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리의 대화력은 안녕한가
지난달 코로나의 종식이 공식화되었다. 코로나는 디지털 전환을 가속했고, 혹독한 거리두기 경험은 일상의 수다나 사소한 모임이 서로가 같은 인간임을 확인하는 협력의 인프라임을 알게 하였다. 그런데 벌써 코로나의 기억은 아스라해졌고, 표면적으로 일상은 이전처럼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3년은 긴 시간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신체적·사회적·정서적 능력의 저하가 보인다고 한다. 20대 대상 조사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시간과 돈,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비대면 효율을 추구하는 성향이 뚜렷해졌음이 드러난다. 필자도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기가 전보다 힘들어졌음을 느꼈는데, 어떤 수업에서는 의견 내기를 지명받은 학생이 조용히 있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항의의 표현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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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디지털 기기에 기대는 대화
AI 기술까지 사람의 대화를 대체
대화력은 인간 협력의 기본 기술
디지털 리터러시 의미 고민해야
」
디지털화는 실시간 대화를 상당부분 문자의 교환으로 대체하였다. 오늘날 실시간 통화를 거북해하는 음성전화 기피 현상은 완연하다. 물론 문자는 편의성과 효율성이 뛰어나 편집할 수도 있고 불편한 메시지는 차단하거나 읽지 않은 척할 수도 있다. 부탁을 하거나 미안할 때 뻘쭘하거나 창피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니 심리적으로 안전하다.
그러나 대화는 꼭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정보 전달은 기계가 더 효율적이다. 사람은 각자 가진 마음의 틀을 통해 상대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우리는 함께하는 기술을 익힌다. 미묘한 긴장 속에 오해와 불확실성을 헤치고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는 과정은 스스로도 몰랐던 자아를 일깨우고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과 감각을 단련시킨다. 상대의 표정과 몸짓을 읽어 감정의 기후를 포착하고 악수나 토닥이는 몸의 접촉도 인간관계를 돈독히 한다.
인간관계를 쌓고 조율하는 능력은 태어나면서 주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때로는 기분이 상하거나 창피해지고 때로는 으쓱하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역량이 쌓인다. 그래서 기술로 대화를 대체할 경우, 서로를 읽는 감각과 나의 자아를 열어 드러내는 긴장을 견뎌내는 관계의 근력을 축소할 수 있다. 꼭 만나서 해야 하는 일과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들의 변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변화지만, 사람들이 마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유대감이나 동료의식은 느슨해질 수도 있다.
기술은 우리를 24시간 연결하지만 자꾸 혼자가 되라고 속삭인다. 이동하는 시간에도 이어폰을 꽂은 채 거리의 소음이나 타인의 음성을 차단한다. 편하고 안전한 소통이 디폴트 기준이 되면 그만큼 우연하거나 새로운 만남의 부담이 커지게 마련이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더 어렵다. 타인과의 마주함이 야금야금 기술로 아웃소싱되고 있는 것과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나 사회신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문제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제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합세했다. 이미 e메일이나 채팅의 자동완성 기능은 입의 혀처럼 우리 마음 속의 말을 앞서간다. 발표문처럼 정보가 담긴 것부터 소셜미디어 포스팅처럼 사교적인 것까지 뚝딱 만들어 준다. 초안을 잡고 문장에 살을 붙이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생략된다. 채팅에 얹어진 AI는 상대의 요청을 우아하게 거절할 수 있는 표현을 제시하고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감칠맛 나는 메시지도 금방 카톡창에 대령한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서로의 의도나 정서를 더 잘 읽어낼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곤죽이 되어 표준화한 목소리를 갖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기술침투가 인간의 대화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속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냉전시대 군비경쟁을 하듯 인공지능의 일상화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시장에 내어놓는 대로 계속 쫓아가면서 그 활용법을 열심히 익히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일까. 우리는 인터넷 강국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지나치게 충실한 것일까.
디지털 리터러시가 삶의 중요한 기술인 까닭은 단지 기술을 더 많이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나 가짜뉴스를 알기위해서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타인과 세상을 접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오롯이 개인이 습득해야 하는 어떤 역량이 아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사회적 단위에서 구성되는 것으로서 기술이 그 공동체와 구성원의 필요와 특성에 맞게 조응하도록 계발되는 것을 포함한다. 더욱이 혼자 똑똑한 사람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잘 아우르는 역량을 가진 사람을 더 필요로 한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대화력을 충분히 키우고 있는가의 문제는 디지털 리터러시 논의의 중요한 한 축이기에 공공의 차원에서 주요 의제로 적극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선진국의 조건은 단기간의 당면과제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필요한 사회적 아젠다를 포착하고 꾸준히 끌고 가는 힘에 있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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