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모이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옆 ‘방랑시인’ 발자취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은 원래 하동(下東)면이었다. 조례 개정 등을 통해 2009년 10월 명칭을 바꿨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알려진 난고 김병연의 고장이라는 지역 이미지에 맞게 공식 출범했다. 김삿갓면은 북쪽 중동면과의 경계에 있는 망경대산(1087.9m) 남쪽 산록에 위치한 주문리 옥동광업소, 예밀리 함태광업소 등 광산촌이 발달했고, 인근 김삿갓계곡·내리계곡 등은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주문리는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 모운동(募雲洞)으로 불린다. 비가 오고 난 뒤면 마을이 늘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과거 탄광 산업이 전성기일 때는 부귀영화를 누리던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1954년 채굴을 시작한 옥동광업소에 광부들이 찾아들면서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이들로 북적거렸다. 당시 1만 명 넘게 살았다고 한다.
산골 비탈진 사면에는 촘촘히 집들이 들어섰고, 큰 시장에 양복점·요릿집 등 없는 게 없었다. 마을 한쪽에는 번듯한 극장까지 있었다. 당시 영월읍내에도 변변한 극장이 없던 터라 영화를 보러 이 산골마을까지 찾아왔을 정도다. 호경기를 누리던 시절 개들도 1만원 짜리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말은 매번 회자되는 얘기다.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은 떠나고, 썰렁한 빈터로 남았다.
폐광 이후 잊힌 마을에 최근 다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낡은 담벼락은 투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알록달록 동화의 나라로 변모하고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고도는 탄광산업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걷는 광부의 길로 다시 태어났다. 기존 산꼬라데이(산꼭대기의 강원도 사투리)길과 이어져 도보 여행 코스로 인기다.
모운동은 주문교를 건너 꼬불꼬불 산길을 4㎞ 정도 올라야 닿는다. 갈 지(之)자의 가파른 산 사면을 타고 해발 550m에 이르면 ‘공중도시’ 같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 아래 첫 동네’다.
꽃길을 따라 벽화를 감상하거나 판화미술관에 들러도 좋고, 오래전에 시계가 멈춘 듯 낡은 집들을 돌아봐도 좋다. 마을공연장 옆에 오래된 휴대전화를 진열장이 있다. 한때 학생수가 1000명이 넘었다는 폐교는 펜션으로 변했다.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 ‘짝’과 ‘운탄고도 마을호텔’도 촬영했다.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고도를 걸어봐야 한다. 영월, 정선, 태백, 삼척 4개 시와 군을 하나로 연결한 길이다. 모운동은 운탄고도 2길과 3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초입에 옥동광업소 동발(동바리) 제작소 건물이 폐허로 남아 있다. 동발은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이다. 조금 더 가면 탄차에 기대어 쉬는 광부상이 반긴다. 작품명 ‘휴식’이다. 바로 옆에 나무데크 계단을 오르면 깎아지른 벼랑 위에 조성된 황금폭포 전망대다. 맞은편에는 탄광에서 나온 물로 조성한 인공폭포가 흘러내린다. 가까운 곳에 황토색 침출수가 흐르는 갱도가 있다. 이곳 물이 황금폭포로 흐른다.
인근에 김삿갓유적지가 있다. 문학관과 묘지, 그가 살던 집이 마련돼 있다. 김삿갓이 전국을 방랑한 데는 사연이 있다.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선천 부사로 있다가 반란군에게 투항했다. 역적이 된 조부는 참수당하고 가족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숨어 살던 김삿갓은 20세 때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조부의 역적행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로 급제했다. 나중에 가족사를 알게 된 ‘천재시인’ 김삿갓은 평생 전국을 유랑했다.
김삿갓은 1863년 57세의 나이로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이 3년 뒤 자기 집 가까운 이곳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했다.
그가 살던 집은 묘지에서도 약 1.6㎞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 나온다. 민가가 있어 차가 한 대 다닐 만한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의 도로가 이어지지만 외부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찻길이 끝나는 곳에 초가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9개 코스, 170여㎞ ‘운탄고도 1330’
김삿갓문학관 앞 도토리 묵밥·감자전
영월 김삿갓면으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읍내까지 간 뒤 88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면 고씨동굴을 지나 와석재터널을 지나면 왼쪽으로 모운동 이정표를 만난다. 옥동천을 가로지르는 주문교를 건너면 모운동으로 길이 이어진다. 인근 예밀리 마을은 산골과 어울리지 않게 ‘메종 드 예밀’이라는 레스토랑과 ‘와인족욕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강원도의 폐광지역 4개 시·군 영월~정선~태백~삼척을 잇는 산악트레일 ‘운탄고도 1330’이 개통됐다. 9개 길(코스), 173.2㎞ 길이다. ‘1330’은 운탄고도의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의 해발고도 1330m에서 가져왔다. 산꼬라데이 길은 망경대산 일대에 있던 옥동광업소와 한일광업소 갱도 및 마을을 잇는 길을 정돈해 만든 8개 코스, 27.5㎞ 남짓한 걷기 길이다.
김삿갓면 와석리에서 김삿갓계곡이 시작된다. 김삿갓유적지에서 김삿갓 주거지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다. 김삿갓문학관은 시인과 관련된 다양한 책자와 연구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입구 식당에서 파는 강원도 음식인 도토리 묵밥과 감자전이 맛있다.
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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