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씨앗을 자녀에게 심고 있는가

2023. 7. 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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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천 목사의 교육 인사이드 ⑧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지난 6월 7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SDC 교직원과 학생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담을 뒤집기 원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즉 많은 부모들이 콩 심은 데서 팥이 나기를, 팥 심은 데서 콩이 나기를 원하는 심리를 갖고 살아갑니다. 내가 아무리 자녀에게 부정의 씨앗을 뿌려도 긍정의 열매가 맺히길 원하며,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자녀를 대함으로 자녀 마음에 상처와 아픔이 깊어 가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가 뿌린 씨앗 그대로 자녀에게서 결과물을 거둔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감나무는 감을, 은행나무는 은행을 생산한다는 것을….

우리 부모들은 내가 자녀에게 어떤 씨앗을 심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좋은 열매 맺기만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자녀에게 존경받을 만한 부모로서의 좋은 씨앗을 자녀에게 심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부모가 씨앗을 심는 농부로서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모든 선과 악을 파생시키는 “부정과 감사”에 대해 살피며 먼저 부모가 무의식중에 자녀에게 심는 독초와도 같은 부정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녀에게 심는 ‘부정’의 씨앗

부모가 자녀에게 심는 부정의 첫 번째는 바로 ‘긍정의 탈을 쓴 부정’입니다. “잘했네. 조금만 더하면 더 잘 나오겠다”, “우리 애가 이렇게 착해요. 엄마 말도 잘 듣고” 높은 기준점을 두고 자녀를 은근히 압박하는 부모, 부모의 욕망과 욕심을 자녀에게 투영하는 부모는 긍정을 가장한 부정으로 자녀를 자신의 기준점에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부모는 겉으로는 칭찬하는 것 같으나, 마음으로는 자녀에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부모의 내면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를 때 아이들은 불안과 갈등을 겪게 되고, 아이는 부모의 기분을 맞추고자 노력하다가 결국은 포기한 채, 쌓아둔 분노와 부정을 쏟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 부정의 씨앗은 ‘숨통을 조이는 잔소리’입니다. “옷이 그게 뭐니?”, “이게 방이니, 돼지우리니? 좀 치워”,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런 유형의 부모는 잔소리를 교육이라고 착각합니다. 또 이런 부모는 온갖 부정적 감정을 자녀에게 쏟아내며 자녀의 마음에 끊임없이 스크래치를 냅니다. 내가 옳고 내가 제일 잘 안다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부모로 인해 아이는 질식될 듯 숨 막히는 감정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하는 부모의 잔소리는 결국 자녀의 가슴에 쌓이고 쌓여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하며, 부모에게 반항적인 아이로 성장하게 합니다. 결국 자녀에게 쏟아낸 잔소리는 비수가 되어 부모 자신을 찌르게 되어있습니다.

세 번째는 ‘마음을 할퀴는 냉정한 말투’입니다. “너는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 모양이니?”, “너 그럴 거면 다 때려치워!”, “이 꼬라지로 네가 뭘 하겠니?” 비꼬는 말투, 냉소적인 말투, 무시하는 말투, 명령하는 말투…. 자녀가 그럴 것이라는 편견 가운데 지레짐작하며 비아냥거리는 부모, 윽박지르고 비난하며 표정과 말투로 경멸을 전달하는 부모로 인해 우리 자녀들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처럼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녀는 늘 주눅이 들어 있고, 매사에 자신감 없이 살아가게 되며, 추운 겨울밤 외투 없이 홀로 거리에 던져진 것 같은 공허함 가운데 무기력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의 부정과 불평은 자녀의 삶과 영혼을 철저히 망가뜨립니다. 자녀의 심령에 심겨진 부정의 씨앗들은 어느새 무섭도록 자라나 자신과 부모 온 가정을 파괴하는 불행을 불러옵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서 썩어 문드러지고 끔찍한 부정의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장 자녀에게 뿌리던 부정을 멈추어야 합니다. 불평불만 하는 부정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자녀의 삶을 풍성한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주십시오. 부모가 심어주는 생명과도 같은 감사는 자녀의 인생에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행복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제는 부모가 자녀에게 심는 감사를 살펴봄으로써, 사랑하는 내 자녀가 행복의 열매로 풍성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부모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자녀에게 심는 긍정의 씨앗 ‘감사’

첫 번째 부모가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할 감사는 바로 ‘선생님께 대한 감사를 심어주어라’ 입니다. 즉 자신을 지도하고 이끌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쉽게 가까이서 내 자녀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선생님께 대한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 항상 감사하는 자녀는 모든 교육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스펀지처럼 흡수하게 됩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널 사랑으로 교육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해라” 말하는 부모의 자녀는 반드시 학습은 물론 인격의 성장과 변화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두 번째는 ‘타인에 대한 감사를 심어주어라’ 입니다. 즉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같이 길을 가주던, 말을 걸어주던, 차 한잔을 건내던…. 사람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빈부와 상관없이 내 곁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부모가 늘 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자녀에게 심어주면, 그 자녀의 인생은 풍성하고 평안하며 절대 망가지거나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녀는 따듯한 감성과 품위 있는 인격으로 성장하여 부모에게도 그 감사를 전하는 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모든 상황에 대한 감사를 심어주어라’ 입니다. 좁은 집에 살던, 옷이 부족하던, 용돈이 적던…. 어떤 문제와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현실과 상황에 대한 감사는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훈련을 통해, 감사가 습관이 된 자만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부모부터 먼저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것에 끊임없이 감사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고 감격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자녀는, 부모의 모습 그대로 자라나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총체적인 가장 위대한 감사 ‘범사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심어주어라’ 입니다. 형형색색의 단풍잎처럼 우리는 모두 감정도 표현도 다 다릅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누구는 부정을 누구는 감사를 표하게 됩니다. 또한 때로는 감사하던 마음도 힘겨운 상황 가운데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현실과 상황을 뛰어넘는 감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진정한 감사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사 구원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자만이 모든 것을 초월한 감사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십시오. 그러할 때 비로소 자녀는 감사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서대천 홀리씨즈교회 담임목사

<아래에 부정을 멈추고 이제는 자녀의 삶에 풍성한 감사를 심음으로 온 가정이 행복한 김민숙 어머니의 사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민숙
생명 교육으로 변화된 가정과 자녀

우리 가정은 어느 날 셋째 아이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해 살아 있는 가족의 인생도 끝난 것 같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었으나 믿음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했으며 각자의 슬픔만큼 문제를 안고 힘겨운 날들을 살아가게 됐습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던 나에게 급기야 면역 질환과 암,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끊고 수많은 날을 슬피 울기만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첫째와 중학생이었던 둘째는 아예 학업을 놓아버렸고, 셋째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쌍둥이 동생들은 그 충격과 트라우마에 빠져 온 가족이 그야말로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SDC를 소개받아 면담을 받은 후 네 아이 모두 SDC에 등원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를 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가슴이 철렁합니다. 어떻게 이런 은혜가 임했는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죽음은 슬픔이 아니고 천국의 소망이며 자식은 나의 소유물이 아님을 끊임없이 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하기 싫다! 할 수 없다! 온통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는 저를 목사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천사 같은 교회 가족들은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저와 자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사랑을 쏟아부어 주었습니다. 눈에 초점조차 없던 우리 가족은 점점 치유 받기 시작했고 슬픔과 원망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로 변해가며 몇 년 동안 밥보다 더 많이 먹었던 공황장애 약도 끊게 되었고, 나의 영혼이 살아남을 느꼈습니다. 이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처음에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저는 곧 기쁘고 평안했으며 감사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제가 감사로 살아나니 아프고 망가졌던 자녀들이 모두 함께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저희 가정을 위해 SDC를 예비해 놓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전에는 학원을 성적 향상과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기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SDC도 여느 학원 중 하나려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찾았는데, 그러나 SDC는 제가 지금까지 본 교육기관 중 유일무이합니다. 이곳에서처럼 “교육은 생명이다”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곳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학원의 커리큘럼은 명문대학교 입학을 책임져 주기에 완벽했으며, 오래 앉아 공부하며 견디는 엉덩이 훈련은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교회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매일 기도와 찬양, QT 시간을 가지며 성경적 가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최고급 무대 위에서의 공연이나 발표를 통해 학생들은 본인의 기량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SDC는 무엇보다 오성교육을 통해 올바른 인성과 실력은 물론 우리 인생의 키포인트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법과 참 소망을 배울 수 있는 이 시대 다음세대와 가정들을 살리는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교육기관입니다. 그렇기에 이곳에 오면 누구나 다 변화되고 행복해질 수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현재 네 명의 자녀들은 SDC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영적 자존감을 가지고 학생과 자녀의 본분을 다하며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밝은 모습으로 기뻐 뛰며 찬양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자녀와 부모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존중하며 은혜와 감사만을 선포할 수 있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이라는 부정에서 벗어난 SDC에서의 새로운 경험들은 모두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요 은혜임을 고백 합니다. 우리 가정이 SDC를 통해 다시금 감사와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또 다른 많은 가정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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