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이로 치면 100세...삐쩍 마른 '갈비 사자', 7년만의 이사[영상]

최종권 2023. 7. 5. 18: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해 부경동물원에 있던 늙은 사자가 5일 오후 충북 청주동물원 방사장으로 옮겨진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김해→청주 ‘사자 이송 작전’ 진땀…7시간 걸려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주동물원. 산 중턱을 오른 트럭에서 시동이 꺼지자, 케이지 안에 누워 있던 늙은 사자 한 마리가 고개를 치켜세웠다. 사자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상태였다. 갈기는 풍성한데 몸에 살이 없었다.

두툼해야 할 다리도 근육이 빠져 앙상했다. ‘갈비 사자’로 불리며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서 지내던 늙은 수컷 사자다. 2004년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나 올해 20살이 됐다.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이라고 한다. 부경동물원에서 지낸 건 2016년부터다. 동물단체 등은 “사자를 구해달라”는 구호 요청을 지속해 왔다.

청주동물원은 지난달 부경동물원과 협의해 이 사자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비좁은 우리를 벗어나,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여생을 보내게 해주기 위해서다. 청주동물원은 2014년 환경부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자연방사가 불가한 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측은 "사자 나이가 너무 많아 앞으로 얼마나 살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사자 운송 작전은 7시간 만인 오후 6시에 마무리됐다. 사자가 좀처럼 운송용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아, 탑승에만 2시간 넘게 걸렸다. 새 보금자리는 애초 사자가 살던 부경동물원에서 270여 ㎞ 떨어져 있다.

김해 부경동물원에 있던 늙은 사자가 5일 오후 충북 청주동물원에 도착해 포효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사람 나이로 100살, 퇴행성 관절염 증상


전날 부경동물원에서 운송 작전을 준비한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는 “건강상에 큰 문제는 없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퇴행성 관절염 등 노환이 있는 것 같다”며 “구조물에서 내려오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볼 때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사자를 옮기려고 케이지를 특별 제작했다. 가로 2.5m, 세로 1.5m 크기로 앞뒤가 열리는 우리다. 사자가 더위에 지치지 않게 하려고, 케이지 온도를 영상 25도에 맞춘 뒤 오는 내내 사자 상태를 지켜봤다. 멀미 방지를 위해 무진동 트럭에 실었다. 저속(시속 80~90㎞)으로 오는 바람에 이동 시간은 평소보다 1시간 30분이 더 걸렸다.

청주동물원에 온 사자는 야생동물보호시설로 옮겨져 당분간 휴식을 취한다. 지난해 건립한 이 시설은 실내동물원이나 열악한 사육 환경에서 지내는 동물을 보호하려고 만들었다. 부경동물원과 비교하면 호텔급이다.

이 사자는 유리 외벽으로 볼 수 있는 실내 전시장에서 그동안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바닥은 콘크리트여서 관절에 무리가 갔다.

김해 부경동물원에 있던 늙은 사자가 5일 오후 충북 청주동물원 방사장에서 걷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친구 생긴 ‘갈비 사자’…7년 만에 독방 벗어나


새로 이사한 장소는 넓이가 1650㎡로 기존 우리보다 20배가량 넓다. 흙을 밟을 수 있고, 나무 구조물에 올라 간단한 놀이도 가능하다. 청주동물원은 이번에 온 사자가 고령이라 혈액검사, 단층촬영, 초음파 검사 등 건강검진을 한다. 소고기와 닭고기 등 먹이를 주고, 영양제도 주기적으로 놔 줄 방침이다. 사자 이름은 ‘바람’으로 지었다.

사자는 무리를 이루는 동물이다. 청주동물원에 12살(암컷)·19살(수컷) 사자가 있어 새로 온 사자가 무사히 적응하면 무리생활을 기대할 수 있다. 이날 옮겨진 사자는 일단 격리방사장(495㎡)에 머문 뒤 기존에 머물던 사자 2마리와 합사하게 된다. 김정호 수의사는 “청주동물원 사자와 마주 보기가 가능한 격리 칸에서 지내게 한 후 서로 익숙해지면 함께 지내도록 할 예정”이라며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흙을 밟으며 행동동화 프로그램 치유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2013년 문을 연 부경동물원은 최근 낡고 비좁은 시설에서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삐쩍 마른 채 좁은 우리에서 홀로 무기력하게 지내는 사자를 구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