지난 4일 광주를 찾았다. 광주 송정역에서 가장 먼저 만난 택시기사 60대 이모씨는 민주당에 대해 “입에서 욕 나와블러고 그러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친명계네 이낙연계네 하면서 줄 대기나 하고 앉아있다”면서 “구태 정치인은 싹 물러나야 헌다”고 일갈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전국 최고 투표율(81.5%)을 기록한 광주였지만, 바닥 민심에선 정치 혐오감이 적지 않았다. 광주 동구 금남로 1가에서 만난 박모(82)씨는 “막말로 정치하는 놈들은 고놈이 고놈”이라며 “정치 얘기는 하지도 마쇼”라고 고개를 저었다. 호남 최대규모 수산물시장인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60대 상인도 정치 얘기보다 생업 걱정이 앞섰다. 그는 “정치권에서 후쿠시마를 자꾸 들먹거리니까 점포들도 문을 닫고 시장에 사람이 없어라”라며 한숨을 쉬었다.
민주당 내부의 친명-비명 갈등은 광주에서도 옮겨붙는 모양새였다. 재래시장 상인 박모(62)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해 지난 2일 5·18 묘역을 방문한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불만부터 토로했다. 그는 “이낙연이 내가 봤을 땐 쪼까 서운한 점이 있어”라면서 “대선 끝나고 나 몰라라 홀랑 떠나지 말고 어느 정도 지켜줄 것은 지켜주고 갔으면 되지 않았나.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에 휘말려가고 있는데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재”라고 말했다. 서구 양동복개상가 거리에서 만난 50대 주부 최모씨도 “이낙연씨가 대선에서 이재명씨를 충분히 안 도왔다”라며 “이재명 대표가 스캔들이 많지만, 그 중에선 만들어진 것도 있지 않겄소”고 반문했다.
반대로 “과연 이재명으로 되겠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이모(56)씨는 “이재명이 본인 사법리스크를 방어하다 보니 정치적 여유가 없어졌다”며 “과거‘적폐청산 억강부약’을 외치던 리더십이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남대 1학년생인 최모(20)씨도 “이 대표는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 다시 (대선에 나와도) 떨어질 확률이 있지 않겠냐”며 “아예 판을 새로 짜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이 대표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공통된 목소리는 따로 있었다. 바로 현역 광주 지역구 의원에 대한 불만이었다. 양동시장 건어물상인회장 이명근(56)씨는 “광주 출신 의원이 당에서 존재감이 없어라. 조금 물무르단께”라며 “국민의힘이 시장 가서 (수조) 물 마시고 하는 거 제정신으로 하는 거 아닌디 죽기 살기로 물고 뜯고 한 사람이 누가 있소”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23~24일 광주MBC·뉴시스광주전남취재본부·무등일보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 내년 총선에서 ‘새로운 인물을 뽑겠다’는 응답은 60.3%였던 데 반해 ‘현 지역구 의원을 뽑겠다’는 응답은 고작 12.3%였다. 3년 전 광주 8개 지역구를 모두 민주당에 몰아줬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는 인물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았다.
민주당 지지율이 빠진 틈을 이른바 제3지대가 최근 파고들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당 준비위원회는 4일 광주광역시 대회의실에서 첫 현장간담회를 갖고 “국민의힘도 썩었고, 민주당은 무능하다”며 “새로운 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신당 창당에 나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지역구도 광주 서을이다.
다만 제3지대를 향한 기대감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50대 재래시장 상인은 “그 사람들 지금까지 정치 생활한 것을 보면 모르겄소”며 “공천 못 받으니까 창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택시기사 강모씨도 “최고로 밀어준 게 안철수 때인데, 속된 말로 ‘사꾸라’였다”며 “요리 갔다 저리 갔다해서 지금은 다 싫어허요”고 말했다. 7년 전 호남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데 대한 분노가 제3지대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는 기류였다.
지역에선 내년 총선 투표율이 관건이란 말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 지역 투표율(37.7%)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았다. 광주지역 정가 관계자는 “민주당이 여당 때도 괄목할만한 성과가 없었고, 야당 시절엔 더욱 무기력하니 지역민이 투표를 거부하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했다”며 “투표율이 낮아지면 국민의힘 득표율이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지난 대선에서 내세웠던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같은 개발 공약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60대 개인택시 기사 이모씨는 “내가 하남 스타필드도 가봤당께”라며 “광주가 몇 대 광역시인데 그 정도 시설 하나는 있어야 않겄소”라고 말했다.
광주 민심에 대한 우려는 민주당 지도부 회의에서도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선 호남 출신 최락도 전국노인위원장이 광주 지역의 ‘인물 교체론’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호남에서 ‘총선 앞두고 요동치는 호남’이라는 기사가 나오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며 “중앙당에서 지역위원회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감사도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광주=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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