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상 옆 쇠못 밟으며… 400년 전 핏빛 희생을 되새기다
400년 전이었으면 최소 고문을 당했을 상황이었다. 한일연합선교회(WGN·이사장 정성진 목사)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단이 4일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스즈타로 감옥터에서 진행한 ‘후미에’ 체험 얘기다. 후미에는 일본의 무사정권 시대인 1600년대 초 에도 막부가 그리스도인을 색출하기 위해 고안한 제도다. 막부는 매년 정초가 되면 사람들을 모아 철판으로 된 예수상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예수상을 밟고 욕을 하거나 침을 뱉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라도 머뭇거리거나 밟지 못하는 사람은 체포돼 고문을 받았고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WGN은 후미에 체험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예수상 옆에 못이 촘촘히 막힌 쇠못판을 나란히 설치했다. 예수상을 밟지 않으려면 날카롭게 솟은 쇠못판을 밟아야 했다.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쇠못판 바로 옆에 놓인 예수상 위에는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속 대사가 적혀 있었다.
모두 주저하고 있을 때 정성진 목사가 먼저 발을 뗐다. 쇠못판이었다. 이후에는 하나둘 쇠못판을 건넜다. 간혹 신발을 벗고 쇠못판을 밟는 참가자도 있었다. 서우경 연세대 겸임교수는 “순교자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며 “예상은 했지만 상당히 아팠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당시 크리스천의 마음을 떠올리며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후미에 체험이 진행된 스즈타로 감옥터는 오무라시의 대표적인 순교 유적이다. 15세기 후반 오무라시는 기독교 영주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크게 융성했다. 17세기 초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기독교에 대한 금교령이 내려지고 선교사들이 대거 추방당했다. 신앙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혔다.
스즈타로 감옥에 수감된 인원은 총 131명. 약 20㎡(6평)의 대나무로 만든 새장 같은 감옥에 많게는 동시에 33명이 갇혀 지냈다.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못 움직이니 피가 안 통해 살이 썩고 구더기가 들끓는 환경 속에서 견뎌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수시로 끌려 나가서 혹독한 고문 끝에 죽음을 맞았고,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지만 거절했고 결국 참수당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스즈타로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던 스피노라 선교사는 고국 선교부에 보내는 편지에서 “눈도 비도 피할 수 없는 아주 혹독한 환경”이라며 “33명이 함께 있기에 누울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1657년에는 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을 접한 막부 요원들이 대대적인 그리스도인 색출 작전이 벌인다. 이 일로 603명의 신자가 체포된다. 심문 끝에 7명은 죽고 99명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방면됐다. 20명은 종신형을 받았고 나머지 406명에 대해서는 참수형이 내려지게 된다. 참수형이 결정된 406명 가운데 131명이 1658년 7월 27일 호쿠바루 처형장에서 순교했다. 4열로 줄을 지어 무릎을 꿇은 채 차례로 참수형을 당했다. 탐방단은 이곳에서 줄을 지어 무릎을 꿇었다. 임석순(한국중앙교회) 목사가 인도하는 가운데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131명의 순교자들 시신은 무덤으로 옮겨졌다. 몸 무덤과 머리 무덤이 각각 떨어져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순교자들의 몸과 머리를 따로 매장한 이유는 죽은 그리스도인이 부활할 것을 겁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두 무덤에는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WGN은 나가사키 순교자들의 역사를 가톨릭과 개신교 공통의 역사로 해석한다. 김동주(호서대 연합신학전문대학원장) 교수는 "일본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가톨릭이 전래된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라며 "당시는 루터조차도 비텐베르크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하고 있을 때"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엄격한 분리는 교회사적으로 보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부터"라며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일어난 일본 크리스천의 수난은 전체 기독교사의 수난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탐방 사흘째인 5일에는 한·일 문화 교류회가 진행됐다. 450여명의 한국 탐방단 외에 150여명의 현지인이 행사를 찾은 가운데 문화 공연과 특강이 진행됐다. 주중 대사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하중(온누리교회) 장로는 "순교자들은 비참하게 죽었지만 영원히 세상을 이긴 자가 됐다"며 "이번 탐방이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일본 땅을 밟으며 이 땅을 축복하고 만나는 모든 일본 사람을 축복하자"며 "일본이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일본 교회가 부흥하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가사키(일본)=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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