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박차고 들어온 의사의 '폭언'...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조합원 대상 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수기 공모 수상작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 <기자말>
[김사랑 기자]
현재 시각 오후 9시 40분, '나이트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늦잠 자버렸다.'
밤새 24명의 환자를 간호하고 섬망 있는 환자들이 낙상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긴장하면서 일했더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퇴근 후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밤새 엉망진창인 오더가 쏟아지는 기괴한 꿈을 꾸고 일어나니, 오후 9시 40분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되지 않아 멍때리다가 "아 맞다! 출근!"이라는 외마디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 나는 오늘 또 출근해야 한다.
허겁지겁 씻고 머리도 채 말리지 못한 채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등 뒤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밥은 먹고 가야지!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잖아. 밤새 어떻게 일하려고 그래!" 이미 닫힌 문에 대고 큰 소리로 얘기했다.
"엄마. 나 늦었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다녀올게요."
나이트 근무 시작 시각은 밤 11시이지만, 나는 의사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사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10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11시에 인계를 시작할 수 없고, 이브닝 근무를 했던 동료들이 남아서 업무를 같이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형외과 당직실은 눈앞에 있는데, 오늘 당직의가 누구인지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젖어있는 머리카락을 대충 묶고는 허겁지겁 간호복으로 탈의 후 자리에 앉아 나에게 배정된 22명의 다음 날 오더를 보기 시작했다.
▲ 집중력을 발휘하여 환자 한 명 한 명의 오더를 보고 고치고 나니 벌써 11시이다. 인계받을 시간이 다가왔다.(자료사진) |
ⓒ elements.envato |
첫 환자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내일 대퇴부골절 수술하는데 식사가 아침, 점심, 저녁까지 들어가 있다. 두 번째 환자는 혈당 조절이 잘 안되는 환자인데 혈당 오더가 없다. 세 번째 환자는 오늘 피검사 한 수치에서 신장 수치가 낮아졌으니 항생제 용량과 횟수를 감량하라고 했다는데, 내일 동일 용량의 항생제가 처방되어 있다. 그 다음 환자, 내일 오전 퇴원이라는데 서류가 하나도 작성이 안 된 채로 넘어왔다. 아침밥만 먹고 정규 퇴원인데 저녁밥까지 다 들어가 있고 퇴원 오더 없이 설명만 퇴원이라고 적혀있다. 어떻게 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집중력을 발휘하여 환자 한 명 한 명의 오더를 보고 고치고 나니 벌써 11시이다. 인계받을 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 일단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할게요. 오늘 엉망이었어요. hand part(하드 파트, 손-손목 전문 진료 부서) 1년 차 선생님 코로나 걸려서 지금 다른 부서 주치의가 커버하고 있는데, 전화도 안 되고 문자를 아무리 보내도 아무것도 처방 안 내줘서 제가 다 처방 내서 했어요."
당장 눈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을 다 소화하려면 그때그때 처방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로스(loss)가 되거나 일이 해결되지 않아 다음 근무자, 그 다음 근무자에게 넘어간다. 마치 자신이 잘못해서 일이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나의 후배는 나에게 죄송하다고 말한다. 근무 시간 8시간 내내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 나의 후배는, 인계를 주고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해결되지 않은 일들을 선배에게 넘겨서 찝찝하고 죄송스러운 후배로 퇴근한다. 나 또한 인계받으며, 나의 일도 아닌 영역 때문에 내가 밤새 할 일들이 늘어났고 또 '바쁘고 힘든 나이트를 보내겠구나'하는 짜증스럽고 못난 마음을 통제하지 못해 저녁 내내 고생한 후배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라운딩 도중 환자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바로 당직 의사에게 전화했다. 두 번을 전화해도 받지 않아서 같이 일하는 동료 간호사가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산소를 주입하면서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동시에 전화로 응급상황을 알려야 했다.
"선생님, 환자 Mental(멘탈) 떨어져요.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요. 혈압은 괜찮은데 산소포화도가 80%밖에 안 돼요"라고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환자 상황을 알렸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10초 넘게 아무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선생님! 안 들리세요?"라고 말하자 탄성과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하… 그래서 원하는 게 뭐에요? 이 시간에 어쩌라고. 그럼?" '그래, 하루 종일 수술실 보고 남아서 당직하려면 힘들겠지'라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아, 오셔서 봐주셔야 할 것 같은데, ABGA(동맥혈가스분석검사) 검사도 나가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아 XX! ABGA나 빨리 나가던지!"
"선생님, 오더 내주세요. 내주실 거죠?" 이미 끊어진 수화기에 대고 얘기한다. 1분, 2분을 기다렸나, 우선 인턴 선생님께 응급콜부터 하고 ABGA 오더를 기다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20분이 지나고, 인턴 선생님이 이미 피검사를 했는데도 오더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컴퓨터 앞에 앉아 당직의 아이디로 접속해서 ABGA검사를 처방한다.
이내 수화기가 울린다. "ABGA결과 왜 안 나와! 안 좋다며! 왜 아직도 안됐어!" 당직실에서 나와 환자 상태는 확인도 하지 않으면서 소리는 어찌나 크게 지르는지 수화기 바깥까지 주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선생님 처방 기다렸는데… 없어서 이제야 했어요. 곧 결과 나올 거예요."
"지금 처방이 문제야? 급하면 급한 대로 빨리해야지! 무슨 처방 타령이야! 환자 안 좋아서 나보고 보라며!"
몸이 하나인 나는, 환자 상태 확인하고 당직 의사에게 노티(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보고하고 상의하는 것)하고 인턴 선생님에게 요청하고 오더 내고 다시 환자 지켜보며 1분 1초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땀범벅이 되도록 뛰어다녔는데 그 결과 돌아온 건 주치의의 날 선 목소리다. 만약 여기서 내가 실수하면 늘 그래 왔듯이 나의 탓으로 돌아온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물을 꾹 참는다. 너무 화가 났지만, 화를 낼 틈도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서로 잘잘못을 따지다가 환자를 놓칠까 봐 오늘도 참는다.
나의 환자는, 나에게 온전한 간호를 받지도 못하고 그렇게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당직의는 환자가 중환자실로 내려갈 때가 돼서야 당직실에서 나와 환자를 따라간다. 분노할 시간도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었고, 밀린 나이트 업무를 마치고 나니 데이 근무 간호사에게 인계를 줄 시간이다. 내 얼굴은 어느새 어제 이브닝 내내 고생한 후배의 얼굴로 바뀌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땀은 범벅이 된 모습으로 데이 근무 간호사에게 인계를 해준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중환자실로 옮긴 환자는 괜찮을까? 내가 빠뜨리고 안 한 일은 없나? 데이 선생님에게 인계 못 한 일이 있나?' 퇴근 후에도 밤새 내가 한 일을 복기하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헝클어진 머리... 눈물샘 터진 신규 간호사
하루 쉬고 또다시 이브닝으로 출근했다. 인계받으려고 앉자마자, 독립한 지 2달 된 신규 선생님이 어제 아침 퇴근 때 나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인계 준비를 하고 있다. 분명히 밥도 못 먹었을 것이다.
"왜 그래, 쌤 무슨 일 있어? 아직 인계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울려고 해?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이 말에,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샘이 터졌나 보다.
"선생님, 저는 이 길이 아닌가 봐요... 못 하겠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선 커다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계속 흘린다.
"알아, 쌤 그 감정 나도 어제 하루 종일 일하면서 느꼈어. 10년 차인 나도 이런데 이제 두 달 된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겠니… 미안하다… 간호사가 간호사 일만 할 수 있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텐데…"
위로를 건네지만, 위로될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hip part(힙 파트, 엉덩이 넓적다리관절 전문 진료 부서) 1년 차 전공의가 휴가를 갔고 파트너인 4년 차 선생님은 수술중이라 환자를 볼 수 없으니 수술하는 동안 hand part(하드 파트) 1년 차 선생님에게 노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신규 선생님이 담당하는 환자 vital(바이탈)이 흔들리고, 혈압이 70까지 떨어지면서 산소포화도도 떨어지고 환자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변량도 현저하게 줄고 혈액검사 결과 신장 수치도 급격히 안 좋아져서 오후 항생제를 그대로 달면 안 될 것 같아 상황을 hand part(하드 파트) 1년 차 주치의에게 알렸으나 매우 곤혹스러워하며(주치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본인 파트도 잘 모를 때였다) 본인이 결정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수술이 끝나면 담당인 4년 차 선생님과 상의하라고 했다고 한다. 일단 환자 상태를 지켜보면서 응급상황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환자는 나에게 넘어왔고, 인계받자마자 환자 혈압을 쟀는데 여전히 70~80대였고, 의식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허공에 손짓·발짓을 하고 있었다. 수술한 지 하루밖에 안 되어서 절대 안정해야 하는데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내려오면서 몸에 있는 수액 줄을 다 잡아빼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환자를 진정시키고 4년 차 주치의에게 전화했지만, 수술이 안 끝났는지 받지 않았다. 1년 차 주치의에게 전화하면 어차피 같은 답변이 돌아올 것 같아, 환자 상태와 다음날 오더 항생제 용량 관련해서 문자를 보냈다.
▲ 간호사 한 명당 돌보는 환자 수를 줄여야 온전하게 환자를 위한 전인 간호를 할 수 있다.(자료사진) |
ⓒ elements.envato |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8시가 훌쩍 넘었고, 직원 식당에서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대충 끼니나 때우자는 생각으로 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간호사실을 문을 발로 걷어차며 "나한테 전화한 간호사 나와!"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4년 차 전공의가 화난 모습으로 날 쳐다봤다.
"너 돌아이야? 노티 체계 몰라?" 대뜸 너 돌아이냐라는 말을 잘못 들은 줄 알고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하니 "너 돌아이냐고! 누가 나한테 노티하래? 1년 차한테 하라고 했지!"라면서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참았지만, 참을 만해서 참은 게 아니었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간호사에게 뒤집어씌우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닌 하인처럼 취급하면서 막말하고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규 간호사들을 위해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난 "선생님, 노티 체계 알고요, 전화 안 받으셔서 문자 한 통 했는데 그게 제가 또라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이렇게 화내실 일인가요? 그리고 hand part 선생님이랑 상의할 내용이 아니고요, 담당인 선생님과 상의할 내용이었어요. 그게 잘못됐나요?"라고 했지만, 폭언은 계속 이어졌다.
오더 좀 바로 내달라는 말에, "내가 오더 내는 사람이야?"라고 대답한 그 주치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환자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내 행동이 저들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저 수술방이라 오더 못내요. 진통제 하나 내서 주세요"라는 부탁으로 시작해서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오더 못 내니까 알아서 하세요", "우리가 그런 오더까지 내야 해요? 알아서 바꾸세요. 저보다 더 잘하잖아요" 등등 그동안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주치의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날 겪었던 모욕감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할 후배들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당한 사건을 적어놓은 파일과 녹취록을 가지고 병원 인권위원회를 찾아갔다. 조사해보니 외래, 병동 할 것 없이 사건 일지 같은 파일들이 모아졌고 간호사로는 처음으로 의사를 신고했다. 해당 의사에겐 1개월의 정직 처분이 내려졌고, 이후 그는 전문의가 되어 환자를 보고 있다.
피해자인 나는 가해자와 함께 있으면 안 된다고 해 부서를 이동했다. 그 주치의는 징계 전에 나에게 '일이 바빠서 그랬다, 미안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주었다. 그리고 만나서 '일이 너무 많고 바쁜데 일을 잘 못하는 우리 잘못도 있다'고 했으나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화해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왜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본다는 자부심 하나로 지금까지 힘든 일을 견뎠기에, 모두 그만두고 싶었다. 10년 가까이 배운 간호 업무에는, 의사 업무가 꼭 포함되어있었다. 오더 내는 방법, 처치와 피 넣는 방법 등 어떤 업무는 의사보다 간호사가 더 잘하는 처방들도 있고, 특히 식이 관련 처방은 의사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업무인지 모르는 의사들도 많았다. 간호부는 의사 아이디를 쓰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현장에서는 처방이 없으면 업무가 돌아갈 수가 없다. 간호 업무만 하는 것도 벅찬데 의사 업무까지 더해져서 해결이 안 되면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업무가 전가된다.
생리식염수 처방하는 일이 하찮아서 바쁜 의사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사를 더 많이 뽑아서 의사 업무 부담을 줄여주고,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간호사 한 명당 돌보는 환자 수를 줄여야 온전하게 환자를 위한 전인 간호를 할 수 있다. 하루빨리 오로지 간호 업무만 하면서 여유 있게 후배들을 가르치는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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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사랑(가명)님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자 현직 간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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