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를 망치러 온 구원자 토미 캐시, 알고 보니 그의 본업은?
와이 프로젝트의 지난 2023 FW 컬렉션 쇼 프런트 로에 커다란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나타난 인물을 기억하시나요? 좌중을 압도하는 비주얼로 당시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이먼 도미닉을 당황케 한 주인공은 바로 토미 캐시입니다. 일명 ‘ 패션쇼의 악동’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그의 기상천외한 패션쇼 나들이 복장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더블렛 쇼에서는 음식이 풍성히 차려진 식탁으로 변신한 채 등장하는가 하면 로에베 쇼에서는 뜨개질을, 아미리 쇼에서는 덤벨과 함께 열심히 운동을 즐겼죠. 마린 세르 쇼에서는 갓난아기로 변신해 안전 요원에게 안겨 이동하기도 하고, 2024 SS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 속 릭 오웬스 쇼에서는 미스치프와 크록스의 협업 부츠를 신은 채 현란한 마임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의 본업은 래퍼입니다. 전자 음악과 힙합을 기반으로 독특한 사운드와 뮤직비디오를 선보이고 있죠. 하지만 본업이 무색하게 오늘날 그는 음악부터 패션, 비주얼 아트, 행위 예술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릭 오웬스와 그의 끈끈한 우정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죠. 무려 30살이 넘는 나이 차를 자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뮤즈가 되어주었습니다. 토미 캐시는 릭 오웬스 2019 SS 남성복 컬렉션 패션쇼에서 모델과 사운드트랙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릭 오웬스는 토미 캐시의 데뷔 앨범 〈¥€$〉의 ‘Mona Lisa’에 피쳐링으로 참여해 신비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생일마저 같은 두 사람은 마치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죠.
이뿐만 아니라 그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메종 마르지엘라, 이케아 같은 유수의 브랜드와 놀라운 협업을 성사시키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1년, 토미 캐시는 ‘세상에서 가장 긴 슈퍼스타’를 선보이며 모두를 놀라게 했죠.
그로부터 2주 뒤에는 메종 마르지엘라와 손잡고 절로 실소가 터져 나오는 슬리퍼를 선보였습니다. 존 갈리아노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완성한 빵 모양 슬리퍼와 라면에서 과연 그의 천부적인 위트를 엿볼 수 있죠. 수많은 소재 가운데 빵과 라면을 택한 이유도 특별합니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그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돼 있던 시절, 빵을 비롯한 밀가루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고 해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그의 과거를 빵과 라면에 녹여낸 것이죠.
이케아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푹신한 빵 모양 소파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익숙한 사물의 형상을 비틀어 환상적인 작품을 창조해 내는 캐나다 기반 아티스트 갭 보이스가 제작에 참여한 소파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벨리니의 아이코닉한 소파 ‘카말레온다’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됐습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못 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토미 캐시의 무궁무진한 잠재력! 만약 이러한 일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는 이가 패션쇼에서 그를 마주친다면 그저 나사 빠진 인플루언서 정도로 여기고 말테죠. 매 시즌, 각종 쇼에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기행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엄숙한 쇼장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활기를 돋우는 그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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