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유증發 나비 효과…CJ그룹 리스크는?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7. 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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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리스크 고조…승계 작업 영향 촉각
ENM, 본업 어려운데 자회사로 돈 줄줄

CJ CGV를 대상으로 한 기습적인 대규모 유상증자는 개별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CJ그룹의 평판 훼손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CJ그룹은 유상증자 명분으로 재무 구조 안정화와 미래 산업 투자를 내걸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베테랑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최악의 유상증자”라는 이례적 표현을 써가며 날을 세웠다. 소액주주는 현금출자를 하고 지분율 45%로 최대주주인 CJ가 현물출자를 하는 것부터 전례를 찾기 힘들다. ‘CGV 저평가, 올리브네트웍스 고평가’ 구도로 증자에 따른 최대주주의 지분율 희석을 방어하겠다는 프레임이 시장에 퍼지면서 CJ그룹이 내건 증자의 명분은 힘을 잃은 분위기다. 이번 유증으로 촉발된 불신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그룹 승계 구도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는 진단이다.

CJ올리브영은 CJ그룹 승계의 핵심 역할을 맡은 계열사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CJ올리브영 상장을 통해 마련한 현금으로 그룹 전반의 지배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1) 평판 훼손 불가피

승계 위한 ‘주가 방치’ 논란도

관건은 CJ그룹이 휘말린 평판 리스크가 승계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다.

CJ그룹 승계의 핵심 역할을 맡은 계열사는 CJ올리브영이다. CJ올리브영 최대주주는 51%의 지분을 보유한 CJ다. 재무적 투자자(FI)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약 26%를 오너 4세들이 나눠 갖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가 보유한 지분은 약 11%다. 이 지분은 이 경영리더가 지주사 CJ 지분을 확보하고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쓰인다.

CJ올리브영의 상장 준비 작업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실적 등 재무적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CJ올리브영은 2020년 프리IPO 당시 2조원 가까운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상장이 미뤄졌지만 이는 더 높은 기업가치를 위한 판단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CJ올리브영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5000억원 수준으로 나타난다. 앞서 유안타증권은 올리브영의 2022년 EBITDA가 5000억원 이상이면 시가총액 4조원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 실적 기준 CJ올리브영이 4조원의 기업가치로 증시에 입성할 경우, 이 경영리더는 4000억원을 웃도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CJ그룹 승계 과정에서 반복되는 크고 작은 잡음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시선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CJ그룹이 10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합병과 분할을 반복하며 승계의 주춧돌을 놓는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오너 일가에 유리한 합병 비율 산정 등으로 세간의 우려 섞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불거진 CGV 유증 사태로 CJ 오너가(家)를 바라보는 시장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 ‘오너만을 위한 거래’라는 인상이 굳어지면 시장 참여자로부터 투자 심리를 조성하는 데 득 될 것이 없다.

특히, 상장 시 오너 일가 구주 매출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승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대응 전략 마련이 관건이다. 지난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도 있었지만 높은 구주 매출로 ‘승계 자금용’이라는 세간 눈총에 시달리다 상장이 무산됐다.

물론 승계는 장기적 관점에서 진행 중이지만, 일각에서는 CJ그룹이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CJ그룹 승계가 본격화하는 시점이 2029년을 전후한 때로 본다. 이 경영리더가 보유한 지주사 CJ의 신형 우선주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로 전환되는 시점이 2029년이다. ‘승계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CJ그룹 대부분 계열사는 주가를 올릴 유인이 부족하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CJ그룹 전 계열사 주가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CJ제일제당은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지만 시가총액은 고작 4조원대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거의 모든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를 승계에 둔 CJ그룹 활동을 비판하고 외국인 주주를 결집한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라며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보여지는 평판이 좋지 못한 기업은 앞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주된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CJ그룹은 최근 수년간 단행된 일련의 의사 결정은 어디까지나 사업 시너지 제고가 목적일 뿐,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2) 플랫폼 시대, 플랫폼 없는 CJ

제조 능력 있어도 유통 못 시켜

CJ그룹의 주요 위기 요인 중 하나는 플랫폼 채널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CJ그룹은 콘텐츠나 상품 제조 역량은 뛰어나지만 이를 마땅히 유통시킬 창구가 없다는 우려가 줄곧 따라다녔다. 콘텐츠 측면에서 보면 자체 TV 채널과 영화관 등을 소유하고 있지만 확장성이 뛰어나거나 선호도가 높은 창구가 아니다. 식품 등으로 보더라도 자체 이커머스 플랫폼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CJ제일제당과 쿠팡 간 납품가를 두고 불거진 ‘햇반 전쟁’도 CJ그룹 핵심 먹거리 대부분이 쿠팡과 겹쳐 발생한 갈등의 한 단면으로 풀이된다. CJ그룹이 이례적으로 플랫폼 대기업 네이버와 지분 교환을 한 것도 유통 창구 확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CJ그룹과 네이버는 2020년 이커머스와 물류, 콘텐츠 기획·제작, 유통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하기로 하고 6000억원 규모 주식을 맞교환했다.

CJ그룹은 글로벌, 플랫폼, 바이오 등 신사업으로 이른바 ‘양손잡이 조직’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을 계획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과제다. 기존 주력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주력 사업과 연계성이 높은 신사업을 택해 모험적인 시도를 도모한다는 게 양손잡이 조직 전략의 골자다. 신사업에 모험적인 도전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주력 사업에서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CJ그룹은 제일제당을 비롯한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본업 경쟁력이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칫 무리한 신사업 투자가 그룹 유동성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 이재현 회장이 그룹 방향성을 ‘양적 성장’에서 수익성 중심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도 이런 위기감이 깔려 있다.

(3) 증자로 빚 갚아도 이자 부담 여전

CJ ENM, ‘제2 CGV’ 될라

CJ CGV 유상증자가 계획대로 마무리되더라도 CJ그룹이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회계적으로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이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누적된 빚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현금흐름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실질적인 이자 부담을 줄이려면 앞으로 전략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로 설비 투자가 단행돼야 하지만 신사업에 투자하는 자금은 1000억원에 불과하다.

시장에서는 이번 대규모 증자에도 불구하고 CJ CGV의 현 재무 구조로는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CJ CGV가 보유한 사채·차입금만 7534억원이고 이 가운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이 3383억원에 달한다. 증자 대금 중 3800억원을 재무 구조 개선에 쓰더라도 남은 빚이 적지 않다.

CJ CGV는 2021년 12월에 발행한 1800억원(33회 공모, 34회 사모)가량 되는 신종자본증권 상환도 대비해야 할 처지다.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하면 자본총계가 감소한다. 자본 감소는 부채비율 급증으로 이어진다. CJ그룹 입장에서는 스텝업 조항 발동으로 이자율이 오르기 전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해야 했지만, 상환에 따른 자본 감소의 부메랑에 대비할 카드가 절실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 주식을 현물출자한 것은 이런 고육지책성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자, CJ그룹 내부에서도 ‘CJ CGV를 더 이상 안고 가기 힘겨운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 카드까지 다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CJ CGV를 사모펀드 등에 매각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회계장부를 정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CJ그룹 안팎에서는 CJ ENM 역시 ‘아픈 손가락’으로 본다. CJ ENM의 골칫거리는 ‘CJ라이브시티’다. CJ라이브시티는 경기 고양 일산동구 장항동 일대에 K팝 전문 돔 공연장인 아레나 등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려 2015년 설립됐다.

CJ라이브시티는 설립 후 매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빚만 남은 상태다. 현재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부채만 5000억원이 넘는다. 이는 모회사인 CJ ENM의 재무 부담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CJ ENM의 재무 상황도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업황 악화로 올 1분기 5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CJ라이브시티 채무보증만 잔뜩 쌓인 가운데 지난 5월 초 CJ ENM은 CJ라이브시티에 시설자금·운영자금으로 599억원의 단기 차입을 해줬다. 이자율은 연 4.6%로 차입 잔액은 899억원에 달한다. CJ ENM 역시 본업이 부진한 가운데 자회사로 현금 유출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단기 차입금도 2조원을 웃돌며 부채비율 역시 137.8%로 높아졌다. 22%의 지분을 보유한 넷마블 주식을 처분하면 최대 1조원의 자금 마련이 가능한 점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6호 (2023.07.05~2023.07.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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