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과학 산책]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1년, 그 너머의 것
산을 오르다 보면 능선만 보고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순간이 있다. 숨이 차고 정신이 아득해질 수도 있지만 참고 참으며 올라야 시원한 전망을 즐기고 숨도 고를 수 있다. 그런 뒤에도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정상까지 계속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한다.
1년 전 오늘, 허준이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필즈상을 받았다. 그 전날 저녁에 엠바고가 풀려 뉴스에 나왔는데, 내게도 언론사의 전화가 이어졌다. 전화기가 불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 알게 됐다. 사실 2014년부터 필즈상 수상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논문의 양과 질 모두에서 한국 수학자들의 성과에 관한 객관적 지표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1994년 필즈상을 받은 에핌 젤마노프 교수(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는 허준이 교수에게 지난해 짤막한 축사를 전했는데 “Welcome to the club”(클럽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끝맺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깜짝 놀랐다. 한국인 필즈상 수상을 바라왔지만, 정작 그 이후 무엇이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능선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필즈상 수상자 배출 국가나 기관 사이에도 ‘그들의 리그’가 있다. 능선에 오르면 정상에 이르는 데 유리한 상황이 되지만, 그렇다고 등산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진국 리그에서 새롭게 경쟁하고 그 입지를 다져야 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허준이 펠로 선발에서부터 미래인재 양성과 필즈상 수상자 네트워크 구축까지 지속적 지원이 이뤄져야만 우리 역사상 처음 얻은 명품 브랜드인 허준이 교수를 통해 선진국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수학은 아주 작은 투자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다. 수상 1주년의 기쁨이 국민과 정부의 관심과 지원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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