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택 (8) 소외된 지역에 ‘안양의원’ 개원… 영세민·노숙인은 무료로

우성규 2023. 7. 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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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1월 나는 아내 황영희 박사와 함께 안양의원을 개원했다.

나는 부산대 의대 최초로 미국 의사자격(ECFMG) 시험에 합격했지만, 유학의 꿈을 미루고 먼저 군 복무를 택했다.

나중 일이지만 큰아들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군 복무 중에 아내 이름으로 먼저 개원한 안양의원 간판은 아내가 직접 써서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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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상 유학 미루고 군 입대
신혼 방 보증금 빼 의원 전세금 마련
먼저 아내 이름으로 의원 개원하고
사랑과 헌신의 진료로 환자 구름떼
이상택(앞줄 오른쪽 두 번째) 박사가 육군 20사단 61연대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하던 1966년 부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67년 11월 나는 아내 황영희 박사와 함께 안양의원을 개원했다. 나는 부산대 의대 최초로 미국 의사자격(ECFMG) 시험에 합격했지만, 유학의 꿈을 미루고 먼저 군 복무를 택했다. 유학을 다녀온 뒤 군 복무를 해도 되는 특혜가 주어졌지만 가정 형편상 먼저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런데 전역을 앞두고 일어난 김신조 사건으로 1년을 더 연장 복무하게 됐다.

제대를 앞둔 군인에게는 하루가 1년 같은데 갑자기 1년이나 더 복무를 연장한다는 명령은 보통 충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군의 환우들을 더 돌보며 군의관으로서 충실히 복무하자고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군의관 사역은 4년 4개월 만인 1970년 마감하게 된다.

나중 일이지만 큰아들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작은아들 역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장교로 전역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 임관식 때 모두 나와 아내가 달려가 아들들의 어깨에 지휘 견장을 붙여줬다.

군 복무 중에 아내 이름으로 먼저 개원한 안양의원 간판은 아내가 직접 써서 달았다. 신혼 단칸방 보증금을 빼고 일부는 빌리기도 해서 의원이 들어설 공간의 전세금을 마련했다. 당시 안양엔 번듯한 병원이 없었다. 가난하고 척박했던 환경에서 안양뿐만 아니라 과천 시흥 안산 군포 의왕 그리고 수원에서도 환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 의사가 사랑과 헌신으로 환우들을 돌본다는 소문이 퍼져 그야말로 구름떼처럼 밀려들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우리 부부뿐이었기에 모든 진료를 두 사람이 다 해야 했다. 엑스레이를 찍어서 현상하고 환자를 검진하는 일부터 임상병리과 의사 역할과 간호사 교육, 병원 운영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영세민과 노숙인은 무료로 치료했다. 왕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원 일손이 극히 부족했기에 나는 주로 야간을 이용해 환자를 찾아갔다.

이웃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급보를 듣거나 한 생명이 막 태어난다는 소리를 듣고는 외면할 수 없었다. 야간 왕진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어두운 밤에 먼 길을 다녀오는 일이어서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월곶과 대부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생사를 넘나드는 산모와 환자들을 찾아갔다. 나는 안양 지역 사체 검안까지 전담하게 돼 검찰과 경찰로부터 신뢰와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됐다.

물론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환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오다 보니 첫째 아들은 병원에서 옮아온 간염을 앓게 되었고 둘째 아들 역시 폐렴을 앓았다. 둘째는 그 상태가 위급해 서울 소재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해야 했는데, 당시 안양에 구급차가 없어 지인의 지프로 밤늦게 이송해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다. 개원 초기 이런 시험을 통해 우리는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매사에 감사하게 됐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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