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숨고 '학파라치' 뜬다…대치동 한쪽선 "차라리 잘됐다"

장윤서 2023. 7.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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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건물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장윤서 기자

“학원들이 ‘타깃’이 될까 봐 현수막과 창문에 붙인 스티커까지 떼고 있어요.”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한 수학강사 A씨는 “정부의 단속이 시작되고 며칠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위축됐다”며 학원가 상황을 전했다. 그가 말한 현수막과 스티커는 허위·과장이 포함된 내용이다. 정부가 사교육 부조리 단속을 시작한 지 9일째인 이날 취재진이 대치·도곡·한티역 인근 학원 50여곳을 둘러봤더니 실제로 ‘킬러’ 나 ‘OO대 OO명 합격’ 등의 광고 문구를 찾기 힘들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범람’하던 광고 문구다. A씨는 “원래 학원가에서 ‘○○명 합격했다’고 광고하는 건 다 틀린 숫자다. 상담만 받은 학생까지도 합격 여부를 알아내 이름을 올리곤 했다”고 말했다.


‘킬러’ 사라지고 입학설명회 취소


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에 수강생들의 합격 광고가 걸려 있다. 장윤서 기자
같은 날 정부의 단속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 등 교육부 관계자와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강남의 한 대형학원을 찾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합동점검을 시작한 뒤 19개 학원에서 시설 임의 변경, 교재 끼워팔기 등의 부조리가 적발됐다. 먼저 접수를 시작한 온라인 신고센터에선 허위·과장 광고 신고가 37건 접수되기도 했다.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도 대치동 학원가는 1학기 기말고사 막바지 ‘직보(직전보충)’로 분주했다. 일부 학원이 건물 밖에 내건 현수막은 ‘쾌적한 시설’이나 ‘체계적 커리큘럼’ 등의 내용이었다. 한 공인중개사는 기자의 질문에 “어쩐지 최근 광고가 잘 안 보인다 했다. (허위·과장광고) 집중신고 기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일부 학원 건물 안에 수강생들의 대학 합격증이나 학교 내신 성적표가 걸려있기도 했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과거에도 학원들끼리 댓글 알바를 써 서로를 비방하거나 허위 광고를 고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말 조심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한 대형학원은 매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열어온 입학설명회를 지난달 취소했다. 인근의 한 자영업자는 “이맘때쯤 원래 학부모들이 학원마다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요즘엔 잘 안 보인다”라고 말했다.

대형학원에 소속된 일부 강사들의 교재와 강의에서도 ‘킬러’라는 표현은 다른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이들이 매년 공개하던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최상위권 대학 합격자 수도 비공개로 바뀌거나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합격자의 실명을 공개한 후기나 인터뷰만 일부 남아있었다.


중소학원 “대형학원이 물 흐려…차라리 잘됐다”


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정상원 인턴기자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학원들은 정부의 허위·과장광고 단속 강화를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이날 만난 학원장들은 “대치동 대형학원이 사교육 시장을 왜곡했다는 데 동의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치동에서 50명 규모의 단과·수능 학원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우리는 애초에 대형학원들처럼 ‘숫자 광고’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대형학원에선 한반에 많게는 100여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는데, 합격생이나 상위권 학생 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치동의 대형 입시학원들은 수능강좌 외에도 학교 내신 대비 강좌를 과목별로 많게는 15개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학원장 김씨는 “한 대형학원이 ‘킬러 문항 모의고사’로 장사를 하면서 대치동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학부모들이 학교 내신에서도 킬러형 문제 대비를 요구하고, 대형학원들이 내신 사교육 수요까지 흡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일부 대형학원들이 문제를 만들어 팔면 중소형 학원 강사들이 문제를 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이 신고를 많이 했고 중소학원에선 ‘속 시원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정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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