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대략 생산?! 역대 최대 판매량을 세운 게임의 정체
루시드 드림의 완성판,〈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젤다의 전설〉(이하 〈젤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모른다면, 그리고 친구 중에 게임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인생 헛살았네!”라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게임을 사랑해온 마니아들에게 〈젤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넘어서면 넘어섰지 결코 모자라지는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디서 들어는 본 것 같다고? 그것은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이 출시 단 3일 만에 1000만 장을 돌파하며 역대 게임 판매량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우는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게임은 어쩌면 당신보다도 나이가 많다
〈슈퍼 마리오〉 〈포켓몬스터〉와 함께 〈젤다〉는 닌텐도 게임 시리즈의 이른바 3대장으로 군림한다. 다만 두 게임이 더 쉽고 대중적인 데 반해 〈젤다〉는 마니악한 구석이 있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리즈는 아니다(당장 〈슈퍼마리오〉와 〈포켓몬스터〉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임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정통파 게이머들이라면 3대장 중 〈젤다〉를 첫손에 꼽을 만큼 권위를 갖춘 시리즈기도 하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최신 게임이지만 시리즈의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어지간히 연배가 되는 게임이다. 1986년에 첫선을 보였으니 지금쯤이면 주인공 ‘링크’도 수염깨나 기를 법한 나이가 됐겠지만, 게임 속 주인공은 늙지 않는다. 1980년대 추억의 게임기 ‘패미컴’ 디스크로 처음 발매된 〈젤다〉는 닌텐도 3DS, Wii 같은 새 세대 게임기가 나올때마다 새 타이틀을 선보였고, 매번 게이머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올해 등장한 최신작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도 여지없이 게이머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닌텐도 넘버원 타이틀을 놓치지 않아온 〈젤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소파에 누워 안락하게 떠나는 모험의 즐거움
〈젤다〉 시리즈는 1980년대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험이라는 주제로 게이머들을 사로잡아왔다. 30년을 한결같이 모험, 그것도 장대한 모험을 내세웠다. 모험은 위험천만하고 고된 여정이지만 사실은 방구석에 앉아 있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모험의 본질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험난한 여정은 스크린 위에 있으니 모험이지 실제로 겪으면 ‘개고생’이다. 게임은 그런 면에서 모험을 다루기에 그럴듯한 매체인데, 남의 모험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모험에 뛰어들어야 하면서도 정작 플레이어는 여전히 편안한 소파에 몸을 기댈 수 있는, 이면적인 쾌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8비트 도트 그래픽의 단출한 그림으로도 〈젤다〉 시리즈는 기나긴 모험을 보여주며 게이머들의 눈과 손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길고 생생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니! 직접 판타지 세계의 마물들과 싸워 이겨나가지만 내 손에는 생채기 하나 없을 수 있다니! 전에 없던 리얼한 모험담은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더욱 개선된 하드웨어 성능에 힘입어 점점 더 고품격의 그래픽과 사운드로 이 모험의 규모를 키워왔다.
팬데믹, 방구석 모험의 쾌감이 폭발하다
하지만 이런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 게임기라는 게 쉽게 덜컥 들여놓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게임만 할 수 있고 부피를 차지하며 결코 저렴하지 않은 기계를 들여놓는 것은 진성 게이머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이 흥미로운 모험을 경험해보는 일은 그저 몇몇 게이머, 혹은 그런 게이머를 친구로 둔 이들에게만 국한됐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훌륭한 모험담도 대중적으로는 “젤다가 주인공 아냐?”(주인공의 이름은 ‘링크’다) 수준의 인지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지도는 적어도 닌텐도 스위치라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판도를 바꾼 듯싶다. 코로나19 사태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무렵 나타난 이 기계는 〈젤다〉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링 피트 어드벤처〉(이하 〈링 피트〉)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물의 숲〉)이라는 양대 산맥이 코로나19를 타고 대유행하던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동물의 숲〉은 ‘혼자서도 잘 놀아요’를 상징하는 대표 콘텐츠로, 〈링 피트〉는 집에서 하는 운동으로 알려지며 닌텐도 스위치 붐을 이끌었다. 물론 대부분의 운동 대체 콘텐츠가 그렇듯이 〈링 피트〉 컨트롤러는 발매 후 100여 일 만에 당근마켓에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내긴 했지만. “운동 효과가 있다며?”라며 일단 스위치를 구매해본 생애 첫 콘솔 게임 경험자들은 기왕 기계 산 김에 뭐 좀 해볼 거 없나 하며 스토어를 어슬렁거렸고, 그때 닌텐도 3대장 〈슈퍼마리오〉 〈포켓몬스터〉 그리고 〈젤다〉가 등장했다. 스위치와 함께 등장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바로 그 모험으로 〈링 피트〉의 실패자들을 인도했다. 스토리? 그냥 영웅이 성장해서 공주를 구하고 왕국을 되살리는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차세대 기기로 구현된, 마치 실제 판타지 세계를 거니는 것 같은 방대한 세계는 초심자들에게도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지나는 길마다 놓인 모든 것이 내가 하는 행동에 반응하고, 사막부터 설원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하이랄이라는 세계는 가도 가도 새로운 사건들로 넘쳐났다. 코로나19로 몸은 갇혔지만 스위치가 열어준 모험의 세계는 드넓었다.
그렇게 닌텐도 스위치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 이르러 마침내 게이머와 ‘겜알못’은 하이랄 왕국에서 처음으로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생애 첫 게이머들에게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를 선사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총 2000만 장이 넘어가는, 시리즈 사상 최대 판매고를 올리며 올타임 레전드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라는 이상
2023년에 다시 한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게임은 30여 년간 한 번도 오래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직접 세계를 거닐며 맞부딪히는 모험이 무엇인지를 증명해왔고, 이제는 그 저력을 게임을 모르고 살던 이들에게까지 전파하기 시작했다. 전작이 너무 훌륭했고, 또 영화와 마찬가지로 속편이 퀄리티 면에서 떨어지는 징크스 문제가 게임에도 있기에 올드 팬들이 불안해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튀어나온 새 버전의 ‘링크’는 이 시리즈가 얼마나 위대한지 또다시 증명하는 중이다. 전작의 광활한 세계는 더 넓어졌고, 세계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것은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 준비가 돼 있었다. 한편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에는 ‘크래프팅’이라는 요소가 포함되며 게임의 완성도를 높였다. 크래프팅이란 게임 안에서 이런저런 부품을 동원해 무언가 작동하는 기계류를 만드는 일을 말하는데, 이 게임의 세계에선 부품을 모아 자동차를 만드는 건 기본이고 아예 비행기나 전투 로봇을 만드는 일도 가능해졌다. 덕분에 많은 게이머는 구하라는 ‘젤다’ 공주는 안 구하고 부품 모아다 뚝딱거리는 공장만 차린다는 푸념도 곳곳에서 들려오는 형국이다.
욕망의 이상향, 자각몽의 세계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를 골라보라면 나는 자각몽을 이야기하곤 한다. 영화가 꿈이라면, 게임은 자각몽이다. 그냥 꿈은 일어나는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내가 개입할 순 없지만, 내가 꿈속에 있다는 것을 안 이후의 자각몽은 말그대로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 날고 싶으면 날고, 부수고 싶으면 부수고, 짓고 싶으면 짓는, 어찌 보면 인간의 욕망이 가장 자유롭게 발현되는 순간으로서의 자각몽에 가장 가까운 미디어가 게임일지도 모른다. 30년을 이어온 시리즈가 내놓은 새 작품에 신구 게이머들이 너나없이 열광하는 이유도 아마 〈젤다〉 시리즈가 선사하는 모험을 통해 일종의 자각몽과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 아닐까? 영화 〈인셉션〉에서 아내를 잃었지만 자신의 자각몽 안에는 아내가 존재하기에 차라리 꿈에서 깨지 않으려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오늘도 〈젤다〉의 오래된 팬들과 새로운 팬들은 함께 하이랄이라는 자각몽의 세계를 헤매며 때로는 모험을, 때로는 요리를, 때로는 공작을 하며 현실의 무게를 벗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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