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정원사'가 일본에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일본정원사 입문기]
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 <편집자말>
[유신준 기자]
▲ 한 정원사가 '마키나무의 밤톨'을 만들고 있다. |
ⓒ 유신준 |
이론수업하는 동안 숙제를 하다가 만난 사람들이 있다. 우연한 인연이었다. 개인정원 자료사진을 찍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전지하는 사람을 만났다. 사부가 지난번에 '두 시간이면 끝난다 했던 마키나무의 밤톨'을 만들고 있었다.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서 정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요즘 짓는 신흥주택은 정원이 없다. 정원이랍시고 눈가림으로 문 앞에 잡목 한 두그루 심는 정도다. 우선 차고부터 지어야 하니까 정원을 만들 땅이 없다(일본은 차고지 증명이 없으면 차를 살 수 없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마음의 여유도 없고 정원에 관심도 없다. 이게 딱 맞아 떨어져 일본정원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충격이었다. 일본정원을 배우자고 산 넘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 왔는데... 어렵게 사부를 구해 지금 수업중인데 정원이 사라지고 있다니?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과시의 대상이던 정원 시대가 지나고 각자 형편에 맞는 생활정원의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규모 있게 만들어진 정원은 관리에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정원 일이 나이 든 사람에게는 소일거리요 재미일지 모르나, 바쁜 젊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일 터다. 사부처럼 정원이 주업인 경우는 즐거운 일이겠으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역시 성가신 작업일 수도 있다.
▲ 규모있게 만들어진 정원은 관리에 부담이 따른다. |
ⓒ 유신준 |
나무 한두 그루면 어떤가.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거지. 세상이 바뀌면 정원도 바뀌는 법이고, 수량이 줄어들면 더 애틋해지는 법 아니던가.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정원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실용 정원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잘 갖춰진 정장 정원에서 가벼운 캐주얼 정원의 시대가.
또 한 사람. 40대를 지났을까 안경 쓴 여자였다. 울타리 안에서 빨래를 널다가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기도 정원 일을 하는 사람이니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맡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서 토요일쯤 시간을 내실 수 있냐는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인연이 인연을 부르는 게 사람 사는 이치인 모양이다. 남는 건 시간 밖에 없는 백수가 정원 전문가와 견문을 넓힐 기회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정원 공부를 위해 이쪽에서 찾아가서 간청해야 될 일이었다. 호박이 덩굴 채 굴러들어 왔달까.
▲ 신흥주택은 밝은 톤이 대부분이다. 전체 배색으로 활엽수가 활용되는 듯 하다 |
ⓒ 유신준 |
그녀는 원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30여년 전 정원 설계회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정원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했다. 지금은 독립하여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정원설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단다.
몇 년 전 한국의 정원 관련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하루미씨는 귀하게 간직하고 있던 낙안읍성 초가집 사진이 실린 잡지를 보여줬다. 한국의 초가집은 부드러운 곡선이 포근한 느낌이 들어 참 좋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정원설계 프리랜서로 활동했던 자료집도 몇 권 구경했다. 치과의사나 저택 정원 등 작은 규모의 개인 정원이 주를 이뤘다. 니트회사와 종합병원같은 큰 규모의 설계도와 현장 사진들도 보였다.
주로 사부의 정원처럼 활엽수를 메인 트리로 바닥에 이끼를 깔아 놓은 자연정원 스타일이 많았다. 마치 심산의 풍광을 옮겨놓은 듯 인위적인 느낌을 배제한 자연스런 디자인들이 눈길을 끌었다.
▲ 옛날 기와집에는 대개 마키나무같은 침엽수가 많다 |
ⓒ 유신준 |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침엽수만 심다보니 활엽수에 대한 동경심이 생겨서 요즘 활엽수 정원 붐이 일고 있다고 했다. 내 느낌으로는 침엽수가 일본 전통가옥 스타일이라면 활엽수는 서구 스타일이었다.
이 동네는 전통주택 보존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오래 된 기와집이 많다. 옛날 기와집에는 대개 마키나무같은 침엽수가 많았다. 반면 간간이 보이는 신흥주택에는 활엽수가 주종을 이뤘다. 신흥주택은 밝은 톤이 대부분이어서 전체적으로 환한 느낌의 배색으로 활엽수가 활용되는 듯 했다.
정원공부 지원군이 생겼다
▲ 스타일이 다른 정원 전문가를 만나게 되어 견문을 더 넓힐수 있는 계기가 됐다 |
ⓒ 유신준 |
밖에서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오후. 녹차를 몇 번이나 데워마시며 세 사람과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언제든지 서로 궁금한 내용은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어 든든한 정원공부 지원군이 생겼다. 신비한 인연. 궁하면 통한다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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