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견고한 은행 과점 체제, ‘메기’ 한 마리로 판 바꿀 수 있나
6년 전처럼 경쟁자 투입해 과점 깨겠다는 금융 당국
인사·규제 등 틀어쥐는 관치금융 관행부터 바뀌어야
‘메기’를 풀어 5대 시중은행 중심인 은행권의 과점(寡占)을 깨겠다는 금융 당국의 구상이 나왔다. 어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4개월의 TF 활동 끝에 발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은행 업계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춰 신규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경쟁을 촉진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금융 당국의 인가 방침이 있어야 신규 인가 신청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자금력과 적절한 사업 계획만 갖추면 언제든 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또 기존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도 적극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대구은행이 이미 전환 의사를 밝힌 상태라 신청서가 접수되는 대로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저축은행이나 지방은행·외국계 은행 지점 규제를 완화해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 TF 초기 중점적으로 논의했던 특화 전문은행은 스타트업 자금 조달에 특화된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의 여파로 도입이 미뤄졌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은행산업을 언제든 경쟁자가 진입할 수 있는 경합 시장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며 “잠재적 경쟁자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경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은행 업계 안팎에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금융 당국은 2017년에도 메기 효과를 보겠다며 카카오뱅크와 K뱅크·토스 세 곳의 인터넷전문은행을 투입했다. 이들이 내놓은 IT 친화적 금융 서비스 덕에 소비자 선택권이 늘긴 했지만 기대했던 ‘경쟁과 혁신을 통한 과점 균열’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국면에서 시중은행들은 별다른 경쟁 없이 손쉽게 막대한 이자 수익을 냈고, 침체한 바닥 경기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성과급 잔치까지 벌여 비판을 받았다. 이런 민심을 등에 업고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라거나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적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과점의 폐해가 큰 만큼 실질적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며 연일 은행의 이권 카르텔 깨기를 주문했었다.
문제의식이 틀린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6년 전의 판박이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신규 플레이어 투입으로 경쟁 효과를 내겠다는 방안 자체도 기시감이 있거니와 “금융은 다 관치”(김주현 금융위원장)라는 이번 정부의 인식 역시 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늘 앞세우지만 민간 기업인 금융사 CEO와 임원 인사까지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앉히려는 등 자유의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다양한 규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당국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이번 구상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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